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원 박사의 언어와 정체성 이야기(2)

연재를 시작하며

정체성의 문제는 타언어, 타문화와 함께 살아가는 우리에게 뿐만 아니라, (같은 언어를 쓰는) 타인과 소통하고 살아가는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이다. 새로운 기고는 언어와 정체성에 관련된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들을 해보고자 한다. 독일에 살고 있는 동포들이 매일 느끼고 생각하고 억울해하고 감사해하는 이야기들을 편안하게 풀어가면서 읽는 이도 쓰는 나도 함께 위안과 치유를 누리고자 한다.

지치고 힘든 타국 살이에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지속시키고 타인과 잘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은 의미 있을 것이라 감히 믿는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그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어떤)언어로 말한다면 그 메시지는 그의 머리로 전달되지만, 당신이 그의 모국어로 말한다면 그 메시지는 (직접) 그의 가슴으로 간다 .

If you talk to a man in a language he understands, that goes to his head. If you talk to him in his language, that goes to his heart. – 넬슨 만델라 –

이중언어자는 과연 두개의 영혼을 가지는가?

영국인 경찰, 프랑스인 요리사, 독일인 엔지니어, 스위스 관료, 그리고 이태리 연인과 함께 하는 세상은 천국이고, 독일인 경찰, 영국인 요리사, 이태리 엔지니어, 프랑스 관료와 스위스 연인과 함께 하는 세상은 지옥이라는 농담이 있다. 서로 다른 문화는 각각의 장단점이 있음을 나타낸 표현이리라.

그렇게 다른 문화권에서 사용되는 언어도 다를 텐데 어떻게 다를까? 두 개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과연 각각의 다른 언어를 사용할 때 세상을 다르게 볼까? 언제 어떤 언어를 사용하고, 자신의 감정에 따라 다른 언어를 사용할까? 또한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함에 있어서 다른 자아 정체성을 가지게 되나? 여러 언어를 배운 경험이 자아 정체성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 물음에 대해 4명의 다중언어자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먼저 4명의 서로 다른 다중언어자를 간단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다피니 독일어, 그리스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구사자. 언어학과 사회학, 한국학을 전공하고 있다. 독일-그리스인으로 독일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그리스 문화에 훨씬 더 친근함을 느낀다. 독일어가 가장 우세하지만 그리스어 역시 유창하고 읽고 쓰기 모두 가능하다. 독일인 어머니와 그리스인 아버지를 가진 다피니의 가족은 항상 그리스 명절과 습관을 따르고 정서적으로 그리스 친지들과 더 강한 연대감을 느낀다.

대학에 입학해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한자를 배우다가 중국어에도 관심이 생겨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동아시아의 언어들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해 일본어도 배우게 되었고 한, 중, 일 문화에 매료되었다. 더 많은 언어를 배우고 언어 문화적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이다.

미리암 미술사와 한국어를 전공하는 터키계 독일인 학생이다. 두 문화에서 자라났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터키어는 잘 못한다. 이중언어 고등학교에 다녀 영어도 능통하다. 고등학교에서 프랑스어, 스페인어 라틴어를 배웠지만 큰 관심은 없었고 대학에서 3년간 한국어를 전공하여 유창하게 말하지는 못하더라도 잘 알아듣는 편이다. 현재 이티오피아의 언어인 암하릭을 배우고 있다. 색다른 언어와 문화를 배우려 항상 노력한다.

뢰이

뢰이 중국어, 독일어, 영어, 포르투갈어, 한국어, 일본어, 구사자. 중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영국 유학을 거쳐 독일에서 동아시아 국제 정치 경제학을 전공하고 있다. 영어는 중학교부터, 독일어는 고등학교를 졸업 후 배우기 시작하여 두 언어 모두 유창하게 구사한다. 한국어는 K pop을 통해서 고등학교 때부터 배우기 시작,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수학했고, 6개월간 교환학생을 다녀온 것을 시작으로 한국에 여러 번 방문했었다.

올해부터는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마다 세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이 더해져서 좋지만 실제 언어 사용 능력은 늘 갈고 닦지 않으면 계속 상실됨을 항상 안타깝게 생각한다.

