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베를린 모델’로 명명된 바 있는 독일의 일본군 ‘위안부’ 운동은 널리 알려졌다시피 베를린 소녀상 철거 시도에 맞선 시민운동에서 출발했다. 소녀상을 지키기 위한 활동이 운동을 주도한 코리아협의회의 광범위한 네트워크와 결합하면서 여성인권단체는 물론이고 해당지역 구의원들, 지역으로는 아시아를 넘어선 아프리카 및 소수 이주민단체, 미국이나 비유럽권 시민들까지 연대하는 초국가적 운동의 지위를 획득하게 되었다.
운동의 상징이 된 <평화의 소녀상>은 인류 공통의 인권문제라는 보편적 상징이자, 독일이 과거사 청산운동에서 길어 올린 고유의 ‘기억문화‘의 일부로 인식되고 있다. 이제는 독일사회의 사회문화적 중요 아젠다였던 탈식민주의 운동의 일환으로 해석되면서 운동의 외연 또한 폭넓게 확장되었다.
이는 물론 이 운동의 구심점에 있는 <코리아협의회>가 그동안 소녀상을 전시 컨셉으로 한 <일본군 ‘위안부’ 박물관>을 운영하면서, 박물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각계각층을 대상으로 한 평화인권교육에 힘입은 바 크다.
피해생존자 분들의 용기를 기리고 계승하는 활동을 이어가자는 취지로 건립된 박물관은 여성을 도구화하는 전시성범죄와 ‘위안부’ 제도의 역사적 배경을 소개하고, 동시에 <정대협 (오늘날의 정의연>으로 대표되는 국내 일본군 ‘위안부’ 시민운동의 존재와 의미를 알리는데 무게를 두고 있다. 국내에서 시작된 이 운동이 독일사회에서 이렇게까지 큰 의미를 획득하게 된 데에는 30년에 이르는 국내 일본군 ‘위안부’ 운동의 소중한 자산임을 빼놓고는 설명이 어렵기 때문이다.
국내 운동의 가장 큰 특징은 피해 생존자분들과 운동가들의 공동 투쟁이라는 점, 그리고 30년이라는 운동사에서 비롯된 피해자들의 정체성 변화라 요약할 수 있다. 즉 수요시위를 중심으로 지속되고 있는 이 전무후무한 운동의 핵심 주체에 피해생존자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벗이자 동지로서 피해자와 함께한 운동가들은 수요시위와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통해 피해자들을 인권평화운동가로 변모시켜 왔을 뿐 아니라 피해자들의 영향을 받아 운동의 영역을 대폭 확장시켰다는 데 있다.
미국, 호주, 유럽의 활동가들과 함께 유엔, 국제 앰네스티, 미국, 네덜랜드, EU 국회등 국제적 차원에서 결의안 채택을 이끌어 낸 후, <나비기금>을 마련하여 콩고, 루안다, 베트남등 여성들과의 연대와 네크워크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운동은 이 두 운동 주체의 활동을 바탕으로 초국가적 평화인권운동으로 거듭났다.
30년이 넘는 이 지난한 운동사 한가운데 시민운동가, 윤미향이 있었던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일본군 위안부 운동사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후 후원금 횡령, 피해할머니 학대 등 각종 논란에 휩싸이면서 지난 몇 년간 논란의 한 가운데 있었지만 정작 지금 그의 최근 재판 결과에 대해서 알고 있는 이들은 드물다.
지금까지의 재판 결과를 요약하면 이렇다. 경찰 조사와 검찰 기소 단계에서 이미 12개의 혐의가 무혐의와 불기소가 되었다는 것, 1심 재판부는 검찰이 제기한 혐의 8가지 중 7가지를 무죄로 판결했다는 것이다. 유일하게 유죄가 된 ‘횡령’ 혐의에도 재판부는 검찰이 제기한 1억여 원 중에 윤 의원 측이 증빙 자료를 미처 찾아내지 못한 1700여만 원만 유죄로 판단했다. 이 수사중에 오히려 윤 의원은 최소 월급을 받아가며, 1억이 넘는 강연료를 기부한 사실이 밝혀 졌다.
윤 의원은 ‘길거리는 아니지만 또 다른 투쟁’이라는 마음으로 국회에 들어갔다고 언급한 바 있다. 국회를 선택했던 이유 역시, 할머니들의 유지를 받들어 ‘생존자 없는 시간’을 준비하기 위해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최근 몇 년간은 언론과 검찰의 공격과 비방에 시달려 왔지만 운동가로서 살아온 시간 또한 일본 우익과 친일세력 때문에 쉬운 날이 없었다고 한다. 그동안 제대로 알려진 바 없는, 혹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던 그의 30년의 시간이 언뜻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윤 의원이 베를린에서 특별한 시간을 갖는다. 오로지 본인의 신념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확고하게 한 길에 서 있을 수 있었던 이유, 그를 버티게 해준 힘의 원천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했다고 한다. 논란의 한가운데 있었다고 해서 그 논란이 모두 사실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종종 잊는다.
아직 그에 대해 의혹과 의문을 갖고 있는 사람일수록 이 강연회에 꼭 참석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오늘날의 소녀상이, 일본군 위안부 운동이 어떻게 전세계적으로 알려질 수 있었는지 알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리라 확신한다.
글 / 코리아협의회 편집부 사진제공 / 국회의원 윤미향
1354호 21면, 2024년 3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