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승아(코레아협의회)
“Ari bleibt!”
“Wir wollen Ari zurück!”
2026년 8월 14일, 제9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한국인, 일본인, 독일인 할 것 없이 다양한 국적과 연령대의 사람들이 한데 뭉쳐 한마음으로 구호를 외쳤다. 지난해 변방으로 쫓겨난 평화의 소녀상 ‘아리’가 원래 자리로 돌아오기를, 찬란한 젊음과 청춘이 갈가리 찢기고 짓밟히는 일이 두 번 다시 벌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올해로 9회를 맞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은 1991년 8월 14일 대한민국 거주자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과 전쟁범죄를 실명으로 증언한 고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로부터 시작되었다.
코리아협의회는 독일 내 다양한 여성인권 단체들과 협력하여 매년 추모식 및 시위를 주최하고 있다.
이른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겪은 거대한 구조적 폭력은 아직까지도 전쟁과 학살, 여성 혐오와 페미사이드라는 이름으로 세계 곳곳에서 이어져가고 있다. 이에 맞서 연대하고 싸우기 위해 코리아협의회(KoreaVerband)의 AG Trostfrauen, Cênî 쿠르드 여성평화사무소, 여성연합 Courage, 필리핀 가브리엘라 독일지부, 베를린 일본여성모임, 페미사이드 반대 네트워크 그리고 유럽 한민족 연대등를 비롯한 수많은 단체와 개인들이 앞장섰다.
추모식 준비는 분주했다. 소녀상 ‘아리’를 그리워하는 지역 이웃들은 자발적으로 전단지를 배포했고, 컵케이크를 구워 모금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여러 도움의 손길을 거쳐 마침내 추모식의 시작을 알리는 연설이 울려 퍼졌다. 미테구의 박해로 망명한 평화의 소녀상 ‘아리’가 임시로 머무는 자리, ZK/U Siemensstr. 27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한국인, 일본인, 독일인 참가자들의 비율이 비슷하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다음 순서는 소녀상 ‘아리’를 위한 헌화식이었다. 시위 참여자들은 저마다 허리를 굽혀 ‘아리’에게 꽃을 바쳤다. ‘아리’의 꼭 쥔 주먹, 발치, 텅 빈 옆자리는 곧 색색의 꽃으로 가득 찼다. 뒤이어 가야 무용단의 ‘아리랑’ 한국무용 공연이 있었다. 새하얀 한복과 붉고 푸른 옷고름이 바람에 흩날리며 가장 한국적이고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냈고, 관객들의 큰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짧은 기념 촬영 이후, 참여자들은 소녀상 앞에서부터 아리가 원래 있던 빈자리까지 행진했다. 손에는 붉은 그물을 들고, 입으로는 행진 구호를 외치며 가부장적 폭력, 여성살해, 성폭력 등 반인륜적 인권침해 행위에 저항하고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연대를 표했다.
붉은 그물, 상그레 데 미 상그레(Sangre de mi Sangre)는 멕시코의 페미니즘 예술 단체 컬렉티브 코덱티바 콜렉티바 힐로스(Colectiva Hilos)의 참여형 예술 프로젝트로, 반여성혐호살해 (페미사이드)운동이다. 코리아협의회는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아리’를 둘러싼 미테구청의 철거 압박과 전시 성폭력•가부장적 폭력에 맞서는 연대 집회 현장에서 이 ‘붉은 그물 짜기’ 액션을 함께 진행해왔다.
이번 행진에서도 역시 여러 참가자들이 붉은 그물을 손으로 잡으며 결속과 지지를 다졌다.
소녀상 ‘아리’가 돌아와야 할 원래 자리는 Bremer Straße와 Birkenstraße의 교차로로, 유럽 최초로 소녀상이 설치된 공공부지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지속적인 철거 압박에 시달려왔고, 미테구청에 의해 강제 철거되었다. 현재 ‘아리’는 원래 위치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비영리 예술 공간(ZK/U)에 임시로 재설치되었다.
Moabit 주민들은 아리가 있던 자리를 ‘Aris Platz(아리의 광장)’라고 부르며 아리가 원래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Aris Platz에서는 가야 무용단의 흥겨운 난타 공연으로 추모식의 두 번째 막이 올랐다.
이후에는 추모식과 시위에 참여한 단체들을 대표하여 다양한 연설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OMAS GEGEN RECHTS Berlin (극우를 반대하는 할머니들), 필리핀 가브리엘라 독일지부, MeToo Asians e.V., Cênî 쿠르드 여성평화사무소, Linksfraktion BVV-Mitte(베를린 미테구 좌파당), JUSOS Berlin Mitte (베를린 미테구 청년 사민당), Grüne Jugend (청년 녹색당), Frauenverband Courage (여성협회 쿠라지), Afghan Women Protest(아프간 여성 항쟁)를 비롯하여 수많은 연설자들이 목소리를 내어 참가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이날 마지막 일정은 Quitzowstraße 103번지에 위치한 코리아협의회의 일본군 ‘위안부’ 박물관에서 진행되었다. 베를린일본여성모임(Japanische Fraueninitiative Berlin)은 다양한 국적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생애와 증언을 발표하였으며, “일본인들은 ‘위안부’ 피해자 여성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꼭 알아야 한다.”라는 맺음말로 관객들의 진심 어린 박수를 이끌어냈다.
이후 참여자들은 박물관에서 준비된 다과를 들며 시위에 참여한 소감을 나누고, 깊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통해 여성 인권 문제를 위한 연대와 단합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평화의 소녀상 ‘아리’는 단순한 조각상이 아니라 다양한 공동체를 하나로 엮는 구심점이며, 현지 독일 시민사회와 이주민들이 함께 철거 위기에 맞서 지켜낸 평화•민주주의•인권 연대의 상징 그 자체이다. 내년 제10회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에는 ‘아리’가 원래 자리에 영구적으로 머물 수 있기를 바란다.
1473호 19면, 2026년 9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