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독 간호사 60년 디아스포라 무용, 한(恨)과 신명(神明)의 연대기

올해는 파독 간호사(독일로 파견된 한국 간호사) 60주년을 맞는 해이다. 1966년 한국해외개발공사와 독일병원협회 간 협정을 통해 처음 독일로 한국 간호사 파견이 이뤄졌다. 파독 광부와 더불어 간호사 파견은 한국 현대사에서 경제적, 사회적, 외교적 그리고 문화적으로 특별한 함의를 지닌다.

6.25 전쟁 이후 폐허 속에 놓여진 한국은 파독 광부 및 파독 간호사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낯선 땅에서 피와 땀이 배인 노동의 댓가로 얻은 재화는 고국으로 송금되어 ‘한강의 기적’을 이뤄내는 종잣돈이 됐다.

이에 힘입어 대한민국은 산업화· 공업화를 통해 획기적인 경제성장을 이루는 초석을 마련할 수 있었고, 비로소 가난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세계 최빈국에서 명실공히 경제 대국의 반열에 올라선 것이다. 기적이 아닐 수 없다.

그 중심에 파독 간호사가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파독 간호사는 한국 여성의 주체적 해외 진출의 선구자로 특별한 존재라 할 수 있다. 유교식 가부장적 분위기에서 전문직으로 해외에 진출하여 주체적으로 삶을 개척한 파독 간호사들은 한국 여성의 끈기와 인내, 성실과 근면함의 표상으로 읽힌다.

그들은 낯선 땅에서 이주자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고 독일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안착했다. 이른바 디아스포라(diaspora, 고국을 떠난 사람들)의 성공적 모델로 회자된다.

관점을 넓혀보자면, 디아스포라는 단순히 이산(離散)을 넘어 정착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역동적인 문화창조와 정체성의 변화를 상징한다. 그런 점에서 파독 간호사의 존재론적 의의는 각별하다. 단지 외화벌이 수단으로서의 국가주의적 관점을 넘어 주체자로서 ‘삶의 기획’의 층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 여성에서 근대적 여성으로의 이행에서 ‘해외’ 그리고 ‘전문직’ 여성으로서의 서사는 특별히 기억할 점이다. 공간의 낯섬에서 비롯된 문화적 이질성과 언어적 한계는 경계인으로서의 차별과 고립을 추동하는 부정적 기제로 작동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파독 간호사들이 겪은 삶의 애환과 보다 가까이 마주한다. 그들의 삶의 여정에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데 춤이 절실한 도구가 됐음은 퍽 다행스럽다. 춤이 ‘무언어 예술’이기에, ‘몸으로 말하는’ 것이기에 보다 쉽게 접근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파독 간호사들은 이국에서 겪는 존재론적 소외를 몸의 언어, 즉 춤의 문법으로 껴안고 극복하고자 했다.

그들에게 있어 춤은 실존적 고통의 무게를 견디게 한 영양제이자 더 높은 곳으로의 비상을 꿈꾸는 하얀 날개였다. 한국인 특유의 신체지도에 흐르는 고유의 호흡과 맺고 풀고 어르는 춤사위에 실린 한(恨)의 정서는 고국을 향한 그리움의 응집이고, 뿌리에 대한 근원의식의 발로였을 것이다.

말하자면, 파독 간호사들에게 춤은 존재론적 소외를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구원의 손길이었다. 춤을 통해 그들은 억센 노동과 차별적 현실에서 스스로 치유의 메커니즘을 터득할 수 있었다. 세대를 넘어 몸에서 몸으로 전수된 파독 간호사의 디아스포라 무용은 이제 유희 내지 취미의 수준을 넘어 정신적 내상을 치유하고 자아실현의 도구로 기능하는 이른바 고품격 예술의 단계로 승화되었다.

베를린 파독간호사무용단의 시초는 1984년 창단된 가야무용단으로 귀결된다. 파독 간호사 1세대인 김금선 단장이 첫 신호탄을 쌓아올렸다. 이후 파독 간호사 1세대 조송자가 이끄는 연화무용단, 김연순이 주도한 우리무용단, 그리고 김도미니카 간호사에 의해 소나무용단이 연이어 발족됐다. 그밖에 아리랑무용단 등 베를린을 중심으로 4~5개의 무용단이 창단되면서 독일 주류 사회에서도 파독간호사무용단에 차츰 관심을 갖게 되었다.

