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서 마주한 60년 — 독•한협회 연방 회원총회와 그루네발트의 저녁

2026년 5월 8일, 베를린은 두 개의 의미 있는 시간을 품고 있었다. 라이프치거 광장의 주독 한국문화원에서는 독•한협회, Deutsch-Koreanische Gesellschaft e.V.(DKG)의 연방 회원총회(Bundesmitgliederversammlung)가 열렸고, 그 날 저녁에는 그루네발트의 주독 대한민국 대사관저에서 임상범 대사 내외의 초청으로 리셉션이 이어졌다.

마침 이날은 유럽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기억하는 5월 8일, 독일어로 Tag der Befreiung (해방의 날)이라 불리는 날이기도 하다. 동시에 한국에서는 부모님의 은혜를 기리는 어버이날이다. 독일의 역사적 기억과 한국의 가족적•윤리적 기억이 같은 날짜 위에 겹쳐진 날, 우리는 독일과 한국 사이의 지난 60년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관계를 생각하는 자리에 함께했다.

시민의 자발적 결사와 국가의 공식 외교가 서로 떨어져 있지 않고 같은 시간 안에서 서로를 지지하고 있음을, 각자의 방식으로 분단을 살아 낸 두 사회의 시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60년의 역사를 돌아본 것은 단순한 일정상의 우연을 넘어서는 의미를 지닌다.

독•한협회는 1966년에 창립되었다. 그로부터 60년. 오늘 회원총회에서는 활동 보고와 재정 보고, 정관 개정, 지역협회 활동, 청소년 교류 프로그램 “Building Bridges”, 그리고 60주년 기념사업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번 총회에서는 Rolf Mafael 회장님의 연임과 함께 새로운 임원진 구성이 이루어졌다.

부회장 Prof. Rolf Hempelmann 교수님과 Juliana Gyonga Baron 부회장님, 사무총장 Barbara Sternagel 변호사님, 재무담당 Thomas Konhäuser 이사님, 서기 Doris Hertrampf 전 대사님, 그리고 한•독 기관 간 관계를 담당하시는 Ok-Hi Yun(윤옥희) 이사님. 외교, 법조, 자연과학, 산업계, 시민사회, 한국학, 한인 사회와의 가교 역할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고 한•독 관계를 위해 오랫동안 일해 온 분들이다.

그루네발트, 또는 역사가 머무는 자리

회의가 끝난 뒤에는 임상범 주독 대한민국 대사님의 초청으로 그루네발트 멘첼슈트라세(Menzelstraße)의 대사관저에서 리셉션이 이어졌다. 그루네발트는 19세기 말 빌헬름 시대 베를린의 부유한 시민계급이 도시의 소란에서 벗어나 정원과 호수 사이에 빌라를 짓던 지역이다.

그러나 이 지역의 역사는 결코 평화롭지만은 않다. 인근 그루네발트 역의 17번 선로(Gleis 17)는 나치 시기 베를린 유대인들이 동유럽의 절멸수용소로 이송되던 비극의 출발점이었다. 그루네발트라는 지명 자체가 독일 현대사의 빛과 어둠을 동시에 새기고 있는 장소이다.

대사관저로 사용되고 있는 멘첼슈트라세의 건물은 과거 베를린 상원의 영빈관(Gästehaus des Berliner Senats)으로 쓰였으며, 빌리 브란트가 서베를린 시장이던 시기에 베를린 주가 매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1964년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베를린을 방문했을 때 머물렀던 장소로도 기억되고 있다. 브란트는 1969년 이후 Wandel durch Annäherung(접근을 통한 변화)이라는 정신으로 동방정책(Ostpolitik)을 추진하며 냉전기 유럽의 정치 지형을 새롭게 그렸다.

가야금, 두 문화의 청각적 교차점

특히 대사님께서 독한협회를 위해 준비하신 가야금 연주(박현정)는 오래 기억에 남을 자리였다. 이날 연주된 악기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떠올리는 12현의 전통 가야금이 아니라 20세기 후반에 개량된 25현 가야금이었다.

19세기 빌라의 목조 천장 아래에서 이 25현 가야금의 울림이 퍼지는 순간, 그 공간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서양 실내악의 울림에 익숙한 살롱 안에서, 가야금의 농현과 시김새가 만들어 내는 미세한 떨림은 낯설면서도 자연스럽게 공간 안으로 스며들었다. 한국 음악의 오래된 기억을 품으며 현대적 표현력을 지닌 울림은 오늘의 한독 관계가 다양한 방식으로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를 조용히 들려주었다

60년, 그리고 그 다음

한•독 관계는 외교 협정이나 정상회담의 사진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정관을 정비하고, 회비 명부를 디지털화하고, 청소년 교환 프로그램을 위해 후원금을 신청하고, 지역 도서관에 한국 코너를 새로 마련하고, 어느 외국인 학생이 처음 잡아 본 해금의 활을 격려해 주고, 어느 저녁 가야금 한 곡을 준비하는 — 보이지 않는 노동의 누적 위에 세워진다.

60년이라는 숫자는 결코 그 자체로 자명하지 않다. 그것은 매년 새로 갱신되어야 했던 어떤 결심의 합계이다. 베를린은 언제나 역사를 품고 있는 도시이지만, 오늘은 그 역사 속에서 한국과 독일의 관계가 얼마나 조용하고도 단단하게 이어져 왔는지를 깊이 느낄 수 있었다. 60년은 결론이 아니라 또 하나의 출발점이다. 이름이 기록될 때 역사는 비로소 얼굴을 갖는다. 그리고 그 얼굴들이 모여, 독일과 한국 사이의 다음 60년을 만들어 갈 것이다.

기사제공: 노유경(Dr. Yookyung Nho-von Blumrö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