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민금 아동을 소개 합니다.

저는 2019년 여름, 강원도 고성에서 출발하여 바다를 헤엄쳐서 북한으로 들어간 사람 입니다. 차가운 동해 바다를 4시간 동안 헤엄처서 그 지옥 같은 북한 땅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왜냐구요? 그곳에 나의 하나 밖에 없는 어머니가 계셨기 때문 입니다.

저는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2012년 겨을, 저는 열 일곱 살이었습니다. 내가 사는 회령은 두만강이 가까워서 맑은 날이면 중국쪽 불빛이 보였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열 두 살 때 남조선 라디오 주파수를 돌렸다고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 가셨는데 3년 뒤에서야 영양실조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장마당에서 두부를 팔았고, 저는 학교가 끝나면 나무를 하려 산에 갔습니다.

함경북도의 겨울은 영하 30도까지 내려가요. 나무가 없으면 얼어 죽어요. 그래서 북한에서는 곡식과 나무는 생명을 지키는 목숨 줄이랍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두부를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려고 머리에 이고 가시다가 심하게 무릎을 다쳤습니다. 어머니의 두부 판매 수입이 끊기자 우리는 3일 동안 강냉이 죽 한 그릇으로 버티어야만 했습니다.

그 무렵부터 우리 동네에서는 탈북을 하는 사람들의 소식이 간간이 들리기 시작 했어요, 두만강은 폭이 넓지 않아요. 여름이면 헤엄처서, 겨을이면 꽁꽁 얼어붙은 얼음 위로 강을 건널 수 있어요. 강만 건너면 바로 중국이거든요.

저는 어느 날 어머니에게 남조선으로 가고 싶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깜짝 놀라신 어머님은, <사실, 나도 그 생각 해 보았다.> 라는 의외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내 다리 때문에….라고 말씀을 흐렸습니다. <민철아, 네가 먼저 남조선에가서 돈 벌어서 나를 데리러 오거라.>

저는 도저히 어머니를 두고 혼자 갈 수는 없었지만, 두만강을 건너기로 했습니다. <금방, 데리러 올께요, 꼭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어머니는 대답대신 제 등을 톡톡 두드리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쩌억, 쩌억, 깨질 것처럼 소리가 나는 두만강을 건넜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남한 땅에 도착하여 7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단 한 순간도 어머니 생각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브로커를 통해서 얘기를 들으니, 어머니는 탈북자의 가족으로 낙인 찍혀서 수용소로 끌려 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탈북자 가족은 돈을 주어도 빼 내올 수 없을 만큼, 엄격한 감시를 받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모셔올 방법을 다각도로 연구 했습니다. 아무래도 중국, 라오스, 태국 루트는 다리가 불편한 어머니에게는 무리였습니다. 우선 “내가 어머니를 모시려 그 지옥같은 북한으로 어떻게 잠입할까?”가 문제였습니다.

그때 누구인가 동해를 헤엄처서 북한을 탈북했다는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나는 바로 이거다!>라고 생각하고 그날부터 체력단련 훈련을 시작 했습니다. 동해 지도를 펴놓고 수영을 해서 북한 땅으로 들어갈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은 강원도 고성에서 북한 고성까지였습니다. 그날부터 인터넷을 통해 가능한 방법을 찾기 시작 했습니다. 저는 내년 여름 실행하기로 작정하고, 수영 배우기, 체력 키우기, 장비 준비하기 등, 계획을 세웠습니다.

저는 수영학원에 등록하고 제 평생 처음으로 수영에 도전했습니다. 석달만에 100m를 쉬지 않고 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강원도 동해안으로 주말마다 내려가서 직접 바다에서 파도와 싸우며 수영하는 실습을 시작 했습니다. 4월의 바닷물은 차가웠어요. 수영장과는 천지 차이였어요. 방향을 구별하기도 힘들었고, 때때로 밀려오는 파도에 짠물을 들이키기 일쑤 였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500m, 700m 1,000m 까지도 쉬지 않고 수영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점점 적응이 되어 갔습니다.

저는 2019년 더운 여름 어느날로 실행하기를 정하고 미친듯이 바다와 훈련을 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루에 팔 굽혀 펴기 100개 씩을 쉬지 않고 했습니다. 몸에 근육이 붙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 사진을 보며 북한 동해안 지형을 연구 했습니다. 북한 쪽, 해안선과 북한 군 경비초소의 위치를 파악 했습니다. 그리고 함경남도 해안을 상륙할 지점으로 정했습니다. 어머니가 계시는 회령 수용소까지 가려면 그곳에 상륙하여 육로를 이용해야 했거든요.

