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이야기 / 156 – 우주이야기 ④

“세상 일에 답답함을 느끼면 하늘을 보라”는 말이 있듯이 하늘(어밀한 의미에서는 우주)은 우리에게 미지의 대상이자, 좁은 시야를 벗어나 보다 근원적이고, 본질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대상이다.

문화사업단에서는 일상사를 벗어나 모든 만물의 근원인 우주를 살펴보며 잠시나마 밤하늘의 별을 세는 어린 동심으로 돌아가 보고자한다.

고대세계의 천문학

천문학의 역사는 인간이 하늘을 바라보며 시작되었다고 하면 맞을 것이다. 철학과 함께 가장 오래된 학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늘에서 유성이 떨어지면 불길한 징조로 받아들이던 시절을 지나 인간은 좀 더 자세하게 해와 달과 별들의 변화를 관찰하게 되었다. 인간은 이미 고대 이집트시절 1년이 365와 1/4일임을 알았다. 정착생활을 하고 농사를 짖기 시작하면서 기후의 변화와 강의 범람시기를 정확히 알 필요를 느낀 인간은 그 해답을 천체들의 움직임에서 얻은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천문학은 인간이 우주에 대한 신비를 풀기 위한 자연스러운 궁금증의 해결을 원하면서 비로소 학문으로써의 기틀을 잡아간다.

이번 호에서는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시대의 천문학사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소개해 본다.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의 천문학의 역사는 역(曆)을 만들면서 시작된다.

농사를 지며 경작생활을 했던 이집트인들은 나일강의 물의 변화를 정확히 알 필요성을 느꼈다. 현재 이집트의 역에 대해서는 상세한 것이 알려져 있지는 않다. 이집트 사람들이 처음으로 만든 역은 음력이었다. 음력은 12달로 되어 있고 한 달은 29일 반으로 1년은 354일이 되고 3년마다 윤달을 넣을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나일강의 범람이 일정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어느 해는 홍수 사이가 11달이고 다른 해는 14달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나일강의 범람과 대략 일치하면서 더 규칙적인 사건이 있으면 편리할 듯했다. 이 사건이 바로 시리우스(큰개자리 알파별, 별중에 가장 밝게 보인다. -1.6등성)의 출현이다.

그것은 나일강 범람 직전에 나타났고, 365와 1/4일 마다였다. 그러면서 이집트인들은 양력을 만들었다. 이 당시 한 달은 30일이고 연말에는 5일을 덧붙여 365일을 만들었다. 초기 메소포타미아의 천문학은 밝은 별들을 확인하고 하늘을 멋대로 나누며, 두드러진 천체나 대기현상을 관측하는 정도였다. 이들은 천체의 조짐에 의미를 붙인 점성술을 시행했는데 나중에는 호로스코프(horoscope) 점성술로 발전하여 왕국의 운명만이 아니라 개인의 운까지 예언하게 되었다. 후에 이들은 행성들의 운동을 관측하게 되었고 행성들의 운동이 천구의 어떤 띠에 놓여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것이 황도이고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12부분으로 나누어 황도 12궁이라고 불렀다.

그리스

그리스 초기 과학의 시작은 철학과 완전히 일치했다. 우주론 시대라고 불리는 그리스 초기의 과학자(자연철학자)들의 공통의 의문은 “우주를 이루는 근본이 무엇인가?”였다.

탈레스는 우주의 원질(arche)을 물로 보았다. 그것은 물이 가장 흔하고 기체, 액체, 고체로 존재할 수 있는 물질이기 때문이란 해석이 있다. 탈레스는 기원전 585년 개기일식을 예측한 것으로 알려졌다.

플라톤에 따르면, 태초에 창조주 데미우르고스(demiurgos)가 있어 우주를 만들었다. 단, 그리스도교와는 달리 무에서 창조한 것이 아니고 재료가 있었다. 데미우르고스는 원질을 가지고 4원소를 만들었는데, 그 구성 방법이 기가 막히게 기하학적이다.

직각이등변삼각형 4개가 모이면 정4각형이 된다. 정사각형 6개로 둘러싸인 것이 정6면체이다. 이 정6면체로 된 것이 흙이다.

플라톤 이후에 그리스의 천문학은 피타고라스의 수와 플라톤의 기하학적 전통이 합쳐져서 이전의 관측천문학에서 수리천문학으로 변하게 되었다. 그들은 우주를 기술할 때 원운동과 등속도 운동으로 기술하려 하였다. 이 당시에 이미 해와 달, 오행성의 움직임을 거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자신들의 이론으로 그들의 움직임을 이 두 가지, 원운동과 등속도운동으로 표현하려 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원운동과 등속도 운동이 가장 안정되고 단순하고 조화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경험적 관찰을 중시하였다. 그의 우주체계는 달 아래의 세계와 달 위의 세계로 구분된다. 달 아래의 세계는 4원소(물, 불, 공기, 흙)로 되어있고 변화하는 세계이다. 이에 비해 달 위의 세계는 불변의 세계로 제 5원소인 에테르(aither)로 차 있다. 그는 수정천구이론을 주장했는데 이는 위에서도 말했지만 공간상을 행성들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수정으로 된 각각의 천구에 박혀서 수정천구 자체가 움직이는 것이다. 그리고 바깥쪽에는 별들이 박혀있는 천구가 있다. 이는 우주가 유한함을 말해준다.

그리고 혜성은 달 아래의 세계에서 일어남을 나타낸다. 이는 이후 2000년 동안 서구를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에는 한가지 큰 결함이 있었다. 별의 밝기가 때에 따라 달라졌는데, 이것은 달 위의 세계가 변하지 않는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과 모순이 되는 현상이었다.

그래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태양중심설이 나왔다. 헤라클레이데스와 아리스타코스는 달, 지구, 5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도는 우주체계를 제안했다. 지구의 자전도 동시에 고려되었다. 그리고 태양이 지구보다 크고 달보다 태양이 멀다는 것도 제안하였다. 이것은 지구와 별들 사이의 거리가 달라지므로 밝기의 변화를 설명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구가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다른 별들과 구별된다는 철학에 위반되고 연주시차를 관측하지 못하면서 (별들이 그렇게 먼지 몰랐으므로) 완전히 무시되었다. 이것은 19세기 연주시차가 허셀에 의해 관측될 때까지 태양중심설을 괴롭혔다.

이후 헬레니즘 시대 프톨레마이오스는 지구중심의 이론을 더욱 발전시켜, 헬레니즘 시대 천문학은 관측을 정확히 기술하고 복잡한 계산으로 천체의 위치를 잘 예측할 수 있었고 연주시차를 보이지 않았을 정도로 발전하게 된다. 이후 프톨레마이오스의 수정된 지구중심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과 결합되어 공인된 우주체계로써 코페르니쿠스가 나올때까지 서양천문학을 지배하였다.

1359호 19면, 2024년 4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