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作故)와 이별 (離別)

류현옥

류현옥

1

한사람 두 사람 지인 이 사라지고 있다 . 자연현상이라고 말하지만 올해 들어 감당하기 어렵게 부고장이 자주 날라 들어왔다.

호스피스 근무당시 “당신은 몇 명의 죽음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 라는 테마의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다 3일간의 연수는 이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 연수교수는 직업이 호스피스 간호사라 하여 한정 없이 죽음을 감당해야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마음속을 들어다보고 진솔하게 대답을 하라고 당부했다.

(“Wie viele Tote können Sie verkraften ?”)젊은 동료하나가 손을 들고 대답했다 . 단한사람의 죽음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 … gar keine !”)

교수는 친지의 죽음을 알리는 부고장이 날라 들어와 고인의 성함과 나이를 확인하면 두 어 깨가 축 늘어져 앉을자리를 찾아야 하는데 뒤따르는 며칠간의 애도는 자신의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 연결되기에 죽음의 소식은 모든 사람에게 슬픈 소식이라고 했다 .

2

“사랑하는 남편이 고병 끝에 소천 하셨습니다.” 라는 부고 문을 읽으면 비현실적인 말로 들린다. 소천이라는 말이 그렇다. 어린 날 듣지 못한 단어 소천(所天) 이라는 말이 전달하는 뜻의 생소함이다

내가 산 동네어른들은 “세상베렸다 ” (세상을 떠났다 )라거나 “돌아가셨다 “로 표현하여 같이 살던 사람이 세상을 버리고 우리 곁을 떠났다는 것을 알렸다. 소천의 뜻을 풀이하면 하늘나라로 가셨다는 말이니 이곳을 떠나 하느님의 품안으로 가셨다는 표현이다.

기독교인들의 성경말씀에서 기원 한 살던 곳을 떠나 방황하는 것이고 아니고 이미 하늘나라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을 주기에 언제부턴가 나도 소천 하셨다는 말에 위로를 받는다.

이해 들어 내가 아는 친지 네 명이 남편의 소천을 알려왔다. 전쟁터에서는 하루에도 몇 십 명이 생명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뉴스를 통해 듣지만 내가 모르는 사람들의 죽음이라 그런지 부고를 받을 때만큼 마음이 무겁지가않다.

같이 살던 반려자를 잃는 것은 세상의 반을 잃는다. 남편이 돌아가시면 믿고 산 세상이 허물어진다고 느낄 것이고 아침저녁으로 밥상을 차려 불러주던 아내를 잃은 남자는 붙들고 일어날 지팡이를 잃는 것이다.

소천소식을 받은 후에는 며칠 동안 아는 사람들과 전화를 하고 상주에게 카드를 써서 보내고 장례식에 참석할 준비를 한다. 무거운 마음으로 며칠을 지나면서 작별을 한다.

이제는 두 번 다시 그 목소리도 들을 수 없고 웃는 얼굴도 볼 수 없다. 잊고 살았던 고인과의 기억들이 되살아나기에 얼마간 옛날로 되돌아가게 되는 계기로 더욱 고인의 상실을 절감 한다 .

고인은 뒤에 남아 애도하는 사람 생의 일부를 가지고 떠난다. 회한의 일로 마음을 풀지 못하고 지내다가, 세월이 지나 먼저 떠나 뒤에 남은 사람들의 가슴속에는 공간이 남는다.

며칠 전 또 부고가 날라들었다

장례식은 관 채로 밀어 넣어 태운 후 한줌으로 남은 재를 담은 항아리를 나무 아래 묻는 것으로 끝났다.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예식이었다. 준비해간 카세트에서 고인이 즐겨들은 음악이 조용하게 흐르고 가까운 나뭇가지에 앉아 울고 있는 새의 소리를 들으며 조객들이 한줌의 흙과 흰 장미 꽃 한 송이를 던져 넣어주며 잘 가라고 속삭였다

같이 살던 사람이 남긴 한줌의 재가 담긴 항아리를 땅에 묻고 숲속을 떠나는 길은 죽음을 뒤로하고 삶을 되찾아 돌아오는 길이다. 상주가 예약해둔 카페에 들어가서 안면 있는 조객들이 새삼 인사를 나누며 앉았다 .

