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열사기념관
‘을사늑약 무효’ 외친 이준 열사 순국 116년 추모식 거행

일본이 강제 체결한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 애쓴 이준 열사의 순국 116주기를 기리는 추모식이 7월 14일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이준열사기념관(관장 송창주)에서 거행됐다.

이날 열린 추모식에는 최형찬 주네덜란드 대사, 김학재 주벨기에 정무공사, 타카미츠 무라오카 라이덴대 명예교수, 이기항 사단법인 이준아카데미 원장, 송창주 이준열사기념관장 및 현지 교민들이 참석했다.

최영묵목사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추모식은 국민의례, 헌화, 이기항 이준아카데미 원장의 기념사, 최형찬 주네덜란드 대사의 추모사, Rob Schuurmans 헤이그 시장의 축사(대독), 그리고 특별 연설로는 Remco Breuker 라이덴대학교 한국학과장, 다까마추 무라오까 라이덴대학교수(은퇴), ‘이준 유훈’ 순으로 진행되었다. 각 순서 사이로는 합창과 독창으로 숙연한 분위기와 깊은 감동을 더했다.

이기항 이준아카데미 원장은 기념사에서 먼저 이준 열사의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참석과 좌절, 그리고 결국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소개하였다. 이어 이준열사의 정신이 삼일운동에도 이어졌고, 우리나라 국민들은 “천년의 잠”에서 깨어나게 되었음을 알렸다.

끝으로 이기항 원장은 “땅이 크고 사람이 많은 나라가 큰 나라가 아니고, 땅이 작고 사람이 적어도 위대한 인물이 많은 나라가 위대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라는 이준 열사의 유훈을 소개하며 기념사를 마쳤다.

기념사 후, 성악가 윤지(소프라노)씨의 독창이 있었고, 이어 최형찬 주네덜란드 대사의 추모사가 이어졌다.

한편 Remco Breuker 라이덴대학교 한국학과장, 다까마추 무라오까 라이덴대학교수가 특별연설로 이날 추모식에 참석하였다.

Remco Breuker 라이덴대학교 한국학과장은 116년전 이준열사가 보여준 그 숭고한 정신, 근본적인 인간적인 가치를 굳게 믿고 붙들고서 어떤 희생도 감수한 그 끈기와 집념. 이는 단기적 안목에서 보면 아마도 아무런 결과도 없어 보이나 장기적으로는 한국이 오늘날 달성한 한국의 위상에 기여했음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이는 세계의 위대한 본보기로 자리 잡게 되었음도 소개하였다. . 

일본인 무라오카 교수는 이달 초 빌럼-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이 연설을 통해 17∼19세기 자행된 노예제에 대해 처음으로 공식 사죄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이 역사적인 사건이 일본 언론에 극히 일부만 보도되는 데 그쳤다는 점에 몹시 실망했다”고 소신을 밝혔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어두웠던 과거사를 잊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을지 모르지만, 과거가 없다면 현재도, 미래도 없다”며 “이 사실은 가해자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에게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마지막 순서로 “이준 유훈”을 소개와 기념촬영 순서로 “이준 열사 순국 116년 추모식”은 막을내렸다.

* 이준열사 기념관

이준열사 기념관은 1907년 6월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이상설, 이위종과 함께 고종 황제의 밀사로 파견된 이준 열사가 묵으며 활동했던 드용(De Jong) 호텔 건물에 조성됐다. 이준 열사는 조선의 외교권을 빼앗은 1905년 을사조약이 일본의 강압으로 이뤄졌음을 폭로하고, 국제 여론의 힘으로 이를 파기하려 했다. 하지만 일본의 방해와 강대국들의 냉대로 회의에 참석조차 못 했고, 그해 7월 이곳에서 분사(憤死)했다.

이후 85년간 까맣게 잊혔던 이 호텔 건물을 네덜란드 교민인 송창주 관장과 남편 이기항이준아카데미 원장 부부가 발굴했다. 두 사람은 1992년 이 건물의 사연을 적은 현지 신문 기사를 보고 “‘유럽 유일의 독립운동 유적지를 이대로 둬선 안 되겠다”고 결심했다. 사재를 털어 건물 매입에 나섰고, 직접 이준 열사와 밀사단의 흔적과 자료, 유품을 찾아 1995년 8월 개관했다.

기념관은 1층부터 3층까지 각종 전시물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2층에는 당시 이준 열사가 지내고 분사한 방을 재현했다. 코로나 직전인 2019년 7000여 명이 방문하는 등, 27년간 줄잡아 9만여 명이 방문한 것으로 추산된다.

한편 헤이그 이준열사기념관(관장 송창주)은 2022년 8월 20일 120 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준 열사 순국 115주년 추모식”과 코로나로 미루었던 “개관 25주년 기념 행사”를 개최햇다. 이 행사에는 이기항 사단법인 이준아카데미 원장, 정연두 주네덜란드 대사, 얀 반 자넨 헤이그 시장, 타카미츠 무라오카 라이덴대 명예교수, 네덜린드 동포가 참석하였다.

