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복흠 Interkulturelle Woche 개막식, 풍물과 한글로 만난 ‘도시의 소리’
9월 27일 저녁, 복흠 Anneliese Brost Musikforum에는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삶의 배경을 가진 시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2026년 복흠 Interkulturelle Woche 개막행사는 ‘Klang der Stadt’, 즉 ‘도시의 소리’를 주제로 진행됐다. 복흠이라는 도시를 이루는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와 음악, 문화적 경험을 한자리에서 만나고 나누는 자리였다.
복흠한인회도 이날 두 개의 프로그램으로 함께했다. 하나는 복흠 두레풍물단의 사물놀이 공연, 다른 하나는 서예가 오수혁 선생의 참여형 한글서예 퍼포먼스였다.
두 프로그램은 겉으로는 매우 다르다. 하나는 북과 장구, 징과 꽹과리가 만들어내는 강렬한 소리의 공연이고, 다른 하나는 붓과 먹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조용히 써 내려가는 작업이다. 그러나 이날 두 퍼포먼스가 보여준 의미는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만났다.

아리랑의 여운 뒤에 쏟아진 사물놀이 장단
사물놀이 공연에는 이날 현장에서 더욱 특별한 장면이 더해졌다.
풍물단이 무대에 자리를 잡고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연주를 준비하는 사이, 백지영 씨와 현지 어린이 카타리나가 아리랑을 선창했다.
약 1분 남짓한 짧은 노래였다. 화려한 반주도 없었지만, 익숙하면서도 애잔한 아리랑의 선율이 공연장을 채우기 시작하자 객석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무대로 모였다. 조금 전까지 이어지던 움직임도 잦아들었다.
그리고 아리랑의 마지막 여운이 남아 있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사물놀이의 장단이 터져 나왔다. 조용한 노래에서 힘찬 타악으로 이어지는 전환은 절묘했다. 아리랑이 한 사람의 목소리로 관객을 무대 앞으로 불러 모았다면, 이어진 사물놀이는 그 집중된 에너지를 한꺼번에 풀어내는 듯했다.
약 10분간 이어진 복흠 풍물단의 연주는 시간이 흐를수록 힘을 더했다. 북과 장구가 중심을 잡고, 징과 꽹과리가 그 위를 넘나들며 공연장을 채웠다.
연주가 끝나자 객석에서는 큰 박수가 터져 나왔고, 많은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언어를 알지 못해도 장단은 전달됐다. 그 순간 한국의 전통 타악은 더 이상 낯선 문화의 전시물이 아니라 공연장 안의 사람들이 함께 경험하는 하나의 에너지가 되었다.

서로 다른 소리가 하나의 장단을 만든다
사물놀이에서는 꽹과리, 징, 장구, 북이 모두 다른 소리를 낸다. 어느 악기도 다른 악기와 똑같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오히려 각자의 소리가 분명할수록 전체 장단은 풍성해진다. 그러나 자기 소리만 내서는 음악이 되지 않는다. 서로의 소리를 듣고, 기다리고, 응답해야 한다.

그 모습은 다양성을 설명하는 하나의 좋은 이미지이기도 하다. 다양성이란 모두가 같은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소리가 자기 모습을 잃지 않으면서 함께 하나의 장단을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복흠 풍물단 자체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풍물단에는 파독 광부와 간호사 출신 세대를 비롯해 NRW 지역의 한국인 가족, 한•독 가정 등 서로 다른 삶의 궤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다. 한국 출신 여부와 관계없이 풍물과 한국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도 열려 있다.
복흠에서 풍물놀이는 오래전부터 단순한 전통예술 보존에만 머물지 않았다. 광부와 간호사 출신 한인들뿐 아니라 유학생들도 함께 모여 사회와 시대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풍물을 연주했다. 풍물놀이는 고향을 추억하는 음악인 동시에,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고 함께 표현하는 공동체 문화이기도 했다.
문화의 힘은 소유보다 나눔에 있다. 풍물놀이가 오늘까지 살아 움직일 수 있었던 힘도 사람들이 배우고, 두드리고, 몸을 움직이고, 다시 다른 사람과 나누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름을 한글로 써준다는 것
한편 공연장 로비에서는 또 하나의 한국문화가 조용하지만 끊임없이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한국 서예대전 입상 경력이 있는 서예가 오수혁 선생은 행사장을 찾은 현지인들에게 이름을 물은 뒤, 붓과 먹으로 그 이름을 한글로 직접 써주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이 낯선 한글 글자로 하나씩 완성되는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봤다.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붓끝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이들도 있었고, 완성된 글씨를 받아 들고 환하게 웃거나 서예가와 함께 기념사진을 남기는 모습도 이어졌다.

