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0일, 한국교회 예배, 경복궁과 국립민속박물관 탐방
주일이니까 한국전통교회에서 먼저 예배를 드리기로 하였다. 그 교회는 초동교회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중의 하나인 기독교장로회교단교회다.
예배를 마친 후에 경복궁으로 갔다. 경복궁 홍례문 앞 광장에서 2시 정각이 되니까 큰 북이 둥둥 울리며 수문장 들이 악장들의 연주를 앞세우며 등장했다. 대원들은 한 백 여명은 되는 것 같았으며, 붉은 제복으로 차려 입은 수문장들이 방패와 쇠 창, 삼지창 등을 들고 엄숙한 표정들을 짓고 있어서 든든하게 보였다.
수문장교대식을 보고 난 후에 우리는 경복궁탐방을 시작했었다. 경복궁(景福宮)은 1395년 태조 이성계가 조선왕조의 법궁(法宮)으로 창건하였다.
1910년에 일제가 국권을 침탈한 이 후 궁궐을 조직적으로 훼손하며 근정전 앞을 전부 허물고 조선총독부 건물을 세우는 등으로 궁궐의 면모가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었다. 이 것을 1989년에 약 40%정도를 복원하였다.
경복궁은 창덕궁과 달리 국체(國體)의 구심점인 근정전을 중심으로 하여 앞뒤로 일직선을 이루며 핵심공간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어서 권위적임을 알 수 있었다.
정문인 광화문으로 들어가서 홍례문, 영제교를 지나 근엄하고 우아한 근정전을 비롯하여 사정전, 강녕전, 교태전 까지 일직선으로 만나게 되며, 사정전 왼쪽으로 돌아가면 경회루를 만나게 된다. 경복궁을 모두 둘러보고 경복궁 북동 편에 자리잡은 국립민속박물관을 방문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한민족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문화전반에 대한 전시를 통하여 자기문화의 자각과 재인식을 구현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한민족생활상, 사계절변화에 따른 조선시대 사람들 생활상, 한국인의 일상을 주제로 한 전시 등, 한국인의 정체성을 잘 나타내고 있어서 외국인들에게 한국인을 이해하는 좋은 자료가 되었다.
광화문광장은 세종대로의 한 가운데 있는 광장으로 조선시대의 상징적인 장소에 세워 지며 2009년 8월에 시민들에게 개방되며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 광화문광장은 서울의 대표적인 광장으로, 문화강국을 이루자는 뜻으로 세종대왕과 이순신장군 동상을 세웠다. 현재는 북악산, 청와대, 경복궁이 한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사진촬영의 명소가 되었다.
우리가 광화문광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이에 저녁식사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좀 늦더라도 호텔근방에 가서 식사를 하자고 의견을 내는 바람에 전철을 타고 압구정동 호텔로 갔다.
호텔 앞에 도착한 우리는 호텔 바로 길 건너편에 있는 대중식당으로 들어갔다.
전형적인 한국 대중식당으로 된장찌개백반, 김치찌개백반, 순두부찌개 등 각종 찌개종류와 삼겹살구이 등 한국인 전통음식이 즐비하게 메뉴 표에 들어 있었다. 독일인들도 우리와 같이 망설임 없이 다양한 메뉴들을 선택하며 스스럼없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며 나는, 그 동안 한국음식을 고루고루 소개한 것에 대한 보람을 느끼게 되었다.
10월 21일, City Tour-Bus를 타고 시내를 일주하다
City Tour-Bus는 각 관광대상을 기준으로 하여 구간을 A, B, C, D로 구분했다. 우리는 서울도심, 국립중앙박물관, 이태원, 고궁, 명동, 남산, 남대문시장 등을 포함한 A코스(18,000원)를 선택했다.
A코스를 선택한 우리는 남대문시장, 국립중앙박물관, 명동, 남산타워 등을 돌아보았다. 버스 안에는 한국어와 그 밖에 독일어 등 5개국어로 통역하는 이어폰이 설치되어 있어서 버스가 순회하는 동안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City Tourbus를 이용한 첫 방문지는 국립중앙박물관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규모는 4만 1,000평에 이르며 6개 전시관과 50개의 전시실로 되어 있다. 총 23만 점의 국보급 유물을 소장하고 있어서 세계에서 큰 박물관 중의 하나가 되었다. 상설전시장에서는 1만 2,000점의 유물을 주기적으로 교체하며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 입장은 무료였다.
서울 남산타워는 YTN 방송국이 전망대를 건축하여 1980년에 개장하면서 N서울타워로 불리게 되었다. 자체 높이는 236.7m이고 해발고도까지 합하면 479.7m이다.
저 멀리 보이는 북악산과 인왕산 봉우리 자락에 들어앉은 경복궁과 창덕궁, 창경궁 그리고 바로 뒤편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는 청기와 집 청와대가 훤칠하게 보이며 카메라 조리개를 잡아 댕기게 하고 있었다.
남산도성에 설치되어 있는 봉수대는 약 120년 전까지도 사용했던 과학적으로 잘 갖추어진 연락통신방법이었다. 봉수대에서는 낮에는 연기를 이용하고 밤에는 불빛을 이용해 정보를 먼 곳까지 알렸다. 연기나 불꽃으로 보내는 신호는 전국에서 인근의 봉수대에 차례로 전달되며 한양의 남산까지 전달되었다. 이렇게 해서 왕궁으로 전달된 것이었다. 다음은 남대문시장으로 방향을 잡았다.
