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스루에. 지난 10월 3일 지난 칼스루에 한인회(회장 이종원)에서는 가을소풍 행사를 가졌다. 지난여름이 유난히 더웠던 만큼 선선해진 가을 기운이 반가운 날이었다. 우리 음식을 나누고 우리말로 대화하며 가을 한때를 즐기는 동포들의 모습은 벼 익는 고국의 들판을 보듯 풍요로웠다.
반가운 얼굴들, 푸짐한 한 상
사람이 좋고 날씨까지 좋아서였을까. 행사장 진입로에는 한인회장이 직접 나와 일일이 환영 인사를 건네고 주차 안내까지 맡고 있었다. 입구는 꾸벅 인사하는 사람, 때로는 서로 부둥켜안고 안부를 묻는 사람들로 붐벼 좀처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시작 시간을 12시 30분으로 알렸지만, 제 시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상 가득 차려져 있었다. 몇십 킬로그램은 족히 될 숯불고기가 큼직한 그릇마다 담겨 있었고, 각종 김치와 나물, 해산물, 푸성귀가 뷔페 식탁을 빼곡히 채웠다.
이 음식들은 교민들이 집에서 정성껏 준비해 온 것들이었다. 음식을 맛본 사람들은 “이건 어떻게 만드느냐”며 요리법을 일일이 묻기에 바빴고, 만든 이는 재료와 손맛의 비결을 아낌없이 알려 주었다. 그렇게 레시피가 오가는 동안 식탁 곳곳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특별한 순서도 격식도 없었다. 모두가 마냥 정겹게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이어 가는 사이, 이종원 한인회장의 환영 인사가 있었다. 건강한 얼굴로 만나 반갑다는 말과 함께 “오늘 임원들이 준비한 음식을 많이 즐기시고 늘 건강하시라”는 당부가 담겼다.
막걸리와 포도주를 비롯한 음료들을 준비해 온 이들도 있어, 잔을 나누며 정담이 이어졌다. 한 잔 한 잔에 지난 안부와 살아온 이야기가 담겨 자리는 더욱 무르익었다.
‘코리아’를 주제로 한 어린이 글짓기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운 아기의 뒤를 따르며 우리 동요를 불러 주는 어르신이 있는가 하면, 초등학생 또래의 한인 2세와 3세 아이들은 공놀이를 하거나 그네를 탔다. 아이들끼리 놀이를 만들어 둥글게 둘러앉아 단체 공놀이를 하기도 했다. 아이들 입에서 가끔 “빨리빨리”, “안 돼” 같은 우리말이 터져 나올 때마다 어른들 사이에 웃음이 번졌다.
행사가 진행되는 중,놀이터를 돌며 아이들에게 공책과 연필을 조용히 나눠 주는 이가 있었다. 매번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행사의 묘미를 더해준 민병재 전회장이 어린이들의 글짓기 행사를 위해 미리미리 준비하던 것이었다. 한인회 소풍 행사가 열리기 전, 그러니까 광고 단계부터 어린이 글짓기를 함께 알렸고, 행사 대상인 어린이들에게 1시간 동안 글을 쓸 시간을 마련한 것이다.

주제는 ‘코리아’, 곧 한국이었고 글짓기 참여 인원은 지난 퀴즈행사에서 이미 영특함을 알려온 최윤미, 벤과 테오 (Ben und Teo) 쌍둥이 형제, 킬리안 폰 로브(Killian von Lachow) 등이었다.
이들 교민 어린이 4명은 주어진 시간 동안 글을 써서 민병재씨에게 제출했다. 한글로 글을 짓지 않을까, 기대한 사람도 있었겠지만, 4명 모두 독일어로 글을 작성했으며 주최 측은 글의 우열을 가리지 않고 참가한 어린이 전원에게 상과 상품을 수여했다.
정든 고인을 기리며
행사가 한창이던 때, 초췌한 모습의 한 남성이 나타났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독일 간호사 출신 고 전미영자씨의 외아들 전용씨였다. 그는 어머니의 부고를 전하며 떡을 돌렸고, 비보를 접한 교민들은 그를 안고 위로했다.
고인은 다년간 지역 교민과 한인회를 위해 봉사하며 많은 이의 존경을 받아 온 분이다. 사람들이 고인과의 추억을 하나둘 꺼내 놓자, 외아들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울먹였다. 곁에 있던 이들도 말없이 그의 어깨를 감쌌다.
어머니를 잃은 슬픈 아들이 어머니의 장례 방법과 절차를 묻자, 어르신 교민들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교민사회에는 이제 고인이 된 분들이 적지 않다. 그분들의 뒤를 이은 다음 세대가 이런 자리에 얼굴을 내민 모습은 대견하고 또 감동스러웠다. 앞선 세대가 일군 공동체의 온기가 그렇게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행사가 무르익자 한쪽에서는 즉석 등산모임이 제안되었고, 취미 활동을 약속하는 이들도 보였다. 한 간호사 출신 교민은 서로 나이 들고 성숙해 가는 모습을 보니 “이것이 인생이고 우리의 운명이구나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매년 계절마다 마련해 주는 한인회 행사가 소중하고 또 고맙다”고 덧붙였다.
이영수기자
1478호 8면, 2026년 10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