* 헤이그 특사(밀사)

1905년 11월 일제는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이른바 ‘을사늑약(乙巳勒約)’을 불법적으로 강제했다. 이에 고종황제는 이준(李儁)과 이상설(李相卨)·이위종(李瑋鍾) 등 3명의 헤이그특사에게 특명을 내려 1907년 6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참가해 구국외교활동을 펼치도록 한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검사인 이준 열사는 이상설, 이위종 대표와 함께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참석을 위한 고종 황제 특사로 파견돼 1907년 6월 25일 헤이그에 도착했다.

특사 일행은 일제의 감시망을 피해 6월 25일경 헤이그에 도착해서 바겐슈트라트 124A번지의 ‘드 용 호텔(Hotel De Jong)’에 숙소를 정했다. 그러나 이미 회의는 6월 15일에 개최된 후였다. 그럼에도 이들은 을사늑약의 불법성과 부당성, 일제의 침략상 등을 알려 열강의 후원을 받기 위한 외교활동을 전개하며 분투했다.

대한제국 대표단 3인은 고종 황제 신임장을 제시하고 회의 참석을 시도했지만, 당시 일본의 방해와 의장국이던 러시아를 비롯한 영국, 미국의 냉담과 무관심으로 회의장 입장이 결국 좌절됐다.

이에 대표단은 ‘왜 대한제국은 제외하는가’라는 제목의 항의문을 작성해 현지에서 각국 대표를 찾아다니며 직접 전달하는 한편, 불어에 능통한 이위종은 외신기자 클럽에서 ‘한국의 호소’라는 제목으로 회의를 취재하던 각국 기자들을 상대로 실상을 알리려 애썼다.

하지만 일제의 조직적인 방해와 압력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웠다. 이런 현실에 이준은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7월 14일 당시 머물렀던 ‘드용(De Jong)호텔’에서 돌연 순국하는 비운을 당했다.

그는 그날, 마치 의식을 잃은 것처럼 잠들어 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우리나라를 도와주십시오. 일본이 우리나라를 짓밟고 있습니다!”라고 부르짖고 숨을 거뒀다고 한다. 일제의 불법적 행위에 나라를 지키지 못한 근심과 분통으로 음식을 끊게 됐는데, 결국 병으로 이어져 죽음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헤이그 시청 문서보관소 사망자 명부에는 그의 죽음이 ‘의문사’로 기록됐다고 이준아카데미 측은 전했다.

열사의 유해는 헤이그의 ‘니우 에이컨다위넌(Nieuw Eykenduynen)’ 공동묘지에 가매장됐다가, 1963년 9월 26일 서울 수유리로 이장됐다.


최형찬 주네덜란드 대사의 추모사

최형찬 주네덜란드 대사

존경하는 이기항 원장님, 송창주 관장님,, 헤이그 시장님을 대신하여 참석해 주신 Rob Schuurmans 국제관계국장님, 윤 원 한인회장님. 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하신 내외 귀빈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준 열사님의 순국 116주기를 맞아 숭고한 애국정신을 추모하고, 열사님이 우리에게 남기신 빛난 얼을 기리기 위해 이 자리에 함께 모였습니다.

평생 동안 흔들리지 않는 조국에 대한 사랑과 헌신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애쓰신 선각자이자 애국자이신 이준 열사님에 대하여 삼가 경건한 마음으로 명복을 빕니다.

이준 열사님께서는 일본의 주권침탈 아래 동포들이 겪는 불의와 고난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이러한 불의와 고난을 극복하기 위해 사회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교육에 앞장서며 학교를 설립하는 등 교육에도 헌신하셨습니다.

땅이 크고 사람이 많은 나라가 큰 나라가 아니고, 땅이 작고 사람이 적어도 위대한 인물이 많은 나라가 위대한 나라가 되는 것이라고 하신 열사님의 말씀이 이 순간에도 저희들에게 간절히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이준 열사의 이러한 가르침은 이후 수많은 사람들에게 국가적 자부심과 애국심을 키워 주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습니다. 현대 세계사에서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발돋움한 유일한 사례가 대한민국입니다. 일제 식민지의 고통과 치욕을 겪고 새롭게 태어난 대한민국은 분단과 6.25 전쟁의 혼란과 폐허를 극복하고 경제 발전과 정치 민주화를 이루어, 국제사회에서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 국격에 걸맞는 역할을 하는 글로벌 중추국가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와 법치, 법에 기반한 국제질서라는 가치를 소중히 여기면서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이처럼 정치.경제.외교.문화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이준 열사를 비롯한 수많은 애국자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분들이 후세에게 남긴 유산을 소중히 하고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책임감이 더욱 무겁게 느껴집니다.

다행스럽게도 한일 양국관계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과거를 잊어서는 않되겠지만, 미래를 위한 협력도 필요합니다.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한일 양국간의 교류와 협력은 양국의 공동이익은 물론 세계 평화와 번영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렇게 뜻깊은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애써 주신 이기항 원장님과 송창주 관장님, 그리고 이 자리에 함께 하신 내외 귀빈 여러분께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준 열사님께 존경과 추모의 마음을 바치며, 영원한 안식을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1324호 20면, 2023년 7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