드디어 저는 2019년 7월28일로 출발 날짜를 확정 했습니다. 그리고 방수팩을 사고, 브로커를 통해서 북한 돈을 50만원어치 샀습니다. 북한 가짜 주민증도 브로커를 통해 구입했고, 제 이름도 김철수라고 바꾸었습니다. 진통제, 소화제, 파스, 붕대 등도 준비 했습니다. 그리고 작은 고무 보트 하나를 준비 했습니다. 어머니를 태우고 와야 하니까요! 북한 해안 어딘 가에 숨겨두고 돌아올 때 다시 찾아 타고 와야 하니까요.

그래서 10월 달에 예행연습을 했습니다. 다섯 시간을 헤엄첬는데 죽을 것 같았어요. 팔이 천근 만근 이었고, 다리가 말을 안 들었어요. 해안에 돌아 왔을 때 모래밭에 쓰러져 한 시간 동안 축 늘어져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이 훈련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드디어 2019년 7월28일 그 날이 왔습니다. 밤 10시, 강원도 고성 바닷가에 첨벙 뛰어 들었어요. 하늘에는 별이 총총 했어요. 7월인데도 물이 차가웠어요. <어머니, 제가 모시려 갑니다. 7년 전의 약속 지키려고 갑니다.> 손목에 찬 나침반을 보며 북쪽을 향해 갔습니다.

한 시간 반 정도 갔을 때 북한 경비정의 불빛이 보였어요. 물속으로 잠수 했어요. 발견 되면 끝장이니까요. 탐조등 불빛이 지나고, 다시 머리를 물 위로 올리고 계속 헤엄쳤어요. 벌써 3시간 째 바닷물 속에 있었어요. 저는 기계적으로 손발을 움직이고 있었어요. 온 몸이 깨어지는 것 같았어요. 강원도 고성에서 출발하여 쉬지 않고 수영을 한지 4시간째를 넘자, 발이 땅에 닿았어요.

어머니를 태우고 갈 작은 고무보트와 몇 가지 물건들을 해안가 바위틈에 숨기고 저만 알 수 있는 표시를 해 두었어요. 그리고 가짜 신분증과 북한 돈, 그리고 약품들을 챙겼습니다.

저는 함경북도 회령을 향해 걷기 시작 했어요. 며칠은 걸릴거에요. 저는 낮에는 숨고 밤에만 이동 했어요. 들키면 끝이니까요. 걸으면서 생각하니 기가 막혔어요. 죽기를 각오하고 탈출했었든 지옥 같은 북한 땅으로 다시 돌아와 걷고 있는 저의 모습이 꿈인가 생시인가 했어요. 그러나 저의 탈북 때문에 정치범 가족으로 몰려 강제 노동으로 고통받고 계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저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가만히 속삭였어요. <반드시 어머니를 모시고 돌아갈꺼야, 반드시….>하늘을 올려다보니 별이 총총하게 반짝이고 있었어요. 남한 하늘에서 보는 별이랑 똑 같았어요. 어머니도 이 별을 보고 계실까?. 아들이 구하려고 오고 있다는 걸 알고 계실까? 저는 하늘의 별을 보며, 작은 소리로 지껄였어요. <어머니, 제가 왔어요. 7년 만에 약속을 지키러 왔어요. 이제 곧 만나요>.

존경하는 교민 여러분, 나이 열 일곱살에 북한 땅을 탈출하여, 대한민국에서 7년을 살아 온 24세의 청년이, 자신 때문에 정치범의 가족으로 몰려 수용소에 같혀 있는 연로하신 어머니를 구하려고 4시간 동안이나 동해 바다를 헤엄처, 북한 땅으로 잠입한 효성이 지극한 이 청년이 과연 어머니를 구출해서 북한을 탈출할 수 있을까요? <다음 주에 완결 편이 이어 집니다.>

오늘 소개드리는 유민금 아동은, 제주도에 위치한 보육시설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어업에 종사하며, 고깃배를 타고 한 번 나가면, 며칠동안 집을 비웠고, 아동양육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엄마 혼자서 아동을 양육 했으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주거지가 불안정 해졌고, 아버지마저 감옥에 수감 되었습니다. 엄마와 아빠가 자식에 대한 양육 의지가 없어, 2020년 6월 시설로 입소하였습니다.

유민 아동은 2026년 현재, 초등학교 5 학년으로 열살 된 남자 아동입니다. 입소 초기에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말도 알아 듣지 못한 채, 싫다는 표현만 했습니다. 다리에 힘이 없어서 걷기, 뛰기, 계단 오르기가 힘이 들었고, 손을 잡아 주지 않으면, 중심을 잡지 못하고, 넘어져 자주 다첬습니다. 영양상태 또한 좋지 않아 나이에 비해서 많이 왜소했습니다.

지금은 시설에서 지내며, 언어치료와 작업치료를 꾸준히 받고 있습니다. 학교에도 잘 적응하며, 친구들과도 원만하게 어울리고 있습니다. 교민 여러분의 관심과 격려는 민금 아동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소식을 기다립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박 해 철 선교사 드림.

1458호 34면, 2026년 5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