Frankfurt(프랑크푸르트)에 살면서(12)

황만섭

* 나는 프랑크푸르트에 살고 있지만 10여 년 전부터 서울 지역번호를 쓰는 전화(인터넷 전화)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나와 통화할 수 있지만 전화기를 들기는 낙타가 바늘구명을 통과하기만큼이나 어렵다. 그게 현실이다.

어떤 편지

어떤 사람은 우리부부를 이숙, 이모라고 부르고, 또 다른 사람은 고모, 고숙이라고 부르며, 또 어떤 사람들은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라고 하며 또 다른 사람은 우리에게 외숙 외숙모라고 부른다.

우리는 이 모든 사람들을 통틀어 조카들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모두 다 가까운 친척들이다. 그 중 한 조카에게 보냈던 이 메일을 여기에 소개한다.

생각해 보면 누구나 누군가의 조카이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자기 자신도 어느새 누군가의 작은아버지, 고숙, 이숙, 외숙 등이 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게 세상사다. 누구나 그러하다. 이들은 한 때는 가장 가까운 친척이었지만, 세월이 흘러가면서 새로 생겨나는 친척들에 밀려나면서 차차 멀어진다. 그리고 정도 서서히 새로운 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다. 이와 같이 똑같이 적용되는 이 이야기가 우리들의 삶 속에 녹아 있다. 그래서 같이 생각해 보고자 여기에 옮긴다. (편지를 받았던 조카의 명예가 소중해 익명으로 했다)

내가 보냈던 어떤 편지

ㅇㅇ이에게
ㅇㅇ이는 우리가 분실했다가 다시 찾은 보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몇 년 만에 Frankfurt까지 걸려온 전화가 반가웠다.
사람 사는 것이 만났다 헤어지고 헤어졌다 만나면서 살다가, 어느 땐가는 세상을 뒤로 하고 떠나는 게 순리다. 그런 후 얼마간의 세월이 흐른 뒤 언제 우리 주변에 이런 일 저런 일들이 있었느냐며 곧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 순서다. 슬픈 일이지만 그게 정상이다.
모든 것을 잊지 않고 오래오래 간직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지만, 꼭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기에는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챙겨야 할 일들이 너무너무 많다. 그래서 살면서 까마귀 고기가 보약이라는 말도 생겨났는지 모른다. 즉 우리에게는 일년에 한두 번 정도 소식을 전하면 넉넉할 것 같다.
하는 일들이 너무 많아 주변의 많은 일들을 챙기기에도 바쁜 게 현실이다. 설사 2~3년 만에 한두 번 소식을 전한다 해도 한없이 고마운 일이다. 소식 전하는 것을 마음먹고 의무적으로 하다 보면 너에게도 우리에게도 짐이 되고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렇게 할 시간도 없지만 그럴 필요는 더더욱 없다. 눈앞에 산적한 일들을 챙기다 보면 언제 해가 뜨고 달이 지는지 정신이 없을 때가 많다. 사람이 제대로 된 일생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살아가면서 느낀다.
삶은 누구나 자기를 중심으로 하여 생겨난 새로운 핵(가족)이 이루어지고 그 핵을 중심으로 가꾸며 살아가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생겨난다. 그건 책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름다운 일상이다. 그래서 그렇게 가깝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그 핵은 또다시 분열(분가)하여 새로운 가족(핵)을 이루는 시간들의 연속이다.
과거의 친척과 새로운 친척을 생각해 보면 그것이 보다 더 확연하게 보인다. 과거에 자주 찾았던 친척들은 어느 사이에 멀어지고 새로운 가족과 친척이 생겨난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고 즐거운 일이다.
살면서 누구나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나그네(인생) 길이다. 때로는 즐거워서 웃고 때로는 슬퍼서 울기도 한다. 인생은 희로애락의 연속이다. 그런 속에서 조금씩 적당하게 주위를 챙기면서 사는 것은 자신에게도 상대에게도 서로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는 행복으로 이어진다.
세상 일은 언젠가는 다 잊게 되고 멀어지게 되어 있다. 우린 그런 순간 속에서 인연을 맺고 결속하면서 반가움 속에서 살아간다. 모든 것은 순간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그렇다고 인위적으로 억지로 멀어질 필요는 없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것이 순리이고 도리다. 우리는 너희 형제들에게 작은 버팀목이 되어주자고 마음먹었지만. 그것도 마음뿐이지 실천하기는 어려웠다. 너도 일년에 한 두 번 우리를 생각해주면 네가 할 바를 다 한 거고, 우리도 너에게 그렇게 할 뿐이다.
문제는 이런 일들이 정으로 이루어져야지 숙제나 과제처럼 행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즐거움과 반가움을 동반해야 기쁘고 흐뭇한 행복으로 연결된다.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멀어질 거라고 미리 걱정할 필요도 없다. 우리 인간사가 언젠가는 멀어질 게 뻔하다고 미리 거리를 두고 스스로 멀어질 필요는 더더욱 없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살다 보면 세상사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흐르면서 스스로 정리정돈이 되어가기 마련이다.
ㅇㅇ에게 메일을 보냈으나 연락이 없다. 어려운 시험에 제차 도전하면서 심적 부담으로 낙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위로 메일을 보냈지만 감감무소식이다. 연락이 다면 안부전해라. 너와 너희 가족 모두 항상 건강하고 즐거운 일상이 길 바란다.
Frankfurt에서 보낸다

1227호 22면, 2021년 7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