리디아 독일어, 그리스어, 영어, 한국어, 일본어 구사자. 독일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부모님 모두가 그리스 이민자로, 가족은 그리스 문화와 전통을 더 따른다. 대학에서 일본어와 한국어를 전공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언어는 다른 문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도구이기에 다중언어자로 자란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다만 일본어와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초기에는 쉽지 않았는데 어느 정도 레벨에 도달하자 재미가 붙으며 공부가 쉬워졌다.

이중, 다중 언어자들은 자신의 감정에 따라 언어사용이 달라지나요?

다피니: 모국어인 독일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말할 때 감정을 더 잘 표현합니다. 제가 아는 주변의 다른 이중언어자들도 많이 그렇게들 이야기합니다. 가장 잘하는 즉 우세한 언어가 독일어임에도 불구하고, 화가 나거나 힘들어지면 의도하지는 않게 그리스어로 감정 표출을 하게 되는 적이 많습니다. 아마도 저에게 그리스어가 독일어보다 감정을 나타내기에 더 편안한 언어인 것 같습니다.

리디아: 이중언어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이나 느낌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언어를 바꾸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독일어로 말하다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그리스어로 말을 바꾸어 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말한 후에 생각해 보면 감정이나 느낌을 더 잘 표현하기 위하여 그리스어를 사용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날 때 자주 그리스어로 말하고 욕은 그리스어로 해야 찰집니다. 재미있는 것은 매우 기쁠 때나 행복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정을 표현할 때 독일어보다 그리스어를 훨씬 더 많이 사용합니다. 이러한 언어 교환 (code switching) 선택은 대부분 의도적이지 않습니다.

미리엄: 저는 독일어로 격한 감정을 나타내는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이상하게도 독일어로 감정을 나타내기가 제게는 쉽지 않습니다. 감정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영어를 더 자주 사용합니다. 독일어로 “Ich bin sauer auf dich”라고 말하게 되면 suaer라는 단어에 다른 많은 의미가 있어서 그렇지 않을까요. 감정 표현을 위해서는 영어가 독일어보다 훨씬 더 편합니다. 그 이유가 독일 사람들보다 영미권 사람들이 더 감정 표현을 잘한다는 등 독일과 영미권의 문화적 차이에서 온다기 보다 개인적으로 제가 두 언어에 대해서 가지는 다른 태도에서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뢰이: 저에게 무슨 언어를 선택하느냐는 감정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상황에 따른 것 같습니다. 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그들에게 제 감정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가끔 제가 사용하는 언어들이 모두 섞이기도 합니다. 저에게 가장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언어는 어떤 특정한 언어라기보다는 그냥 세계 공통언어인 “오!” “아하” “와우” 등의 말들인 것 같습니다.

다중 언어자들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함에 있어서 다른 자아 정체성을 가지게 되나요? 여러 언어를 배운 경험이 자아 정체성을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뢰이: 중국어나 영어는 성(gender)에 따라 다르게 말하는 개념이 없습니다. 그러나 포르투갈어를 발화할 때에 화자가 남성이냐 여성이냐에 따라 동사의 형태가 변하기 때문에 내가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강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한국어나 일본어로 발화할 때는 내가 사회에서 어떤 지위를 가지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인지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존댓말을 쓴다는 것은 상대를 높여야 하는 것이고 그 말은 내가 상대보다 어리거나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에 있다는 것을 깊이 인지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어나 일본어를 말할 때에는 주변 사람과 나의 위계질서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해야 합니다. 즉 나의 정체성은 어떤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냐에 따라 변화합니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때로는 여성으로써의 정체성이 더 두드러지고, 때로는 나의 사회적 지위가 더 중요해지기도 하기에 내 안의 다른 요소들이 부각됩니다.

리디아: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마다 제게는 새로운 세계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나의 정체성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예를 들어 독일어에는 명사에 성(gender) 개념이 있고, 일본어는 명사에 성 개념은 없지만 남성과 여성의 말하는 방식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관용어 중에도 더욱 여성적인 표현, 혹은 더욱 남성적인 표현이 있습니다.