후속세대로 이어지고 있음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2014년 파독 간호사 1세대 출신 후손들과 재독 한국인 자녀 초등학생들로 구성된 화동무용단이 생겨났다. 초기 파독 간호사 1세대에서 이제는 2·3세대의 참여로 외연 확장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파독 간호사와 매개된 독일 디아스포라 무용의 전승과 향유방식은 세대별로 편차를 보인다.

직업적 이주에서 비롯된 파독 1세대는 민족적 자부심에 근원하여 전통의 보존과 전승에 치중하는 경향이 짙다. 독일에서 낳고 자라난 2세대는 문화적 혼종 속에서 정체성 탐구에 몰입하는 현상을 보인다. 3세대는 아픈 역사의 기억을 넘어 미래를 담보한다.

단지 ‘박제화된 전통’이 아닌 생동하는 유산으로 보편성 추구에 방점이 있다는 점에서 예술적 진화를 엿본다. 파독 간호사들이 추구한 디아스포라 무용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탐문과 궁극적으로는 삶에 대한 깊은 애착에서 기인된 철학적 통찰의 소산이자 존엄의 산물로 이해된다.

2023년 세대별로 분절되어 존재하던 파독간호사무용단은 세대 통합을 이뤄낸다. ‘베를린 MuAk(舞樂)’ 창립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 4월 초 ‘베를린 MuAk’ 주최로 간호사 파독 60주년 고국 방문공연이 있었다. 4월 3일 국립부산국악원(원장 이정엽, 무용단 예술감독 복미경) 연악당에서 초청공연을 가졌고, 5~6일에는 고성오광대전수관에서 양일간 공연과 워크숍이 진행되었다.

4월 8일 서울 남산국악당에서 ‘연(緣, Fateful Connection)’이라는 타이틀로 공연이 개최됐다. 파독 간호사 1~3세대 무용인 28명이 함께한 무대였다. 전문 무용기획자 1세대를 대표하는 장승헌 예술감독의 종횡무진 분주함이 눈에 띈다. 서울공연은 60여년 전 독일로 향한 파독 간호사들의 헌신과 노고에 보답하는 자리로 특히 주목도가 높았다. 평생 고국을 그리워하며 근면과 성실, 사랑과 헌신으로 보낸 이국땅에서의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긴 무대로 특별한 감동을 안겨줬다.

서울공연의 첫 무대는 국가무형유산 태평무로 막을 열었다. 고령의 1세대에서 중견의 2세대 춤꾼이 함께 출연한 무대로 관심을 모았다. 근대 전통무악의 거장 한성준(1874~1941)이 일제강점기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하여 창안한 태평무의 주제가 장대한 심미성으로 표현되었다. 나라 잃은 설움에서 창안된 태평무가 시공을 초월하여 파독 간호사 무용인들의 혈맥을 타고 흐르는 장면을 목도하면서 스스로 숙연해짐을 느꼈다.

이어 호남춤의 대명사 이매방류 전통춤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입춤과 살풀이춤이 선보였다. 섬세한 몸놀림의 단아한 입춤에서 예사롭지 않은 무태(舞態)와 마주한다. 흰색 명주 수건을 공중에 뿌리고 가슴에 보듬어 춤추는 살풀이춤은 파독 60여년 인고의 세월이 투영된듯 한(恨)의 정서와 더불어 애잔함을 더한다.

조선의 마지막 무동으로 일컫는 심소(心韶) 김천흥의 정재기본무가 ‘심소지무’라는 명칭으로 공연되었다. 한국 전통춤의 기본 움직임이 응집된 교과사적 춤사위를 수준급으로 소화했다. 우리춤 고유의 미감을 살리면서 기본 매소드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음은 단체를 이끌고 있는 최윤희 무용가의 노력과 헌신으로 보인다.

‘베를린 MaAk’의 리더 최윤희가 이왕직아악부-국립국악원의 예맥 중심 축을 이루는 김천흥에서 김영숙(국가무형유산 종묘제례악 일무 전승교육사)으로 이어지는 궁중정재의 정통계보 선상에 있는 인물임을 새삼 상기시킨다.