호박죽이 전식으로 나오고 곧 준비한 빵 접시가 나왔다. 모두 때가되면 뒤 따라 가게 될 시한부의 인생을 재 확신하는 장례잔치 (Leichenschmaus)이다. 시간의 채찍을 맞으며 허우적거리며 앞서간 사람을 따라 갈 남은 삶의 길을 걷기위해 다시 산자들의 세상으로 돌아오는 예식이다.

그날 저녁 나는 지하실에 내려가 빈 신발 케이스를 찾아내어 내방으로 들고 왔다. 상자 겉을 황금색 종이를 붙여 장식했다. 얼마 전부터 생각했던 부고장 모으는 상자가 완성되어 책장의 한구석을 치우고 자리를 잡았다. 눈 덮인 숲속 길에 희미하게 다리가 그려진 카드를 찾아내어 “소천 소식” 이라고 써서 케이스 뚜껑에 접착했다.

3

판데미로 인한 녹다운으로 전 세계가 불 안속에 떨고 있었던 때에 G 교수의 소천소식이 도착되었다. 병상에서 세상의 재앙을 모르는 체 투병을 포기하고 떠났다. 조객들이 한 자리에 앉지도 못하던 때였다.

베를린근교 아담한 공동묘지에 친지들이 모였다. 낮은 돌담너머로 보이는 거리와 상점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검은 상복의 조객들이 드나드는 묘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습관이 된듯했다. 조객들이 묘지입구에 줄을 서서 성함과 주소를 기록했다. 이날 이후 한사람이라도 코로나에 감염이 되었을 경우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연락이 갈 것이란다.

고인은 한국에서 살고 있는 전남편이 남기고 간 지인으로 몇 십 년을 친하게 지낸 퇴직교수이었다. 마지막 날까지 떠나지 않고 기거한 집근처에 묻히게 되었다. 조객 속에 섞이게 된 나는 관 앞에서 피리를 부는 젊은 여인을 보며 고인을 생각했다. 2월초 아직 얼어붙은 땅을 파고 관을 묻었다. 안면 있는 조객들이 공동묘지 입구에서 경계를 두고 코로나 식 주먹인사로 작별 하고 헤어져갔다.

혼자 남은 과부와 전화통을 붙들고 애도의 아픔을 나누다가 2년이 지난 후에야 나는 3층집에서 혼자 사는 그녀를 방문했다 . 반세기를 남편과 같이 살던 집이라 쉽게 떠나가지 못하겠다는 말을 시종 반복했다. 그녀는 오랜만에 간 나를 이방 저 방 데리고 다니며 변한 것이 없다는 말도 반복 했다.

여러 번 와 본적이 있는 아는 집이다. 방마다 쌓여있는 서적들은 종이 쓰레기로 처리될 날들을 기다리며 먼지를 둘러쓰고 보관되어있었다. 소유자와 함께 가치를 함께 잃은 고서를 보며 그녀는 남편의 작고와 함께 모든 것들이 존재가치를 잃었다고 했다.

남편이 거쳐하다 돌아가신 3층의 지붕 밑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그녀는 다시 남편의 집무실은 손을 대지 않고 그대로 보관하고 때때로 올라가서 청소를 한다고 했다. 큰집에서 혼자 살지 말고 딴 곳으로 가라는 친지들의 이야기를 듣지만 그것은 남편을 떠나는 것과 같기에 아직 엄두를 못 내고 있단다.

이 집에는 아직 남편의 냄새가 묻어있다. 아직도 남편의 기침소리에 잠에서 깨어난다고 했다

“….이곳을 떠나게 되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을 한꺼번에 다 잃는 것이기에 허탈해서 살수가 없을 것 같아 !”

애도의 전통으로는 일 년 후에는 상복을 벗는다고 하지만 개인마다 다르지 않느냐고 말해며 나의 눈치를 살폈다.

