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문화사업단의 문화이야기(57)

한국의 불교미술(4)

삼국시대 각 불탑의 특징을 알아 본 지난호에 이어, 이번에는 이들이 통일신라에서 융합, 발전되어 가는 과정을 살펴본다.

통일신라시대 불탑의 특징

삼국을 통일한 신라왕조에서는 삼국의 문화적 융합이 이루어지며 특히 석탑에 있어서는 신라적인 요소와 백제적인 요소가 결합되어 나타난다. 이와 같은 시기의 대표적인 석탑으로는 의성탑리 오층석탑을 들 수 있다.

이 탑은 약간 돋아진 기단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리고 있는데 기단과 탑신에 별개의 기둥을 배치하고 각 층의 부재들은 여러 개의 석재들로 짜 맞추고 있다. 초창탑신의 앞면에는 문틀을 내고 감실을 마련하여 내부에 출입할 수 있도록 문을 달았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지붕의 형태는 처마 밑과 윗쪽의 경사면을 층단형으로 처리하고 있다.

이러한 형태는 기본적으로 목탑을 본뜬 백제식의 석탑을 모방하고 있으면서도 지붕의 형태는 분황사 모전석탑의 형태를 취하고 있어 백제탑과 신라탑의 절충형을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다.

7세기 후반에 이르러 이미 전형을 이루기 시작한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은 8세기 초의 경주 나원리오층석탑 이나 구황동삼층석탑으로 불리는 황복사지삼층석탑에서 보듯이 탑신의 부재를 기둥돌과 벽판석으로 분리하지 않고 한 면에 하나씩의 석재를 이용하여 거기에 기둥 모양을 시기는 등 석재의 결합이 더욱 간결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때까지의 탑은 기단에 비하여 탑신이 장중하고 규모 또한 후대의 석탑보다 거대한 것이 특징이다.

8세기에 들어 이 같은 형식의 석탑 중에서 토함산 뒷편에 서있는 장항리오층석탑은 초충탑신에 문틀을 새겨넣고 좌우에는 인왕상도 새기고 있어 처음으로 석탑의 장식이 나타나고 있다.

8세기 중엽에 들어서는 많은 석탑들이 더욱 간략화 된 결합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여기에는 하나의 체계적인 법식이 발견되고 있다.

예를 들면 8세기 중엽에 세워진 가장 대표적인 석탑인 불국사삼층석탑(석가탑)을 살펴보면 우선 기단의 벽면 가운데 새겨진 기둥이 아랫층에는 세 개, 윗층에는 두 개로 정비되었으며 탑신부는 3층을 기본으로 하여 몸돌과 지붕들이 가가 하나씩의 돌로 짜여졌는데, 기단은 훨씬 강화되고 전체적으로는 거대한 규모로 압도하는 분위기의 초장기 탑에서 다소 규모는 작으나 안정된 탑으로 정착되고 있다.

– 양식의 변화

8세기 후반에 이미 확립된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전형

당시에 세워진 탑으로 경남 합천의 해인사삼층석탑(802년), 경주의 창림사삼층석탑, 대구 동화사의 비로암삼층석탑(863), 전남 장흥의 보림사삼층석탑(876), 등은 비교적 건립연대가 확실한 석탑이며, 이 밖에도 충남 보령의 성주사지오층석탑, 충북 중원의 탑평리칠증석탑, 가원도 양양의 진전사지사지삼층석탑, 전북 남원의 실상사삼층석탑, 전남 구례의 화엄사오층석탑 등을 대표적인 석탑으로 들 수 있어 9세기의 신라석탑은 경주는 물론 전국적으로 조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탑들은 대체로 규모가 작고 기단의 폭과 기단의 배치되는 기둥의 수도 줄어들었으며, 처마 밑의 층단수가 감소하면서 동시에 층단의 두께도 얇아지는 경향을 띠고 있어 일반적으로 8 세기 전성기의 탑보다는 안전감과 조형성이 감소되었다. 반면에 기단과 탑신에 안상, 팔부중상, 주악천인상, 사천왕성 등의 조각이 베풀어지고 기단과 초층탑신의 사이에 탑신 괴임돌을 삽입하는 등 장식화되는 경향을 띠고 있다.

따라서 9세기 이후 신라 하대의 석탑은 전체적으로 조형기법이 8세기의 전성기의 탑보다 뒤떨어지며 이러한 조형성의 결핍을 외관의 장식으로 보완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 이 형 석 탑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에는 전형적인 양식을 벗어나 기단이나 탑신부를 변형시켜 외형상으로도 일반형 석탑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이른바 이형석탑들도 일부 조성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이형석탑은 불국사에 남아 있는 다보탑으로 맞은편에 세워진 석가탑과 함께 8세기 중엽의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을 대표하고 있다.

이 탑은 사방에 계단을 마련한 기단을 세우고 그 위에 다시 네 귀와 중앙에 탄탄한 사각기둥을 올렸으며 원래는 기단의 사면에 석사자를 두어 탑을 외호하도록 하였으나 지금은 한 마리만 남아 있다.

기둥 위는 사각지붕으로 덮고 지붕 위에는 난간을 설치하여 그 안에서 탑신부를 받고 있는데 여기서부터는 평면 팔각의 형태로 모든 부채가 결합된다. 탑신의 조형은 팔각의 난간, 대마디형 기둥, 연꽃무늬의 원형화반석, 꽃술형 지붕받침 등이 결합되어 매우 화려하면서도 정밀하고, 전체적인 조화가 아름다워 신라 석조미술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전남 구례의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은 상층기단을 네 마리의 돌사자와 가운데 공양상을 배치하고 갑석을 얹은 다음 삼층의 탑신을 받고 있으며, 경주 부근의 정혜사지 십삼층석탑은 단층기단 위에 초층탑신을 목탑처럼 기둥돌과 벽면석으로 거대하게 조립하고 2층부터는 규모가 현저히 줄어들면서 마치 12층의 지붕돌만 포개놓은 형태를 하고 있다.

석굴암 앞의 삼층석탑과 강원도 철원의 도피안사 삼층석탑은 탑신이 사각형이데 반하여 기단은 팔각형으로 되어 있는데, 그중 도피안사 석탑은 단층의 기단에 위 아래로 연꽃무늬를 두르고 있어 마치 불상의 연꽃대좌를 연상케 한다.

이와 같이 탑신 전체 또는 이루를 변형시켜 새로운 형태를 보이는 석탑이 조성되는 배경에는 불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석탑을 신앙적인 차원에서 더욱 엄숙하게 장식하려는 욕구에서 착상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시기적으로는 돌을 다루는 기술이 축적되어 능란하게 석탑을 조성할 수 있는 8세기 중엽 이후 석탑조형에 대한 자신감이 충만한 가운데 이룩된 것이라고 하겠다.

1227호 23면, 2021년 7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