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緣), 춤으로 잇는 길, 고향으로 닿은 파독 간호사 무용단의 여정

김현지(베를린 MuAk)

이번 파독 간호사 무용단의 한국 방문은 단순한 공연 일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삶의 뿌리를 찾아가는 순례였고, 세대를 잇는 귀향의 여정이었다.

공연 제목인 ‘연(緣), 고향으로 닿는 길, 춤으로 잇는 길’처럼, 독일이라는 낯선 땅에서 춤으로 삶을 지켜온 1세대 간호사들이 마침내 딸과 손녀의 손을 잡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타국에서 지켜온 삶과 문화를 무대 위에서 당당히 되새긴 뜻 깊은 시간이었다.

독일이라는 타국에서 고단한 삶을 개척해야 했던 1세대 간호사들에게 춤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었다. 타국에서의 고단한 삶 속에서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게 해준 방패였고, 서로를 위로하는 온기였으며, 공동체를 이어주는 끈이었다. 고국의 숨결을 놓지 않으려는 그들의 헌신은 오늘의 무용단을 일궈냈고, 이제 그 정신은 다음 세대의 몸짓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춤은 세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서사가 되었다. 이러한 우리의 역사는 최윤희 선생과의 만남을 통해 그 깊이와 의미를 더할 수 있었다. 흩어져 있던 각자의 춤은 하나의 조화로운 움직임으로 모였고, 함께 호흡을 맞추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이어간다’는 말의 의미를 몸으로 배웠다.

주독한국문화원(원장:양상근)의 지원 속에서, 지난해 12월부터 한겨울의 칼바람을 뚫고 흘린 땀방울은 우리를 하나로 묶어준 소중한 자양분이었다.

공연을 4개월 앞둔 시점부터 최윤희 선생은 매주 세 차례 이상 연습을 이끌며 동작 하나하나를 다듬어 나갔다. 1세대 단원들은 신체적 한계를 넘어 빠짐없이 연습실을 지켰고, 2세대 단원들도 일상과 연습을 오가는 고단함속에서 묵묵히 자리를 채웠다. 함께 ‘춤’에만 몰두했던 이 시간 동안 우리는 세대를 넘어선 단단한 공동체로 영글어갔다.

지난 4월 1일, 1,2,3세대 파독 간호사 무용단 단원 25명이 인천공항에 모였다. 며칠의 차이를 두고 각자의 스케줄대로 공항에 도착해 집결했을 때 함께 느꼈던 벅찬 설렘, 그리고 다함께 부산으로 향하며 느꼈던 기대와 긴장감은 지금도 생생하다.

부산 도착 후에는 공연의 기획부터 실행까지 모든 과정을 세심하게 조율하며 이번 여정을 가능하게 한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국립부산국악원(원장:이정엽)의 예술감독 복미경과 인상적인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가 따뜻한 식사 대접과 함께 건넨 “춤의 기교보다 귀한 것은 우리의 춤에 대한 열정과 그 동안 이어 온 시간의 의미”라는 말은 단순한 격려를 넘어 우리 삶 전체를 어루만지는 깊은 위로였다. 그 진심어린 환대 덕분에 우리는 무대에 대한 용기를 얻고 우리 공연의 방향을 비로소 다잡을 수 있었다.

4월 2일에는 전일 리허설을 통해 무대의 완성도를 점검했다. 처음 서보는 넓은 무대 위에서 단원들은 동선을 익히며 독일에서 쌓아온 시간을 무대 위에 온전히 펼쳐내기 위해 집중했다. 그리고 4월 3일. 드디어 우리는 본공연을 위해 무대에 올랐다.

공연은 춤과 함께 단원들의 인터뷰와 사진으로 구성된 영상이 더해져, 우리의 몸짓과 더불어 우리가 걸어 온 시간과 삶의 이야기를 풀어냈고 이는 관객들의 마음에도 전달이 되었는지 각 순서가 끝날때 마다 객석 곳곳에서 깊은 감동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 뭉클한 순간이다. 이후 공연의 여운을 가족, 지인들과 만나 나눌 수 있었던 것도 우리에겐 또 하나의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았다.

공연 다음 날인 4월 4일에는 동래학춤 워크숍이 진행되었다. 국립부산국악원 단원들이자 동래학춤 보존회 소속 예술가들의 지도 아래, 우리는 동작의 형식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전통의 미학을 직접 체험하며, 한국과 독일을 잇는 문화적 연속성을 다시금 확인하는 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

다음 날인 4월 5일에 방문한 남해 독일마을에서는 1세대의 역사가 담긴 전시관을 함께 둘러보며 세대를 넘어선 공감의 시간을 가졌고, 봄기운 가득한 남해독일마을의 푸르른 야외광장에서 전세대가 어우러져 춤과 북공연을 펼치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뜻깊은 시간을 만들었다.

같은 날 우리는 고성오광대 전수관으로 이동해 전통예술가들과의 교류와 워크숍, 토크 콘서트를 이어갔다. 2025년 베를린 Ufa Fabrik 공연으로 인연을 맺은 예술가들과 함께 또 한 번 전통예술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교감할 수 있었던 반갑고 귀중한 시간이었다.

이틀간의 고성 일정을 마친 뒤, 마지막 공연을 위해 긴 이동 끝에 서울에 도착했다. 공연 장소인 남산국악당에서 기다리고 있던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회장:이종호)의 강정환 팀장과 남산국악당 관계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그들의 배려로 공연의상과 소품을 분장실에 미리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일주일 간 쉼 없이 이어진 일정으로 모두 지쳐 있었지만, 마지막 무대를 향한 설렘과 후회 없이 춤추고 내려오겠다는 마음으로 우리는 서로를 다독였다.

