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목이의 아들(1)

류현옥

1

경목이의 과묵함은 아들을 가진 아버지가 된 후로도 변하지 앉았다. 소리 크게 웃는 사람도 아니고 말 안 듣는다 하여 아들을 고성으로 야단치지도 않았다. 가족과 친지들은 모두 그렇게 알고 있다.

그를 이해하기 어려운 점으로는, 침묵을 지키다가 전연 경우에 어울리지 않는 엉뚱한 말로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은 믿는 돌에 발등을 찍힌 것과 같다고 했다. 한 번 당한 사람은 그를 피했다. 그는 말이 없는 사람이고 그를 피하는 사람들을 증오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립된 상태에서 주어진 자신의 일에 집중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의 사교 기법이다. 어쩌면 떠오르는 생각을 표현하는 어술(的話) 부족으로 대인 관계에도 자신이 없어 마음속에 바깥을 향해 세운 두꺼운 벽을 지켰다.

계모 밑에서 성장하여 어린 날의 습관으로 사람의 눈치를 보며 미리 경계선을 그어 상대방에게 무언의 경고를 하는데 익숙해있다. 첫 인상이 겁먹은 모습이다. 힐끗 살피다가 묻는 말이 무슨 뜻인가 생각하다가는 엉뚱한 맞지 않는 대답을 한다. 그는 사랑이 없는 차가운 분위기 속에 자랐다. 어린 정서에 생각 없이 대답했다가 불시에 날아드는 따귀의 아픔을 안다.

어른이 되고 아버지로 사회적 신분이 승격 되었지만 아직도 대화에는 자신이 없다. 워낙 삶의 기초가 부족하였고 사교 훈련의 기회도 없었다. 우선 상대가 누구이든지 눈치부터 살피며 예고 없이 날라 올 구타에 대한 방어부터 하다 보니 생각이 중단되어 말문이 닫히는 것이다.

관심을 가진 사람이 두 번째 반복 질문을 하면 어정쩡한 대답을 찾는데 시간이 걸린다. 심사숙고하는 그의 표정으로 묻는 사람의 오해를 샀다. 이해가 더딘 그가 심사숙고에 들어가면 상대는 어젯밤 또 술독에 빠졌던 거냐며 조롱을 해 그에게 치명상을 입히기도 한다. 순간적으로 뒤통수를 얻어맞는 격이다.

“밥값도 못하는 어미 없는 놈, 묻는 말에도 대답 못하는 자식이 어디 가서 뭣해서 먹고 살까?”

걱정인지 저주인지 모를 계모의 말은 비수가 되어서 그의 가슴에 꽂혀 녹이 슨 상태다. 이런 상황은 평생을 칼끝의 자루를 잡아 흔드는 계모의 증오가 전해지는 고통이었으며 인간에 대한 불신의 뿌리가 되어 그의 정서를 지배했다. 해묵은 통증은 세상을 살아오면서 잊고 사는 중에 예기치 않는 말 한마디가 엉뚱한 기회가 되어 민감하게 전신을 뒤흔들어 반응하게 되는 것이었다. 마음의 상처를 덮은 엷은 피부가 벗겨지고 피가 다시 흘러내린다. 대답을 기다리던 사람은 그가 짓는 슬픈 표정을 보곤 “아이고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 약속을 어길 뻔했군. 우리 다음에 봄 세!” 하며 그를 혼자 두고 급히 떠난다. 가는 사람의 뒤를 바라보면서 그는 어린 자기를 버려두고 먼 곳으로 떠나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눈물을 삼켰다. 그는 병신이 아니지만 자주 병신 소리를 들었다.

“…쯧 쯧, 저 병신을 어쩌지?”

계모가 툭 하면 뱉던 말이었다. 집을 떠나 오랜 세월을 외국에 살면서도 같은 상황을 겪어야 하는 이유를 그는 이해하지 못했고 때때로 스스로의 반응에 당황했다. 계모가 유일하게 관심을 표현한 말일지는 알 수 없지만 살아갈수록 이 말 속에 내포되어 있던 독기가 자리를 잡고 커져 갔다. 어린 날 한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 … 저 귀한 아들을 두고 애 미가 죽었으니…. 복도 지질이 없는 불쌍한 거 !…”하며 머리를 쓰다듬다 주었다. 동정의 표시로 이해하기 에는 그는 아직 어린 나이였다 .