그보다 더 신기한 것은 언어에 위계질서가 있는 것이지요. 두 명의 화자 사이에 어떤 말투를 써야하고, 어떤 표현을 써야 공손한 것인지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즉 두 사람의 사이의 “관계”가 어떤 말을 해야할 때 가장 중요하게 떠오르게 됩니다. 이렇게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어떤 개념이 더 중요한지를 아는 것 자체가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서 얻을 수 있는 능력이고, 여러 언어를 배우고 쓰게 되면서 나의 성별이 중요할 때, 나이가 중요할 때, 사회적 지위가 중요할 때를 자동적으로 깨우치게 되면서 정체성이 견고해져 갑니다.

여러 가지의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은 그래서 환상적인 경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늘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나에 대해 끊임없이 배울 수 있게 해줍니다.

다피니: 다른 언어를 사용하면 다른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는 말은 과장된 표현인 것 같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과거에 단일 언어사용자가 이중, 다중 언어자들보다 훨씬 많았을 때에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자신들과 많이 다를 것이라 생각하고 만들어낸 개념이라 생각합니다.

이 의견에 대해 개인차가 있겠지만 저의 경우에는 다른 언어를 말할 때 물론 다른 소리를 내고 다른 언어적 구조를 생각하고 다른 문법을 사용해서 말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럴 때마다 다른 정체성을 발휘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또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말은 대체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정체성이라는 것 자체가 다면적인 개념이지 않습니까? 누구와 말하는지에 따라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 가가 정해집니다. 즉 내가 독일어를 말할 때에 나의 정체성 중 한 면이 드러나게 되고 – 즉 이 말을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나의 행동 등에 따라 다듬어지고, 내가 그리스어나 영어를 말할 때에, 또한 한국어를 구사할 때에는 그 상황과 화자에 따라 각각 다른 면들이 구성되고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사실 단일 언어 구사자들도 마찬가지 아닐 까요? 누구와 어떤 상황에서 말하느냐에 따라 각각의 다른 정체성을 드러내게 되지 않겠습니까?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내가 다중언어 사용자이기 때문에 각각의 언어 사용에 따라 “서로 다른 언어로 이루어진 정체성”의 한면을 가지게되기 때문에 삶이 더 풍성하다고 느껴진 다는 점입니다.

미리엄: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마다 새로운 문화를 접하게 되기에 개인적인 성향이나 성격도 변하고 즉 성장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어, 영어, 한국어를 비교 대조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것 자체가 인생의 엄청난 발전입니다. 제 생각에는 독일 사람들은 본인의 일에 더욱 관심이 많은 편이라 다른 사람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을 활짝 여는 사람들을 만나기 쉽지 않습니다. (물론 저의 편견일 수 있겠지만 많은 분들이 이 부분에 동의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미국 사람들은 독일 사람들에 비해 모르는 사람들과 small talk이라 해서 쉽게 이야기하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사귀기 싶습니다. 한국 사람들 역시 잘 모르는 사람들과 미국사람들처럼 쉽게 말을 섞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문화 자체의 차이이지 언어 차이에서만 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즉 다른 언어를 배우면 다른 언어를 말하고 사용함에 의해서 성격의 변화는 올 수 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정체성 자체가 변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4명의 다중 언어자들에게 언어와 정체성에 대한 직접 경험을 들어보았다. 각각의 다중 언어자들은 언어의 습득 과정과 사용에 대한 자신만의 고유한 스토리와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언어의 차이는 당연히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되겠지만 이것은 단순한 문법과 어휘의 차이를 넘어선다. 그보다 더 중요한 차이는 언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떤 주제나 표현이 공손하고 실례가 되는가, 호칭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의 규칙이 언어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다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은 서로 다른 언어들을 통해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경험을 일상 속에서 지속하고 그 경험을 통해 자신을 견고하게 만들면서 인생에 다양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만들어가며 살아가는 것이다. 실로 근사한 삶이다!

1278호 20면, 2022년 8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