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유럽의 건축을 돌아보다(1)

교포신문 문화사업단의 문화이야기 (263)

오늘날 우리가 유럽의 도시를 걸을 때 만나는 풍경의 상당수는 사실 19세기에 완성되었다. 파리의 시원하게 뚫린 샹젤리제 거리, 런던의 웅장한 국회의사당, 그리고 하늘을 향해 치솟은 에펠탑에 이르기까지. 19세기는 건축 역사상 가장 극적이고 복잡하며, 동시에 가장 역동적인 미학적 실험이 펼쳐진 시대였다.

당시 유럽은 격변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산업혁명은 생산 방식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 전체를 재편했고, 시민혁명은 왕권 중심의 사회 구조를 뿌리째 흔들었다. 증기기관의 소음과 공장의 연기가 도시를 덮치기 시작했을 때, 건축가들 역시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해야 했다. “우리는 이 새로운 시대를 어떤 모습으로 지어 올려야 하는가?”

19세기 건축의 독특함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양면적인 태도에서 비롯된다. 한편으로는 과거의 영광스러웠던 양식을 끌어와 불안정한 현재를 위로하려 했고(역사주의), 다른 한편으로는 철근과 유리라는 전대미문의 신소재를 받아들여 미래를 향해 질주했다. 19세기 건축은 ‘과거의 복원’과 ‘미래의 창조’라는 두 축이 팽팽하게 맞물리며 돌아간 거대한 톱니바퀴였다.

고대의 질서로 돌아가다: 신고전주의의 유산

19세기 초반 유럽을 지배한 미학적 열망은 ‘고전으로의 회귀’였다. 18세기 후반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 유적의 발굴로 촉발된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 대한 열정은, 19세기 초 나폴레옹 시대에 이르러 정점에 달했다. 이를 ‘신고전주의’라 부른다.

신고전주의 건축가들은 로코코 양식의 가볍고 화려한 장식성에 반발했다. 그들은 고대 신전이 보여주는 엄격한 비율, 대칭미, 그리고 좌우로 단정하게 늘어선 기둥에서 영원불멸한 절대적 아름다움을 보았다. 이들에게 건축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이성과 질서, 그리고 국가의 위엄을 체현하는 도구였다.

프랑스 파리의 팡테옹(Panthéon)이나 개선문, 그리고 독일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은 이러한 신고전주의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들 건축물은 보는 이로 하여금 고대 로마의 제국적 거대함과 아테네의 이성적 질서를 동시에 느끼게 만든다.

그러나 신고전주의는 곧 한계에 부딪혔다. 완벽한 대칭과 비례를 강조하는 고전적 양식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복잡해지는 19세기 근대 도시의 실용적 요구를 모두 담아내기엔 너무나 경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주의와 절충주의

신고전주의의 단단한 틀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자, 건축가들은 시선을 고대 그리스·로마 너머로 넓히기 시작했다. 중세 고딕, 르네상스, 바르크, 심지어 이슬람과 비잔티움 양식까지 역사 속 모든 양식이 탐구의 대상이 되었다. 이처럼 과거의 다양한 양식을 불러내어 재해석한 흐름을 ‘역사주의’라 한다.

19세기 중반에 이르자 이러한 흐름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하나의 건물 안에 여러 시대의 양식을 혼합하여 사용하는 ‘절충주의’가 대세로 자리 잡은 것이다.

예를 들어, 건물의 전체적인 골격은 차가운 주철 구조로 세우되, 외벽은 화려한 르네상스풍의 석조 장식으로 덮고, 내부 천장에는 바르크풍의 극적인 벽화를 그려 넣는 식이었다. 파리의 가르니에 오페라 극장(Opéra Garnier)은 이러한 절충주의와 네오 바르크 양식이 결합한 대표적인 결실이다. 이 극장은 오페라를 관람하는 장소이자, 당시 시민계급이 자신의 부와 지위를 과시하는 화려한 무대 그 자체였다.

당시 비평가들은 이러한 절충주의를 두고 “자신만의 양식을 갖지 못한 시대의 미학적 방황”이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독창적인 양식을 창조하지 못하고 과거의 양식을 골라 담았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절충주의야말로 19세기라는 시대가 가졌던 폭발적인 에너지와 복잡성을 가장 잘 대변하는 증거였다.

신소재의 등장: 돌의 시대에서 철과 유리의 시대로

과거의 양식을 마스크처럼 써 올리는 동안, 건물의 피와 뼈대에서는 더욱 근본적인 혁명이 진행되고 있었다. 바로 산업혁명이 가져다준 선물, ‘철’과 ‘유리’였다.

이전까지 건축의 주재료는 돌과 벽돌, 그리고 나무였다. 돌로 지은 건물은 웅장하고 견고했지만, 무거운 하중을 견디기 위해 벽이 두꺼워져야 했고 창문의 크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기 시작한 주철과 단철은 전혀 다른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철은 석재에 비해 얇고 가벼우면서도 엄청난 인장 강도를 자랑했다.

이제 건축가들은 두꺼운 내력벽 없이도 기둥 몇 개만으로 거대한 공간을 떠받칠 수 있게 되었다. 벽이 사라진 자리는 대형 판유리로 채워졌다. 마침내 실내 공간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풍부한 자연광, 그리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 형성된 트인 공간은 대중에게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공간적 해방감을 선사했다.

1851년 런던 세계박람회를 위해 세워진 조셉 팩스턴의 ‘수정궁(Crystal Palace)’은 이 신소재 혁명의 하이라이트였다. 온실 건축가였던 팩스턴은 조립식 철골 구조와 유리를 이용해 단 9개월 만에 축구장 수십 개 크기의 대형 전시관을 완공했다. 과거의 양식을 모방한 석조 장식은 단 하나도 없었다. 공학적 효율성과 재료 본연의 특성이 그대로 노출된 이 거대한 유리 상자는, 다가올 20세기 근대 건축의 탄생을 알리는 명확한 신호탄이었다.

과거를 향한 향수(역사주의)와 미래를 향한 열망(기술 혁신)이라는 두 개의 물결 속에서, 19세기 건축가들은 근대 도시라는 새로운 무대를 완성해 나갔다.

문화사업단은 총 6회에 걸쳐 19세기의 유럽건축을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

1476호 28면, 2026년 9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