2

그의 직장생활이래야 특별한 자격증 없이 시작하여 2년 마다 바뀌는 단체장의 비위를 맞추며 전화를 통한 회원들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일인데 민망하게 사무장이라고 불렀다. 그동안 일을 맡은 지 십 여 년이 되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발간되는 회원지 편집일도 숙달이 되었다. 이 국의 대도시에서 일어나는 한인사를 체험한 증인으로 이제는 한 인간으로서 위치를 차지한 사람이라고 자신이 마음속에 조금씩 자리를 잡았다. 그는 집과 근무처 외에는 아는 곳이 없었다. 그가 살고 있는 나라의 사람들과는 대화할 기회가 없었다. 몸담고 사는 사회에서 통하는 언어를 써먹을 일이 없어 구태여 독학을 할 필요성이 없었다.

“용하게 어떻게 이곳까지 와서 살게 됐나?” 뒤에서 쑥덕거리는 말을 들었지만 못들은 척 했다. 사람들이 말하는 등신에게도 타고난 천부적 재능이 있었다. 혼자 생각하고 정리하고 모든 일을 천천히, 옆에서 누가 팔짝뛰어도 눈치부터 보고 상황판단을 하여 처리하는 여유가 그것이었다. 느리긴 해도 그러나 때때로 한마디 할 줄 아는지 둔한 장점이 있었다.

하기야 벌써 몇 년인가? 월급이라 이름 붙일 수도 없는 적은 돈을 받으며 회관의 문간방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이 과일 봉지라도 갖다 줄라 치면 눈물을 글썽여버리며 고마워하여 은근하게 사람들의 연민을 끌었다. 회장이 바뀔 때마다 그의 직책인 소위 사무장에 대한 논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그런대로 제가 맡은 일 큰 실수 없이 잘하니 그 자리에 두지 뭐!”

토론의 여지를 묵묵히 이겨 나가 여태껏 그 자리를 지켰다. 하기야 단 한 번도 그는 보수가 적다던지, 일이 힘들다고 불평하지 않았다. 보조 간호사로 일하며 처음부터 가족 부양의 책임을 진 부인역시 남편이 무슨 일을 하든지 돈 더 벌어오라는 잔소리도 하지 않았다.

그가 사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해주는 착한 아내였다

특히 나경목이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싫어하는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둘이 같이 앉아 집안일과 하나 둔 아들 문제로 이야기 할 시간도 없었다. 경목이에게는 어린 날 계모에게 받은 구박과 무관심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으로 가족생활을 조용하고 불편 없기를 바랄 뿐이다.

3

경목이는 학교를 중퇴하고 가출하여 운동화 공장의 노동자가 되었다. 허술하게 지은 판자 집 기숙사에 들어가 사는 동안 한 푼, 한 푼 모아서 저축을 했다. 같은 나이의 동료들은 월급날이면 돈 봉투를 들고 가난한 부모와 형제들의 생활비를 보내기 위해 우체국으로 몰려갔지만, 그는 근처의 중국집에 가서 해물 짬뽕을 한 그릇 먹는 것으로 그동안 고생한 보람을 즐겼다. 담배를 피우는 동료들과는 멀리했고 소주병을 몰래 숨겨 옷 속에 감추고 기숙사로 돌아오는 동료들은 피했다. 한방에 네 명이 같이 생활하며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 일 외에는 즐거움이 없는 삶이었지만 우선 집을 떠나 계모의 구박을 받지 않는 것으로 만족했다. 경목이는 집을 나올 때 룩삭에 넣어온 영어 교과서로 혼자 영어 공부를 했고 스펠 암기로 소일 했다. 부산의 헌 책방에 들려 여러 권의 책을 구입하여 순서 없이 뒤척이며 독학을 했다. 손때 뭍은 헌 영한 동아사전도 샀다.

막연하게 어딘가 멀리 떠나가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 마다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하여 아껴서 모았다 .

경 목이가 저축한 돈을 다 털어서 배낭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한 일은 그를 아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집을 나와 신발공장에 들어가 일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그가 오래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그의 이국여행 소문은 얼마간 헛소문이라고 믿었다.

