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받는 독일, 아베는 왜 모르나…아우슈비츠 75주년이 알려준 교훈

1월 27일로 홀로코스트의 상징인 아우슈비츠(폴란드어 오시비엥침) 수용소가 소련군에 의해 해방된 지 75주년을 맞았다. 이날은 유엔이 15년 전인 2005년 11월 1일 ‘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의 날’로 정해 글로벌 기념일로 쇠고 있다.

이슬람 지도자들, 아우슈비츠 찾아 추모기도

올해 홀로코스트 추념일을 앞두고 지난 24일 놀라운 사건이 벌어졌다. 무슬림(이슬람 신자) 지도자들이 아우슈비츠를 방문해 유대인들과 함께 추모 기도를 했다고 영국의 일간 인디펜던트가 보도했다. 아우슈비츠는 무슬림 방문이 드문 곳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 본부를 둔 ‘무슬림 세계연맹(Muslim World League)’의 지도자인 무함마드 빈 압둘카림 알이사 사무총장이 28개국에서 온 62개 무슬림 지도자들을 이끌고 24일 아우슈비츠를 찾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기도를 주재했다. 이날 무함마드 사무총장 일행은 미국 유대인위원회(AJC)의 데이비드 해리스 최고영영자 일행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AJC는 미국에서 정치적인 영향력이 큰 유대인 단체로 올해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주목받아왔다.

무슬림 세계연맹은 1962년 당시 사우디의 파이잘 왕세자(1906~1975년, 국왕 재위 1964~1975년)가 창설한 법이슬람권 비정부기구(NGO)로 사우디 정부가 재정 지원을 해왔다. 평화·관용·사랑을 장려해 이슬람의 진정한 메시지를 알리는 것을 목적으로 명시한다. 무함마드 사무총장은 1909~2015년 사우디아라비아의 법무장관을 지낸 고위 인사다. 무슬림 지도자들의 아우슈비츠 방문이 사우디와 이스라엘 간 화해의 신호탄인지,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이란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정치적 몸짓인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지만 대단한 사건인 것은 분명하다.

예루살렘에 47개국 정상 모여 홀로코스트 추모

이와 더불어 지난 23일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추모관’에서 각국 대표들이 참석해 세계 홀로코스트 포럼이 열렸다고 BBC방송 등이 보도했다. 이 행사에는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소련을 승계한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같은 연합국인 영국의 찰스 왕세자,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등과 함께 참석했다. 2차대전 당시 추축국이던 독일의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과 이탈리아의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도 참석했다. 이날 1991년 옛 소련에서 분리 독립한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롯해 각국 대통령 26명과 총리 4명, 왕세자 등 47개국 대표가 예루살렘에 집합했다. 이스라엘의 레우벤 리블린 대통령은 전날인 22일 저녁 외국 사절을 관저로 초청해 전야제 행사를 열었다. 홀로코스트 추모 외교다.

독일 대통령 예루살렘, 총리 홀로코스트 사진전

주목할 점은 역사적으로 ‘가해자’에 해당하는 독일 지도자들의 철저한 반성과 추모 행보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예루살렘으로 달려가 홀로코스트의 재발을 막아야 한다는 국제 지도자들의 연설을 경청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베를린에서 열린 홀로코스트 생존자 사진전에 참석해 이제는 노인이 된 생존자들의 얼굴 사진을 찬찬히 살펴보며 고개를 숙였다.

현직 총리 메르켈, 세 차례 수용소 터 찾아 반성

메르켈 총리의 과거사 반성 언행은 집요하고 철저하다. 2019년 12월 6일에는 마테우시 모리비에츠키 폴란드 총리와 함께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찾아 과거 화장장이 있던 자리에 헌화하고 고개를 숙였다고 미국의 소리(VOA)가 보도했다. 메르켈이 취임 뒤 아우슈비츠를 찾은 것은 처음이다. 메르켈은 이날 연설에서 “나치가 저지른 범죄를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며 “책임 인식은 독일의 국가적 정체성”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야만적 범죄에 부끄러움을 느낀다”며 “슬픔을 다 표현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독일 총리가 나치 만행의 현장에서 영원한 기억과 시효 없는 반성을 다짐한 것이다. 독일의 연방정부와 지방정부는 6000만 유로를 기부해 아우슈비츠 수용소 보전에 쓰게 할 방침이다.

무한책임과 영원한 반성, 청소년 교육 다짐

메르켈 총리는 2013년 8월 20일 독일 현직 총리로는 처음으로 남부 바이에른주 다하우 수용소를 방문해 ‘1933~1945라고 적힌 팻말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희생자를 추모했다. 메르켈은 “수삼자들의 운명을 생각하면 깊은 슬픔과 부끄러움을 느낀다”며 “이곳의 경고는 영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메르켈은 여성부 장관 시절이던 1992년 다하우 수용소를 찾기도 했다.

메르켈은 그 뒤 2015년 5월 4일에도 다하우 수용소에서 열린 해방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당시 메르켈은 “우리는 지난 일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며 “독일은 과거 벌어진 사건에 영구적인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청소년들이 과거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생존자들의 증언은 과거 역사를 이해하는 데도움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나치 범죄를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과거사를 떠올리면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달려가야 한다”고 말했다. 미래로 가기 위해 과거를 훌훌 털자는 일부 국가 지도자의 주장과는 완전히 달리 가해자의 무한 책임을 강조했다.