남대문시장은 원래 ‘남문안장’이라고 했으며, 그 기원은 조선 태종 14년(1414년)에 새 도읍지인 한양의 남대문 근처에 가게를 지어 상인들에게 빌려준 것이 시초였다. 6.25전쟁 이후에는 전쟁으로 파괴된 상태에 있었는데, 월남한 피난민들이 천막을 치며 억척같이 부활 시켰다.
이와 함께 노점상과 현대식백화점에 이르기 까지, 건축자재와 가구제품을 제외하고는 없는 것이 없는 소, 도매 시장으로 형성되며 한국 최대시장으로 발전하였다. 대부분의 상품은 직접 생산한다. 우리는 남대문시장에서 쇼핑관광을 마치고 전철을 타며 호텔에 도착하니 8시가 다 되었었다.
쇼핑물건들을 빨리빨리 방에 들여놓고 로비에 모였다. 내일은 독일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니까 종(終)파티를 하겠다고 하였더니 “Okay” 하며 얼굴들에는 금새 화색이 돌았다.
어제 저녁식사를 했던 호텔 건너편 식당으로 건너갔다. 어제는 인사도 없던 주인장 아저씨가 오늘은 유난히도 반겼다. 우리 독일 친구들에게 영어로 말도 걸고 하며 친절을 베풀었다. 아무튼 주인장의 반기는 얼굴을 대하며 기분 좋은 파티가 시작되었다. 돼지삼겹살 파티였다. 신이 나게 먹고 마시며, 이번 여행에서 인상 깊었던 이야기들을 다음과 같이 털어 놓았다.
인상 깊었던 이야기들:
은퇴 선생님 Frau D.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나는 중국, 태국 등 여행에서 불교사원들을 돌아보았지만, 불국사의 사찰분위기를 보며 한국불교문화의 다른 점을 발견했다. 한국 사찰건물들은 건축과 조각 등에서 무엇인가, 의미를 부여하였을 텐데도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정교하였다.
또한 건물구조를 받혀주는 다섯 가지 색상의 단청은 퇴색되어 있었지만 은은하게 화려하면서도 깊이를 엿볼 수 있었다. 특히 궁전건물들은 지붕처마 끝을 들어올리고 있는 유연한 곡선미는 우아할 정도였다. 그리고 궁전으로서 권위보다는 오히려 친근감을 주는 절제 된 분위기를 엿볼 수 있었다.
이와 같은 한국의 궁궐건축은 크지도 않고 단순하지만 그 내면의 아름다움이 보였다.” 라고 감회를 말했을 때, 이 정도로 깊이 관찰하고 있다고 하는 사실에 대하여 놀라움과 함께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곧 이어서, 역시 은퇴 선생님인 Herr S. 는, “모든 지하철분위기가 깨끗하고 상쾌함에 놀랐다. 그리고 전철 앞의 안전유리창설치는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안전장치였다. 그리고 승객 칸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 있으면서도 비어있는 경로석에 앉으려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또 놀라운 것은, 종로의 큰 차도로의 건널 목 신호등 앞에 파라솔을 세워놓고 그 밑에 의자를 놓아 둔 것을 보았다. 노약자를 위한 배려가 아닌가 생각하며 놀랐었다. 한국인의 경로사상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것들은 진안 용담향교에서 우리가 체험했던 유교사상의 영향이 아니겠는가!” 하고 그는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Herr G. 는, “홍천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발견했던, 여행객을 위한 무료서비스를 보며, 정부가 국민들에게 이렇게 세심하게 배려하는 것에 감탄했다”고 했다. 역시 백문이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고 하는 의미를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다.
이와 같은 한국문화탐방 후담이 진행되며, 이 글 시작점에서 밝혔던 것과 같이 Frau D.가 우리 부부를 앞으로 불러내며 사랑의 편지를 전한 감격스런 시간을 가졌었다.
10월 22일은 독일로 돌아가는 날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9시 30분에 호텔 앞에 대기하고 있는 리무진 버스에 올랐다.
프랑크푸르트로 날아가는 대한항공 KE905편은 13시 20분 출발이었다. 버스에 자리 잡으며 나는, 여행기간 동안 나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이해하여 주고 잘 따라주어서 고마웠다고 인사했다.
나의 인사말을 들은 이들은, 자기네들이 여행을 많이 했었지만 이 번 한국여행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하며 우리 부부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지금 독일로 돌아가지만 한 발은 여전히 한국에 들여놓고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Frau K.가 매우 아쉬워하는 마음을 전했었다. 감격스런 이별의 순간이었다.
‘한국문화탐방후기’ 를 읽어 주신 여러분,
필력도 부족한데다가 지면의 한계도 있어서 문화탐방과정에서 체험한 것들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게 되었음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저희 ‘21세기한민족문화포럼’은 미력하나마 우리 차세대에게 자신들의 정체성발견에 도움이 될수 있는 일을 찾아가며 열심히 마음을 모아가고 있습니다. 여러 사업 중에서도 모국의 역사를 알고 문화를 체험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책자를 발간했으며 또한 이어서 한국문화탐방을 주선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후손은 조국의 자산입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 어른세대가 힘을 모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들이 있음으로 이 들이 있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함께 세계가 꿈꾸는 “Korean Dream”을 만들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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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호 14면, 2021년 5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