집구석구석에 남편의 숨소리가 숨어있고 남편의 손때가 뭍은 물건 속에 살고 있는 그녀는 그곳을 떠나고 그 물건들을 버리는 것은 깊은 마음속에 들어있는 남편을 몰아내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녀는 가까운 친척들과 다른 친지들로부터 여러 번 이사의 조언을 들었기에 내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 하는 것 같았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설령 80이 되어가는 그녀가 3층의 그 큰 집에서 죽을 때까지 떠나간 남편을 생각하며 혼자 사는 것을 볼 수 없어 안타까워하며 이사를 권유 할 수 있을까? 마음속에 가득차 그녀가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기억 속의 죽은 남편과 유물들이다 책상위에 놓인 사진곽 속에 60년 전 지중해 여행 중의 한순간이 담겨있다. 젊은 선남선녀의 모습이다.

지적능력을 총동원해도 이해하기 힘든 세월이 가져온 자연의 변화다. 그럼에도 인정하지 않고는 더 살아갈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정원으로 나가 준비한 커피 상에 앉았다.

그녀는 남편이 앉았던 고리버들 안락의자를 옆으로 옮겨놓고 내가 앉을 의자를 가져왔다.

아직도 남편이 앉았던 그 의자에 다른 사람이 앉는 것을 허용 할 수가 없단다. 누구보다도 나는 이해할 것을 믿는다고 했다.

“인간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다 이해해도 죽음만은 이해하기가 힘들어”

“죽음은 이해하기보다 인정해야해! 죽음을 인정하지 않으면 더 살아 갈수가 없어! 죽음을 인정해가며 살아가는 자세 로 !?”

우리는 이런 말을 하며 커피를 마셨다

4

몇 년 전의 이야기다. 옛 동료를 방문했다. 베를린을 떠나 친정식구들 가까이 남독으로 이사를 간다는 연락을 받았기에 미룰 수가 없는 방문이었다.

교통사고로 남편이 돌아가시고 어린 아들을 키우며 버티다가 친정가족 옆으로 간다는 그녀는 몇 년 사이에 중년에 들어선 듯 했다.

곳곳에 쌓인 이삿짐으로 떠날 준비를 하는 어수선함이 온 집안에 차있었다.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입구에 걸린 죽은 남편의 때 묻은 모닝드레스가 걸려있는 것을 보고 훔칠했다. 오랫동안 세탁을 하지 않아 밑으로 축 늘어진 타올 천의 바드만텔을 본 적이 있다.

동료는 나에게 부탁할 일이 있다며 커피부터 마시자고했다.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아직도 화장실에 걸려있는 죽은 남편의 바드만텔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았다. 남편이 죽을 때 다섯 살이었던 아들이 화장실에 들어 갈 때면 아버지의 냄새가 난다며 오래된 남편의 바드만텔에 얼굴을 파묻었다.

하늘나라에 가신 아버지의 비드만텔을 버리자고 조심스럽게 아들 로버트에게 물었다가 번번이 거절을 당했다. 세탁을 하게 되면 남편의 냄새가 없어질 것이기에 아들을 위해 그대로 걸어두었다

동료는 나를 아는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서먹서먹한 것이 없어지는 것을 기다렸다가 아버지의 바드만텔을 이제는 버려도 되지 않겠느냐고 슬쩍 물어 보라는 부탁을 했다.

아버지의 기억이 구서구석에 묻혀 있는 집을 떠나는 아들의 아픈 마음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어머니의 기우를 알 것 같았다. 나는 남이고 이사해서 살게 될 남독에 가면 새로운 환경과 친구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 잊기가 쉬울 것이니 아들이 승낙을 할 수 있게 유도해보라는 부탁이었다.

나는 이제 곧 사춘기의 나이에 들어설 남자 애의 심정이 되어 하루아침에 자취를 감추어 사라진 아버지를 기억하게 하는 바드만텔의 중요성을 이해해야했다. 상징적으로 영적인 역할을 해온 아버지의 냄새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의 중요함을 공감해보려고 두 눈을 감고 생각해보았다.