이 한글서예 퍼포먼스에는 단순히 외국인의 이름을 한국 문자로 바꾸어 적는 것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한국의 시인 김춘수의 「꽃」은 이름을 불러주는 행위를 통해 낯선 존재가 나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관계를 노래한다.
이름을 묻는다는 것은 막연한 ‘그들’로 보이던 상대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는 일이다. 당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묻고, 그 이름을 기억하고, 다른 문화의 문자로 정성스럽게 써주는 순간 낯선 사람은 더 이상 익명의 타인이 아니다.
이번 한글서예 퍼포먼스도 그런 작은 만남이었다. 한글이라는 낯선 문자를 통해 다양한 ‘그들’이 이름을 가진 한 사람으로 다가오고, 김춘수의 시가 그려낸 이미지에 기대어 말한다면 서로에게 작은 ‘꽃’으로 발견되는 순간이었다.

한글과 풍물이 만나는 곳, ‘표현의 민주화’
한글과 풍물놀이는 서로 다른 역사를 가진 문화다.
한글은 15세기 세종대왕이 백성들이 보다 쉽게 배우고 자신의 뜻을 글로 표현할 수 있도록 만든 문자이고, 풍물놀이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장단을 만들고 춤추며 흥과 감정을 나누었던 생활문화에서 성장했다.
하나는 말과 글의 표현을 더 많은 사람에게 열어주었고, 다른 하나는 음악과 몸의 표현을 더 많은 사람에게 열어주었다.
이 두 문화가 공유하는 힘을 굳이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표현의 민주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거창한 정치적 개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문화를 소수의 전문가만 만들고 다수는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직접 말하고 쓰고, 연주하고 움직이며 문화의 주체가 되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표현할 수 있게 될수록 표현의 다양성 또한 커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날 사물놀이 공연과 한글서예는 서로를 절묘하게 보완했다. 사물놀이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하나의 장단을 만들어 가는 집단적인 만남이었다면, 한글서예는 그 공동체 안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과 고유함을 발견하는 개인적인 만남이었다.
하나는 함께하는 힘을 보여주었고, 다른 하나는 그 ‘함께’ 속에서 개인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Woher(온 곳)는 달라도, Wohin(갈 곳)은 함께
복흠 중앙역 인근 철도 다리에는 여러 언어로 ‘Woher’와 ‘Wohin’, 즉 ‘어디서 왔는가’와 ‘어디로 가는가’를 비추는 빛 예술작품이 있다.
복흠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Woher는 서로 다르다. 한국에서 온 사람도 있고, 독일에서 태어난 사람도 있으며, 세계 여러 나라와 문화적 배경에서 이 도시로 온 사람들이 함께 살아간다.
그러나 다양성이 실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질문이 필요하다.

“Wohin wollen wir gemeinsam gehen?” — 우리는 어디로 함께 갈 것인가.
이번 Interkulturelle Woche에서 한국의 풍물놀이와 한글 역시 복흠이라는 도시를 이루는 여러 문화적 목소리 가운데 하나로 울렸다. 아리랑의 조용한 선율이 객석을 한곳으로 모았고, 그 뒤를 이어 사물놀이의 힘찬 장단이 공연장을 채웠다. 로비에서는 처음 만난 사람들의 이름이 한글이라는 또 다른 모습으로 태어났다.
그날 사물놀이가 보여준 것은 서로 다른 소리가 하나의 똑같은 소리로 합쳐지는 것이 아니었다. 각자의 소리로 남아 있으면서도 함께 하나의 장단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글서예가 보여준 것은 그 장단 속에서도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고유한 이름과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다양성과 공동체를 이야기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가장 단순한 모습인지 모른다.
서로의 소리를 듣고,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며, 함께 하나의 장단을 만들어 가는 것.
우리의 Woher는 서로 달라도, 우리의 Wohin은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다.
기사제공: 복흠 한인회
1477호 20면, 2026년 10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