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로 (Kultursensible Altenhilfe HeRo e.V.)
올해는 백범 김구 선생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여 유네스코가 선정한 『김구의 해』이다. 유네스코는 특정 국가의 독립운동가라는 사실만으로는 기념 인물을 선정하지 않는다. 김구 선생의 ‘문화국가론’이 유네스코가 지향하는 교육, 과학, 문화, 평화의 가치와 완벽하게 공감했기 때문이다. 백범이 꿈꾸었던 문화 비전이 오늘날 전 세계를 휩쓰는 K-컬처의 정신적 토대임을 국제기구인 유네스코가 공인한 것이다.
김구 선생은 그의 저서 『백범일지』 중 ‘나의 소원’에서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며 ‘문화 행복론’을 주창하셨다.
여기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는 단순히 물질적인 부강함이 아닌, ‘가장 수준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진 나라를 의미한다. 백범은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나라가 아니라, 우리의 풍부한 문화로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인류 전체를 행복하게 하는 나라가 되기를 꿈꿨다.
당시는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 아래서 내일에 대한 아무런 희망을 품지 못하고 있던 때였지만, 김구 선생에게 있어서 독립은 단순한 해방이 아니라 세계 속에서 독자적인 문화 주권을 확립하는 것이었고, 이미 우리 민족이 언젠가는 문화의 힘으로 세계를 향해 뻗어나가, 높고 새로운 세계 문화의 근원이 될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러한 김구 선생이 가졌던 ‘문화국가론’의 꿈은 80여 년이 지난 오늘날 K-POP, K-드라마 등 한류 문화를 통해 온 세계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고 문화 대한민국이 세계 속에서 꽃을 피우며 실현되고 있다. 그러나 문화는 단순히 음악이나 미술, 연극과 영화 같은 예술 분야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 나라 국민이 가지고 있는 심성인 국민성도 문화의 요소가 된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한국인은 어른을 공경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것도 우리가 간직해야 할 우리의 좋은 문화이다.
우리가 문화민족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좋은 기회가 있었다. 지난 5월 2일 토요일 함부르크의 폴 게르하르트 복음교회에서 재독 한인 1세대를 위한 <자선 음악회>가 열렸다. 함부르크 국립오페라에서 활동하는 남자 성악가들이 ‘바람 앙상블’을 구성하여 재능기부를 하는 자선 음악회였다. 기부도 문화인데, 자신들이 가진 재능을 남을 위해 사용한다는 것이 음악회를 빛나게 했다.
음악회는 오펜바흐와 구노의 합창곡으로 시작되었다. 정상의 오페라 가수들 여럿이 함께 부르는 힘 있는 목소리는 공간을 가득 채우며 분위기를 휘어잡았다. 이어서 브람스와 푸치니, 베르디 등의 아리아와 윤학준의 ‘마중’이 이어지며 유럽 클래식과 한국 가곡이 함께 어우러져 음악회의 깊이를 더했다.

음악회 중에 함부르크 한인회 신길봉 회장의 인사말과 이상수 함부르크 총영사의 축사, 그리고 베를린에서 달려간 해로(HeRo e.V.)의 봉지은 대표의 감사 인사를 통해 재독 한인 1세대를 위한 자선 음악회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감사와 축하의 마음을 전했다. 1부와 2부 사이의 Pause 동안에는 간단한 음료와 식사가 준비되어 참석한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교제하는 시간이 되었다.
2부는 함부르크 한인 여성합창단의 무대로 시작되었다. ‘바위섬’과 ‘꽃 타령’을 통해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아온 어른 세대의 목소리가 하나가 되어 무대를 채웠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어르신들이 가진 음악에 대한 열정은 나이와 상관없었다.
계속해서 비제, 베르디 등의 오페라 작품과 함께 프로그램은 점차 익숙한 우리 선율로 옮겨갔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뱃노래’, ‘아리랑’까지 이어지는 후반부는 관객과 출연진이 하나가 되어, 함께 호흡하며 만들어 가는 음악회가 되었다.
이번 음악회는 무료로 진행되었으며 자발적인 후원을 통해 마련된 기금은 함부르크 한인사회의 1세대 어르신들을 위한 활동과 노인 복지단체 해로(HeRo e.V.)를 지원하는데 사용될 예정이다. 함부르크 한인사회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순서지에 소개된 다양한 지원 단체와 식당 등 많은 한인 사업체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하는 긴밀한 모습도 보기에 참 좋았다.
음악회를 통해 어르신들 세대가 보낸 시간을 함께 돌아보고 또 지금도 다음 세대를 통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공동체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음악회의 감동을 더 오래 이어가고 싶어서 “추가베(앙코르)”를 외치는 청중들의 박수 소리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 박수에는 공연의 여운을 넘어, 조금 더 함께 머물고 싶고 함께한 시간을 놓고 싶지 않은 진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마지막 앙코르곡으로 울려 퍼진 ‘Nessun dorma’ 중의 노래 가사인 “아무도 잠들지 말라”는 외침과 “나는 승리하리라”라는 선언은 낯선 땅에서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지켜온 파독 1세대의 시간과 겹치면서 이날의 의미를 더욱 또렷한 오랜 여운으로 남겼다.
그분들의 삶은 조용했지만, 분명했다. 삶,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완성된 노래였고 이야기였다. 이날 음악회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나누며 앞으로를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음악이 끝난 뒤에도 한 가지 질문이 계속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이 시간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신명기 15:11)
박희명 선교사 (호스피스 Seelsorger)
1458호 16면, 2026년 5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