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연 아동을 소개 합니다

사람이 일생을 살다보면 존경하고 닮고 싶은 사람이 생겨 납니다. 오늘은 한국인로서 제가 마음 속으로 <항상 저 사람을 닮고 싶다,>라고 생각 했었던 한 분을 소개 합니다.

그는 유한양행의 창시자이며 신실한 기독교인 이었던 유일한 박사 입니다. 그의 정직성과 모든 면에서 절제할 줄 알았던 용단은 가히, 대인다운 풍모를 가진자만이 할 수 있는 일들 이었습니다.

1971년 3월 11일 한국 기업사에 모범 답안을 남긴 유일한 박사가 75세로 영면했습니다. 유한양행에 따르면, 유 박사는 일찍부터 기업의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기업경영으로 축적한 부를 사회에 환원한 인물로 사회 고위층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즈(noblesse oblige)를 실천 했습니다.

유박사는 아홉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미국 유학을 떠나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1926년 31세가 되던 해에 고국으로 돌아와 알제 강점기에 <건강한 국민만이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며 제약회사를 설립한 인물입니다.

저는 유일한 박사님의 <건강한 국민만이> 라는 단어에 주목합니다. 건강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 입니다. 육신의 건강도 중요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정신 건강입니다.

유일한 박사는 건강한 정신을 가졌기에, 건강한 생각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의 생각 바탕에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 깔려 있었습니다. 유일한 박사는 9살 때, 미국의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 입양되어 예수 그리스도와 접하게 되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서재필 박사와 같은 독립운동가와 인연을 맺으며, 민족을 사랑했었던 진실한 기독교인 이었습니다.

그가 작고하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CIA 비밀문서가 공개되어 유일한 박사의 해외에서 지속적인 독립운동 행적이 알려져 다시 한 번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된 애국자였습니다. 아버지의 숭고한 뜻을 가슴깊이 새기며 살아왔던 그의 딸 유재라씨도 지난 1991년 세상을 떠나며, 힘들게 모아 두었던 200억 원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였습니다. 그 아버지에 그 딸이었습니다.

유일한 박사의 유언은 편지지 한 장에 또박 또박 큰 글씨로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습니다.

<손녀에게는 대학 졸업까지 학자금 일 만 달러를 준다. 딸에게는 유한중 공업고등학교 안에 있는 묘소와 주변 땅 오천평을 물려준다. 그 땅을 동산으로 꾸미고, 결코 울타리를 치지 말고, 중 고교 학생들이 마음대로 드나들게 하여, 그 어린 학생들의 티 없이 맑은 정신에 깃든 젊은 의지를 지하에서나마 더불어 느끼게 해 달라.

내 소유 주식은 전부 사회에 기증한다. 아내는 딸이 그 노후를 잘 돌보아 주기 바란다. 아들은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앞으로는 자립해서 살아 가거라>

유언장은 모두를 놀라게 했지만, 그의 삶을 돌아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유 일한 박사는 <기업은 사회의 것>이라는 일념으로 1936년 유한양행을 주식회사체제로 전환했고, 1939년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종업원지주제를 채택했습니다. 국내에서는 두 번째로 1962년에 주식 공개를 단행 했고, 1969년에 이미 경영권 상속을 포기하고, 전문 경영인에게 사장직을 물려주었습니다.

유한양행은 그로부터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평사원 출신의 전문 경영인을 선출하고 있습니다. 현재 약 1,900 여명의 유한양행 임직원 들 중, 유일한 박사의 친인척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 우리는 머리가 아파도, 배가 아퍼도 <안티푸라민>을 그 자리에 발랐습니다. 소염진통제인 그 약은 모든 국민의 사랑을 받았고, 어느 집에 가도 안티푸라민 한통 없는 집이 없을 정도로 전 국민이 애용하는 약이었는데, 그 안티푸라민이 바로 유한양행 제품으로 유한양행의 상징 이었습니다.

이번 이태원 참사의 비통한 소식을 들으면서, 진심으로, 절실하게, 나라와 국민을 사랑했었던 고 유일한 박사님이 생각이 나서, 그분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은 지도자들이 많이 배출 되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이글을 썼습니다.

오늘 소개드리는 이시연 아동은 서울시에 위치한 아동 양육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시연 아동의 부모는 부부싸움을 너무 자주해서, 엄마가 가출하면서 아빠를 아동학대로 신고하였고, 시연이는 지금의 시설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시연 아동은 2022년 현재 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고민이 많지만, 학구열은 저조한 편입니다. 그래서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자신의 진로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성이 좋아서 배려심이 많고 함께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동생들에게도 다정하게 대합니다.

말수는 적지만 외향적인 성격으로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건강하고 바른 생각을 가진 성실한 아동입니다. 작은 체격으로 한약방에서 정기적으로 한약을 복용하고 있으며, 스스로 건강한 신체를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교민 여러분의 따뜻한 격려와 사랑은 시연 아동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박 해 철 선교사 드림

1289호 34면, 2022년 11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