이사 간 새집에서 아버지 생각하고 아버지의 냄새가 그리울 때면 버리고 간 아버지의 두루마기를 생각할 것이다. 아버지이 자라는 아들에게 중요한을 버린 어머니에게 대항할 것이기에 내가 그 일를 해주면 좋겠다는 부탁이었다.

“오 로버트 네가 많이 컸구나! . 아주 미남이구나! ”

나는 일부러 과장된 큰소리로 분위기를 가볍게 이끌어갔다

학교재미는 어떠하고 제일 좋아하는 과목은 무엇이며 피리를 아직도 부느냐고 물으며 대화를 시작했다.

로버트는 배가 고프다며 상 앞에 앉았다. 재미없는 학교생활이지만 어머니를 위해서 열심히 숙제를 해가고 성적이나 행동평가는 나쁘지 않다면서 힐끔힐끔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동료는 아들이 칭찬받는 모범학생으로 사랑받는 아이라고 덧붙였다. 나는 준비해간 선물을 주고 케익을 같이 먹었다.

동료의 눈짓을 알아채고 화장실에 간다며 일어났다. 내가 다시 상 앞에 앉자 .동료가 두 눈을 찡긋하며 신호를 보냈다.

“ …. 이봐라 ! 로버트! 네 아버지 바드만텔이 아직 화장실에 걸려있더구나 . 내가 본적이 있는 것 같은데… 몇 년 전 인 것 같은데 ..?”

“예 맞습니다. . 그동안 우리 집에 오시지 않았는데도 기억하시네요. ”

“이제 이사를 하게 되면 새 집의 새 화장실이 있을 것인데 돌아가신 아버지 바드만텔을 가져 갈 거야 ?”

“예 가져갈 것입니다 , 제가 어른이 되면 입을 것입니다 .아직은 제게 좀 커서 그렇지만 몇 년 후면 제게 맞을 것입니다.”

로버트는 우리 두 여자가 준비한 각본을 여지없이 무너트리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미리 준비해둔 것처럼 총알같이 튀어나와 우리를 당황하게 했다.

우리는 잠시 침묵하며 할 말을 찾았다

“로버터 너가 어른이 되면 다른 디자인 의 모닝드레스가 많이 나올 텐데 …”

“새로운 디자인 더 좋은 새 것 원하지 않아요! . 내가 어른이 되면 아버지의 바드만텔을 입고 애인이 생기면 자랑할거예요 .”

동료와 마음 아프게 헤어져 돌아와 잠을 설치며 생각을 해보았지만 그 동료를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나는 젊은 어머니가 혼자 아들을 키우며 경험했을 온갖 일들은 아버지어머니가 함께 어른이 되는 과정을 같이하는 사람들은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사를 간지 두어 달이 지나자 동료로부터 전화가 왔다.

로비도 잘 있고 새 직장도 마음에 들고 이사 간 집도 밝고 침실의 창문을 열면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시작되는 검은 숲속에서 천년 묵은 태고의 공기가 흘러들어와 대도시의 묵은 공기가 축척되어있는 가슴속을 청소해 준다고 했다. 친정어머니가 로버트를 보살피고 있어 마음이 많이 놓인 상태란다

나는 그곳까지 따라가 화장실에 걸려있을 옛 남편 바드만탤 애 대한 말은 피했다.

로비가 어른이 되어 아버지의 바드만텔을 입고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을 보면서 아버지를 생각하고 어머니의 어려웠던 날들을 생각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혼자 확신했다. 사전에 미리 심사숙고한 우리가 할 말을 찾지 못한 그날의 상황이 잘못된 게 아니었다는 것도 재 확신했다.

몇 년 후 동료가 재혼을 한다는 청첩장과 로버트가 대학에 입학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청첩장에 동봉한 로버트의 사진을 보며 콧등이 시큰해짐을 참어며 나는 혼자 속으로 중얼거렸다.

“주여 당신의 위대함을 봅니다. 당신의 힘과 사랑으로 이귀한 아이가 어른이 되었습니다.”

나는 동료에게 결혼 초대에 감사하고 로버트의 사진을 보내준데 더더욱 감사하다는 카드를 보냈다

1359호 14면, 2024년 4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