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휘 원장의 건강상식
“원장님, 저는 고기 비계도 안 먹고 기름진 음식은 쳐다보지도 않는데, 하우스아츠트(Hausarzt)가 피검사 결과를 보더니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가 너무 높다며 당장 고지혈증 약을 먹으라고 하네요. 평생 먹어야 한다던데, 약 안 먹고 운동과 식단 조절로 먼저 낮춰보면 안 될까요?”
진료실을 찾으신 교민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건강검진 후 받아 든 콜레스테롤 수치 때문에 깊은 고민에 빠진 분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특히 고혈압이나 당뇨병 약과 달리, 고지혈증 약은 유독 복용을 꺼리고 억울해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오늘은 혈관 속의 조용한 시한폭탄인 콜레스테롤의 진실과, 전 세계 의사들이 입을 모아 복용을 권장하는 고지혈증(Dyslipidämie) 약물치료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콜레스테롤은 우리 몸의 세포막을 형성하고 호르몬을 만드는 데 반드시 필요한 필수 지방질입니다. 피검사를 하면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혈관 벽에 쌓인 찌꺼기를 간으로 청소해 가는 ‘착한 콜레스테롤(HDL)’과, 혈관 벽에 파고들어 기름때를 형성하는 ‘나쁜 콜레스테롤(LDL)’입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이 LDL 콜레스테롤입니다. LDL 수치가 높아지면 핏속을 떠돌던 기름 찌꺼기들이 오래된 수도관에 녹이 슬듯 혈관 벽에 차곡차곡 쌓여 혈관을 좁고 딱딱하게 만듭니다. 이를 동맥경화(Arteriosklerose)라고 부르며, 이 기름때가 어느 순간 툭 터져서 심장 혈관을 막으면 심근경색(Herzinfarkt)이, 뇌혈관을 막으면 뇌졸중(Schlaganfall)이라는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집니다.
가장 흔한 오해는 콜레스테롤이 오로지 ‘먹는 음식’ 때문에 높아진다는 생각입니다. 환자분들은 고기를 끊고 채식만 하면 수치가 떨어질 것이라 굳게 믿으시지만, 사실 우리 혈액 속 콜레스테롤의 약 80%는 음식과 무관하게 우리 몸의 ‘간(Leber)’에서 스스로 만들어집니다. 나머지 20~30%만이 음식을 통해 흡수될 뿐입니다.
즉,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은 식습관이 아니라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체질’과 ‘노화’, 그리고 여성의 경우 폐경에 따른 ‘호르몬 변화’입니다. 억울하시겠지만, 아무리 풀만 먹고 열심히 뛰어도 간에서 콜레스테롤을 많이 만들어내는 체질로 태어났다면 수치가 높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약을 거부하고 “식단과 운동으로 빼보겠다”는 환자분들의 굳은 결심은, 안타깝게도 실패로 돌아갈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독하게 식단을 조절하고 살을 빼더라도 LDL 콜레스테롤 수치는 기껏해야 10~15% 정도 떨어지는 데 그치기 때문입니다. 수치가 기준치보다 훌쩍 높아 약물치료가 필요한 상황에서 10%의 감소는 혈관의 안전을 보장하기에 턱없이 부족합니다.
의사들이 3~6개월의 유예 기간을 주기도 하지만, 결국 대부분의 환자분들이 다시 병원을 찾아 약물 처방전을 받아 들게 되는 이유가 바로 이 간의 압도적인 합성 능력 때문입니다.
현재 고지혈증 치료에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약은 스타틴(Statine. 예를 들어 Atorvastatin 또는 Rosuvastatin) 계열의 약물입니다. 이 약은 간에서 콜레스테롤을 합성하는 공장의 가동을 억제하여 핏속의 LDL 수치를 절반 가까이 극적으로 떨어뜨립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간수치가 올라간다거나 근육통(Muskelschmerzen)이 생긴다는 부작용이 부풀려져 있어 지레 겁을 먹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치명적인 부작용이 나타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며, 정기적인 피검사를 통해 충분히 모니터링하고 약의 종류를 바꾸어 대처할 수 있습니다. 잃는 것보다 심혈관 질환을 예방하여 얻는 생명의 이득이 수백 배 크기 때문에, 현대 의학이 낳은 ‘최고의 명약’ 중 하나로 불리는 것입니다.
스타틴 약물의 진짜 마법은 단순히 숫자를 낮추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 약은 이미 혈관 벽에 쌓여 있는 기름때(플라크)의 겉면을 단단하게 코팅하여, 이 찌꺼기가 갑자기 터져 혈전을 만드는 것을 막아주는 강력한 플라크 안정화(Plaquestabilisierung) 효과가 있습니다. 게다가 혈관 내벽의 미세한 염증을 가라앉히는 역할까지 합니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해서 의사 상의 없이 임의로 약을 뚝 끊어버리면 안 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약을 끊으면 간은 다시 콜레스테롤을 뿜어내고, 혈관 벽을 보호하던 코팅이 벗겨지면서 뇌졸중이나 심장마비의 위험이 다시 급격히 치솟게 됩니다.
독일의 진료 시스템에서 콜레스테롤의 ‘정상 수치’는 사람마다 다르게 적용됩니다. 건강하고 젊은 사람이라면 LDL 수치가 130mg/dL이어도 정상으로 보지만, 당뇨병이 있거나 흡연을 하시는 분, 혹은 이미 협심증이나 뇌졸중을 앓았던 분들에게는 훨씬 엄격한 기준(70 이하, 심지어 55 이하)을 적용합니다.
하우스아츠트는 단순히 콜레스테롤 수치 하나만 보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나이, 혈압, 가족력 등을 모두 종합하여 향후 10년 내 심혈관 질환이 발생할 위험도를 계산한 뒤 약물 처방을 결정합니다. 따라서 옆집 친구는 나보다 수치가 높은데도 약을 안 먹는다고 해서, 나의 처방을 의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 약을 한 번 먹기 시작하면 평생 먹어야 하나요?” 진료실에서 가장 많이 듣는 이 질문에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눈이 나빠서 안경을 썼는데, 앞이 잘 보인다고 안경을 벗어버리시진 않잖아요?” 고지혈증 약도 마찬가지입니다. 약을 먹어서 수치가 좋아진 것은 병이 ‘완치’된 것이 아니라, 약이 간의 활동을 ‘조절’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지혈증은 아프거나 가려운 증상이 전혀 없는 침묵의 질환입니다. 매일 아침 챙겨 먹는 조그만 알약 한 알이 나의 뇌와 심장 혈관을 맑고 깨끗하게 청소해 주는 든든한 방패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약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버리고 주치의를 믿는 순간, 여러분의 100세 인생을 향한 혈관 건강은 훨씬 더 튼튼해질 것입니다.
교포신문사는 독일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의 건강증진에 도움이 되고자 김종휘원장의 건강상식을 격주로 연재한다. 김종휘원장은 베를린의 의학대학 Charité에서 의학과 졸업 및 의학박사 학위취득을 하였고, 독일 이비인후과 전문의이며, 현재는 프랑크푸르트 HNO Privatpraxis에서 진료를 하고 있다. www.hnopraxis-frankfurt.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