화사한 미감의 ‘오작지무’는 전통과 창작이 혼융된 이색적인 작품이다. 한복 변형 의상에 흰 부채를 들고 원형과 나선형 그리고 다채로운 형상의 꽃잎을 그리며 무대를 오가는 모습이 이채롭다. 파독 간호사 2~3세대가 출연한 ‘오작지무’는 한국과 독일의 이색적인 문화를 매개하는 일종의 ‘오작교’ 의지를 담고 있다. 전통의 변형과 재창조로서 미래세대의 꿈과 희망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마지막 무대는 ‘베를린 아리랑 타고지무’로 꾸며졌다. 환희의 북소리가 웅장하다. 춤과 장단이 어우러진 삼고무 솜씨가 시선을 압도한다. 파독 간호사 후손들로 구성된 베를린 무악 단원들이 함께 어우러져 한국 고유의 아리랑 정신을 장단과 가락에 담아냈다. 파독 간호사로 상징되는 이주의 역사와 문화적 정체성이 밀착된 교감으로 표출되면서 긴 여운을 남긴다. 파독 간호사 60여 년의 기억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세대로 어떻게 공명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무대였다.

한편, 박명현을 중심 축으로 좌우 4명이 출연한 ‘진도북춤’은 보다 프로페셔널한 경지를 보여줬다. 흥과 신명을 주조로 몸짓에 얹은 북가락의 묘미가 시선을 압도한다. 예사롭지 않은 춤실력 뒤에는 재독 젊은 전통예인 박명현이 있다. 그는 진도씻김굿·진도북춤의 명인 고(故) 박병천의 수제자로 통한다. 2000년대 초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설립 초창기 연희과 객원교수로 출강하던 박병천 명인에게 남도의 민속예능을 섭렵한 것이 큰 자산이 됐다.

연희과 조교 시절 전통예술원에 유학 중이던 파독 간호사의 자녀인 김보성을 만났고, 두 사람은 이후 백년가약을 맺었다.

독일에 처음 한국 전통음악의 가락과 선율을 전파한 이는 사물놀이의 명인 김덕수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다. 1980년대 중반 베를린에서 개최된 김덕수 사물놀이 워크숍에 참여한 김보성은 우리 고유의 장단과 가락에 매료되어 한국 유학을 결심한다. 한예종 전통예술원에서 수학하며 한국 전통음악의 가락과 선율을 체계적으로 배웠다. 학업을 마치고 독일로 돌아간 김보성은 남편 박명현과 더불어 파독 간호사 3세대를 비롯 재독 한국인 후손들에게 한국의 전통가무악을 전수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한국어와 독일어에 능통한 김보성이 독일 정부 주도의 공식 음악교과서 편찬작업 중 한국전통음악 부문 책임자로 참여하는 등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 유학을 통해 정통으로 체득한 전통음악을 매개로 한국과 독일 양국의 문화교류와 융성에 가교역할을 하고 있은 셈이다. 유능한 인재로 성장했음이 대견하고 퍽 자랑스럽다.

독일에서 한국 전통가무악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는 또 한명의 중요한 인물이 있으니 바로 재독 한국무용가 최윤희이다. 국립국악고에서 전통춤의 탄탄한 기본기를 익힌 최윤희는 한명옥, 김영숙, 임학선을 사사하면서 무용계 보기 드문 재원으로 통했다. 독일 주재원으로 발령난 남편을 따라 베를린에 거주한 이래 어느덧 20여년의 세월이 흘렀고, 이젠 독일이 제2의 고향이라해도 낯설지 않다. 궁중무용과 민속무용 그리고 한국창작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춤을 섭렵한 그는 파독간호사무용단의 정신적 지주로 모두에게 존경받고 있다.

파독 간호사들이 춤과 매개되어 60년이라는 ‘시간의 강’을 건너 고국 방문공연에 이르기까지 그 숭고한 여정은 ‘베를린 MuAk’이라는 단체가 있어 가능했다.

당초 베를린을 기반으로 구성된 ‘베를린 MuAk’은 독일을 넘어 유럽 전역으로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현지인들에게 보다 ‘넓고 깊게’ 알린다는 취지에서다. ‘대한민국 밖’ 경계의 위치에 있는 한국인이 유럽을 누비며 한국문화를 전파하는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일찍이 ‘뜨거운 헌신’으로 한국의 경제성장을 견인한 파독 간호사, 파독 광부에 이어 우리시대 진정한 애국자가 아닌가?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1460호  14면, 2026년 5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