경 목이는 태어나 자란 곳을 떠나기 전 마음속에 가득 찬 온갖 기억을 되살리며 작별 인사를 다녔다 “어이구 그래도 기특하게 돈 모아서 외국 여행을 다 가고 ,,,” 하는가 하면

“저거 사람 안될 것”이라고 쑥덕거리던 이웃들 까지도 “다른 세상을 보고 오너라 !”라는 말로 꼬지 꼬지 접어두었던 쌈지 돈을 손에 쥐어주었다. 거절하는 경목이에게 “집을 나서면 노잣돈이 필요해 !” 하기도 했다 .

어머니를 대신하여 경목이를 안아 키워준 이모를 찾아갔다. 큰절을 올린 후 유럽 여행을 간다고 알렸다. 돈이든 봉투를 주며 이모가 말했다.

“경목아! 독일에 가면 금자를 찾아보아라. 내 친구가 혼자 어렵게 키운 외동딸인데 간호 보조원으로 독일로 돈벌이를 떠났어 !”

주소가 쓰인 종이쪽지를 주며 친구와는 이야기가 되었고 금자에게는 친구가 미리 연락을 할 것이라고 했다.

경목이는 주소가 쓰인 쪽지를 지갑 속에 소중하게 보관하고 비행기를 탔다.

남독의 대도시에 도착하여 며칠을 지낸 후, 그는 금자에게 전화를 했다. 금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녀는 한국 선원들이 자주 드나드는 북독일 항구 도시에 살고 있었다. 그녀는 병원에서 제공한 기숙사 방 한 칸에 살지만 며칠 간 숙식 제공은 할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신세를 져도 되겠느냐?”고 묻는 경목이의 말에 “우리 배고픔을 아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 언제 우리가 외국 여행 다닐 것이라는 것을 생각이나 했습니까 ?”

4

금자는 노인 병원에서 밤번만 하는 간호 보조사였다. 야간 수당이 높아 월급이 많을 뿐만 아니라 동료들과 실강이 할 일도 없고, 못하는 독일어 때문에 말을 적게 해도 되기에 밤번만 한다고 했다.

경목이 머무는 동안 불편 없이 금자가 밤 근무에서 돌아와 같이 아침을 먹고 시내 구경을 나가면 잘 수가 있어 금자의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었다.

금자의 주소를 준 이모가 한 말을 전했다,

“…. 지 애미가 남편 없이 키웠는데 시집갈 돈 벌인다는 핑계로 그 먼 곳으로 가서 한 번도 오지 않았어. 네가 가서 보고와서 어떻게 살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를 하면 좋아할 거야!”

며칠을 금자의 기숙사 방에서 지내고 경목이 떠날 때는 알 수 없는 가느다란 연정의 끈이 두 사람 사이를 잇고 있었다.

경목은 남독으로 가서 프랑스로 들어갈 계획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는 평생에 처음으로 따뜻한 인정을 느꼈다. 신세를 졌다는 마음을 간직하고 계획대로 여행길에 올랐다. 그가 동경한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하여 혼자 시내를 걸어 면서 내내 금자 생각을 했고 옛 성에 올라가 몰려든 여행자들 속에 끼어 다니면서도 금자 생각을 했다

저녁에 호텔에서 금자가 밤 번을 나갈 시간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며 전화를 했다

그는 생면부지(生面遺址)의 사람에게 해준 침식 제공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하이델베르크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생각지도 않았던 말을 했다.

“…같이 다닐 수 있으면 좋을 텐 데 ,,,”

“10일간 쉬지 않고 밤번을 하고 나면 4일간 휴근이야 !”

“그게 언젠데?”

둘은 뮌헨에서 만나서 같이 다니자는 약속을 했다

뮌헨의 4일이 그들을 한 쌍으로 만들었다

경목은 금자와의 짧은 휴일이 끝나 헤어져 가야 하는 날 불붓기 시작한 강한 남자의 욕구를 느꼈다 .금자와 남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했고, 프랑스 여행을 포기하고 같이 기차를 타고 다시 기숙사 방에 도착 했다.

금자는 노동계약을 연장하고 계속 밤번을 하며 살 수 있기에 경목이와 결혼하면 남편으로 독일에 초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1416호 14면, 2025년 6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