4월 8일 서울 공연 당일, 아름다운 남산국악당 무대에서 이번 여정의 마지막 공연일정을 앞두고 아침부터 분장과 리허설로 분주한 가운데, 공연에 필요한 여러 가지 준비와 음료, 간식, 점심, 저녁 식사까지 직접 챙겨주시고, 분장실로 찾아와 단원들의 긴장감을 풀어주며 아낌없는 격려를 건네 준 무용계의 여러 선생님들의 지원과 응원은 우리에게 더할 나위없는 커다란 힘이 되었다.

공연 시작을 앞두고 무대 뒤에서는 마지막까지 동선과 호흡을 맞추는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막이 오르자 그동안 쌓아 온 시간들이 자연스럽게 몸의 움직임으로 흘러나왔다. 다양한 세대의 관객과 예술 관계자들이 함께한 가운데, 무대 위에서는 각 세대가 이어온 시간과 이야기가 하나의 흐름으로 펼쳐졌다.

전문 무용수는 아니지만, 춤을 향한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깊고 간절했기에 그 순간은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우리는 단순히 작품을 선보이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에게 삶의 일부로 자리해 온 춤의 의미를 온몸으로 쏟아내며 마지막 공연을 마무리했다.

공연이 끝난 뒤 쏟아지던 기립박수는 우리가 지나온 세월과 세대를 잇기 위해 기울인 노력에 대한 가장 따뜻한 찬사였다. 마지막 프로그램이 끝나는 순간, 지난 4개월의 준비 과정과 그보다 더 긴 시간의 축적이 한꺼번에 떠오르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벅찬 감정이 가슴 깊이 밀려왔다.

이번 한국에서의 시간은 단순한 고국방문이 아니었다. 타국에서 지켜온 우리의 춤이 고국의 뿌리와 맞닿아 하나로 어우러지는 과정이었으며,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모든 기적같은 여정이 가능하도록 아낌없는 지원과 따뜻한 성원을 보내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깊은 감사의 마음을 올린다. 춤은 기록으로만 남는 예술이 아니다, 몸을 통해 전해지고 마음을 통해 이어진다. 이번 여정의 기억이 또 다음 세대에게 흘러가 우리 문화의 뿌리가 더 멀리, 더 깊게 뻗어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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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의 파독간호사무용단 연대기

파독간호사무용단의 시초는 1984년 창단된 가야무용단이다. 파독 간호사 1세대인 김금선 단장이 첫 신호탄을 쌓아올렸다. 이후 파독 간호사 1세대 조송자가 이끄는 연화무용단, 김연순이 주도한 우리무용단, 그리고 김도미니카 간호사에 의해 소나무용단이 연이어 발족됐다. 그밖에 아리랑무용단 등 베를린을 중심으로 4~5개의 무용단이 창단되면서 독일 주류 사회에서도 파독간호사무용단에 차츰 관심을 갖게 되었다.

후속세대로 이어지고 있음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2014년 파독 간호사 1세대 출신 후손들과 재독 한국인 자녀 초등학생들로 구성된 화동무용단이 생겨났다. 초기 파독 간호사 1세대에서 이제는 2·3세대의 참여로 외연 확장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2023년 세대별로 분절되어 존재하던 파독간호사무용단은 세대 통합을 이뤄낸다. ‘베를린 MuAk(舞樂)’ 창립이 바로 그것이다.

독일에 처음 한국 전통음악의 가락과 선율을 전파한 이는 사물놀이의 명인 김덕수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다. 1980년대 중반 베를린에서 개최된 김덕수 사물놀이 워크숍에 참여한 김보성은 우리 고유의 장단과 가락에 매료되어 한국 유학을 결심한다. 한예종 전통예술원에서 수학하며 한국 전통음악의 가락과 선율을 체계적으로 배웠다. 학업을 마치고 독일로 돌아간 김보성은 남편 박명현과 더불어 파독 간호사 3세대를 비롯 재독 한국인 후손들에게 한국의 전통가무악을 전수하고 있다.

독일에서 한국 전통가무악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는 또 한명의 중요한 인물이 있으니 바로 재독 한국무용가 최윤희이다. 국립국악고에서 전통춤의 탄탄한 기본기를 익힌 최윤희는 한명옥·김영숙·임학선을 사사하면서 무용계 보기 드문 재원으로 통했다.

궁중무용과 민속무용 그리고 한국창작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춤을 섭렵한 그는 파독간호사무용단의 정신적 지주로 모두에게 존경받고 있다. 이번 간호사 파독 60주년 고국 방문공연은 최윤희 무용가의 노고와 헌신에 힘입은 바 크다.

‘베를린 MuAk’은 독일에 거주하는 파독 간호사 1세대를 비롯 2·3세대 예술가들이 함께 모여 한국문화를 원형으로 그 뿌리를 탐구하고 실천하는 예술 플랫폼이다. 무용·음악·퍼포먼스를 통해 전통과 현대가 살아 숨쉬는 연계성 교류를 표방하는 한편, 새로운 미래를 설계한다는 포부가 담겨 있다.

–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파독 간호사 60년 디아스포라 무용, 恨과 神明의 연대기]에서 발췌

1458호 20면, 2026년 5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