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미술사, 회화 중심으로 살펴보기 (20)

20세기의 회화

이전 연재에서 살펴본 것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로 분류되는 화가들은 이전의 관습화된 화풍을 버리고 새로운 화풍을 시도하는데 집중했다. 19세기가 끝나고 20세기가 되자, 이러한 새로움을 시도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피카소, 뒤샹 등 여러 예술가들에 의해서 계속 확대, 발전되었고, 그 결과 유럽 현대 회화(모더니즘 회화)의 전성기를 만들게 된다.

특히 후기 인상주의는 이후 20세기 표현주의에 큰 영향을 주었다. 표현주의란 인간의 내면의 감정과 감각의 표현과 구성에 주목하는 경향으로. 사실상 후기 인상주의, 추상주의, 상징주의, 입체파 등 20세기 전반의 회화 사조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20세기 이후의 회화 사조를 발생시대 순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신표현주의(Neo Expressionism)

개념예술과 미니멀리즘, 팜아트를 거치면서 전통적 의미의 ‘작품’이 사라져갔다. ‘회화’라는 것이 아직도 가능한지 의문이 제기되던 시대에 갑자기 새로운 구상이 나타나,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 미술계를 주도하게 된다. 거대한 포맷, 요란한 주제, 격정적 표현, 등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구상회화. 이른바 ‘신표현주의’가 독일과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등장한다.

특히 독일작가들은 자국의 문화가 철저히 부정되어버린 제2차 세계대전 이후를 주제로 하기 위해서 20세기초의 표현주의 기법을 답습했다.

신표현주의 미술가들은 자신들이 교육받아온 개념미술형식에서 등을 돌린 후 이젤/미술에 그림을 그리고, 주형을 뜨거나 손으로 깎아 조각을 만드는 전통적인 미술제작방식을 선택했다. 신표현주의의 이미지는 일간지의 헤드라인에서부터 고대신화와 삼류소설의 표지에 이르기까지 그 원천이 매우 다양하다.

전통적이며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형식과 감정적인 내용을 담은 신표현주의는 1980년대의 미술시장이 폭발적인 호황을 누리는데 일조 하였고, 국제 미술계에서 누려왔던 미국 미술의 우위에 종지부를 찍었다.

신표현주의의 탄생 배경

1970년대 말에는 구상회화가 부활할 만한 이유가 존재했다. 전후의 2차 모더니즘은 형식주의로 흐르는 바람에 상상력을 자극하고, 정서적 울림을 주고, 이야기를 전달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게다가 개념미술과 미니멀리즘을 거치면서 모더니즘 자체가 이미 종언을 맞고 있었다. 여기서 예술의 새로운 동력을 찾아 과거로 회귀하는 경향이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떤 특정한 맥락에서는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외려 새로워 보인다. 이것이 이른바 포스트모던의 역설이다.

1970~1980년대에 구상회화가 ‘신표현주의’의 이름으로 전면화하는 직접적 계기가 된 것은 일군의 독일화가들 즉 게오르크 바젤리츠(Georg Baselitz),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 외르크 임멘도르프(Jörg Immendorff), A R 펭크(A.R. Penck) 등이었다.

이 독일 화가들은 주제와 표현의 그 강렬한 효과 때문에 ‘새로운 야만인’(neue Wilden)이라 불린다.

1960년대에 독일의 미술계는 유럽의 앵포르멜과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에 거의 점령당한 상태였다. 하지만 바젤리츠는 이 국제적 추상운동들과도 거리를 두려 했다. 왜냐하면 국제화의 흐름들에 맞서 독일 미술의 지역적 정체성을 다시 확립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그가 의지할 유일한 전통은 전쟁 전의 표현주의밖에 없었다. 표현주의는 독일이 배출한 최초의 국제적 예술운동이자, 구상회화임에도 불구하고 나치 정권에 ‘퇴폐예술’로 낙인찍혀 탄압을 받은 바 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시작된 새로운 구상회화는 1970년대 말에 이르면 전 세계적 현상이 된다. 독일에 ‘새로운 야만인들’(neue Wilden)이 있다면, 이탈리아에는 ‘트랜스아방가르드’(trans-avantgurd)가, 프랑스에는 이른바 ‘자유구상’(figuration libre)이 존재했다. 미국에서는 이 흐름이 ‘나쁜 회화’(bad painting), 혹은 ‘신구상회화’(new image painting)라는 이름으로 나타났다. 이 모두는 신표현주의가 그저 독일만의 지역적 타당성만을 넘어 국제적 정당성을 갖는 흐름임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신표현주의 특징

이미지를 거부한 모더니즘과 개념미술에 반발하여 일어난 신표현주의는 구상성과 형상성을 재도입함으로써 현대 모더니즘에서서 제거된 역사와 주관, 사회적 발언이라는 회화의 특성을 유지하고, 인간의 내면을 미술과 다시 연결시키고자 하였다.

신표현주의는 모더니즘과 모더니즘 이전의 미술에서 영감을 찾은 반면 미니멀리즘의 절제와 개념미술의 냉정함을 버렸다. 그리로 알레고리나 제스처적인 물감처리같이 이전에 금기시되던 수단을 통해 격렬한 감정을 표현했다. 신표현주의는 워낙 널리 확산되었고 또 이전의 미술에 비해 근본적인 변화였기 때문에,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대표하며 또 세대교체를 상징한다.

대표적인 신표현주의 작가로는 지푸라기를 화면에 붙이는 독일의 안젤름 키퍼와 깨진 도자기를 이용한 그림으로 유명한 줄리앙 슈나벨, 전통을 비웃는 듯 뒤집혀진 인물상을 작업한 게오르그 바젤리츠 등이 있다.

신표현주의는 사물의 외면을 묘사하는 피상적인 미술에 반기를 들고 인간의 자유로운 감정과 사물의 내면의 깊이를 중시하며, 또한 당대의 사회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독일 표현주의의 맥을 잇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해 6월부터 시작된 연재 “이달의 전시”는 코로나 19로 인한 미술관과 박물관 폐쇄가 해제되는 시기까지 잠정 중단합니다.
교포신문사는 “이달의 전시” 연재와 연관하여, 미술관 관람이 허용되는 시점까지, “유럽의 미술사, 회화 중심으로 살펴보기”를 연재합니다, 이를 통해 미술관의 작품들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에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1227호 28면, 2021년 7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