홀로코스트 국제 추모, 독일이 가장 먼저 시작

더욱 놀라운 사실은 홀로코스트 국제 추모에 독일이 유엔이나 국제사회보다 먼저 나섰다는 점이다. 1996년 1월 3일 로만 헤어초크 당시 독일 대통령은 소련군이 아우슈비츠를 해방한 1월 27일을 ‘국가사회주의(나치) 희생자 추념의 날’로 지정했다. 유엔보다 9년 먼저 홀로코스트 추념일을 지정한 것이다.

그 뿐이 아니다. 전후 서독과 독일의 지도자들은 과거 나치와 확실하게 단절하고 과거사를 반성하며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재발을 다짐하는 언행을 반복해왔다. 상대가 믿어줄 때까지 계속했다. 결정적인 사건이 50년 전인 1970년 12월 7일이다. 당시 폴란드를 찾았던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는 바르샤바 게토 봉기 추념시설을 참배하다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3년 나치 점령군에 대항해 싸우다 대대적인 학살을 당한 폴란드인과 유대인 희생자들을 추념하는 시설물이다. ‘바르샤바 무릎꿇기’로 불리는 이 사건은 2차대전 당시 나치에 피해를 입었던 동유럽 주민들에게 전후 독일이 나치와 확실하게 다른 나라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이 역사적 사건으로 브란트가 추진하던 동유럽과의 화해정책인 ‘동방정책’은 탄력을 받았다. 브란트 총리는 이 정책으로 이듬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1990년 10월 3일 독일 재통일 당시 동유럽 국가에서 이의가 제기하지 않았던 것도 브란트의 공이 크다는 평가다.

폭격피해자·실향민압력에도 원칙 강조

독일이라고 해서 과거사 반성에 정치적인 부담이 없지는 않았다. 독일에는 2차대전 당시 심한 보복을 당해 독일도 피해국이라고 주장하자는 사람이 일부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건이 1945년 2월13~15일의 드레스덴 폭격이다. 영국과 미국은 폭격기 722대로 3900t의 고폭탄과 인화물을 투하했다. 당시 나치 선전기관은 무고한 피난민을 중심으로 20만 명이 희생됐다고 주장했다. 전후 철저한 조사로 사망자를 최고 2만5000명으로 수정했지만, 독일 일각에선 이날을 전후해 연합군의 사과를 요구하기도 한다.

독일의 ‘실향민’도 정치 지도자들에겐 심리적인 부담을 준다. 전후 독일이 폴란드·러시아에 떼준 영토의 주민은 물론 수백 년 전에 이주해 체코·헝가리·루마니아 등에 정착했던 독일계 후손들도 지금의 독일 땅으로 추방됐다. 그 숫자는 1200만~1400만 명으로 추산된다. 그 가운데 47만~60만 명은 추방 도중에 보복 학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후 독일 일부를 점령한 소련군이 자행한 학살과 강간, 절도와 파괴행위도 문제다. 실향민과 그 후손의 일부는 전후 ‘우리는 연합국에 의한 피해자’자는 인식 속에 영토 수복을 요구하는 세력이 됐다.

독일이 존경받는 나라가 된 이유를 알아야

하지만 독일 정치인들은 중요한 표밭일 수 있는 이들에게 시종일관 원칙을 강조했다. 1996년 9월 8일 베를린에서 열린 ‘실향민의 날’ 행사에서 당시 로만 헤어초크 대통령(1934~2017년, 재임 1994~1999년)은 “(2차대전 뒤 상실한) 동프로이센·상슐레지엔·동포메른 출신의 독일인들에겐 고통스럽겠지만 국제법상 이곳은 현재 폴란드와 러시아의 땅”이라며 “우리는 옛독일 영토를 영구히 포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4000여 명의 실향민은 야유와 욕설을 퍼부었으며 일부는 ‘민족반역자’라고 고함을 지르기도 했지만 헤르초크 대통령은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연설을 마친 그는 기자들 앞에서 “정치인이 인기에만 영합한다면 그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며 “독일의 진정한 발전은 주변국들과 선린우호를 더욱 다지는 데 있지 현실성 없는 옛땅 회복이나 부르짖는 데 있지 않다”라고 강조했다. 헤어초크 대통령은 취임 뒤 폴란드에서 열린 바르샤바 봉기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여 봉기 참가자들과 폴란드 국민을 칭송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대통령의 이런 태도가 독일의 국격을 높였을 것이다.

아베가 배워야 할 독일의 역사 정치

그런 헤어초크 대통령이니 1996년 ‘국가사회주의 희생자 추념의 날’을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제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독일이 유럽연합(EU)의 구심점이자 존경 받는 나라가 된 것은 브란트·헤어초크·메르켈 등 큰 정치인의 과거사 반성 정치에 힘입었다고 봐야 한다. 이들은 표보다 원칙을 소중히 한 큰 정치가다. 장래 독일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된다면 이들 지도자가 보여준 것처럼 역사 앞에 한없이 겸허한 태도로 끝없이 반성과 사과를 하는 자세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표를 쫓아 역사를 왜곡하고 이웃나라의 분노를 유발하는 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가 눈여겨봐야 할 독일의 역사 정치다.

사진1: 1월 23일 전 세계 47개국에서 온 국가정상과 대표들이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추념관에서 열린 제5회 홀로코스트 포럼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2: 앙겔라 메르켈 총리(앞쪽)가 지난해 12월 6일 마테우시 모리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뒷쪽)와 함께 아우슈비츠 박물관을 찾아 헌화한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2020년 2월 7일, 1157호 14-1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