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트. 고(故) 고혜영씨 장례예배가 4월 11일 (토) 10시 뒤셀도르프 인근 카스트(Kaarst) Auferstehungskirche에서 거행되었다.
고인의 장례예배에는 뒤셀도르프 한인들뿐만 아니라, 프랑크푸르트 등 원근각지에서도 많은 친지들이 함께 헸으며, 많은 독일인들도 장례예배에 참석하여 고인과의 작별을 슬퍼하였다.


고(故) 고혜영씨는 뒤셀도르프에서 2개의 약국(고약국)을 운영하며, 뒤셀도르프한인회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담당하였다. 파독광부, 간호사의 2세로서, 1세대 어른들에 대한 공경심을 잃지 않으며, 후배 2세들에게도 살갑고 든든한 선배 역을 묵묵히 수행하여왔다.
뒤셀도르프한인회 고창원회장은 고인을 회상하며, “늘 우리 한인회의 든든한 후원자였다”며 “지난 카니발 행사에도 후원을 대폭 늘려 지원하며, 내년에는 더 많이 지원할께요, 아저씨” 라던 고인과의 마지막 대화를 회상하며 갑작스런 고인의 죽음을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표했다.
갑작스런 고인의 부고는 재독동포사회뿐만 아니라, 동료들에게도 상상 못할 충격으로 다가왔다. 장례예배에게 조사를 하던 동료는 고인의 일상을 회고하며 “언제나 친절하고 자상한 사장이자 동료였다”며, 끝내 울음을 참지 못하였다.
장례예배를 마친 뒤 조문객들은 고인의 가족이 준비한 인근 독일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오찬과 함께하며, 고인을 회상하며 가족들을 위로하였다.(편집실)
큰언니를 그리며
우리 큰언니는 세 남매 중 맏이였고, 항상 더 어려운 위치에 있었습니다. 늘 더 많은 꾸중을 들어야 했고, 더 많은 것을 요구받았으며, 맏이였기 때문입니다.
우리 큰언니는 마음이 매우 넓은 사람이었습니다. 따뜻하고 다정했으며 언제나 조화를 이루려 애썼습니다. 잘 웃었고, 유머를 즐겼으며,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고,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과 맛있는 음식도 좋아했습니다. 가족은 언제나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큰언니에게는 약국 직원들 또한 모두 가족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정직과 신의는 그녀에게 모든 면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였습니다.
그녀는 어떤 문제든 외면하지 않고 늘 해결책을 찾으려 했고, 대부분 실제로 해결해냈습니다. 물론 “싫어, 그건 안 할래”, “어떻게 그렇게 바보 같은 짓을 할 수 있어?”, “이건 말도 안 돼…” 같은 말을 먼저 하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항상 나서서 도와주었습니다.
큰언니는 늘 부모님을 잘 돌보았습니다. 병원에 자주 모시고 갔고, 부모님의 발이 되어 드렸으며, 거의 모든 장을 보고 집안일도 했습니다. 정말 모든 것을 다 해냈습니다.
큰언니는 약국에서의 일을 사랑했습니다. 직원들을 아꼈고, 환자들을 좋아했습니다. 길고 깊이 있는 대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깊은 유대와 좋은 우정을 쌓았습니다.
그녀의 큰 열정은 축구였습니다. 응원하는 팀은 바이엘 레버쿠젠이었습니다. 경기장에 가서 자신의 팀을 응원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말하자면 홈경기에서 다음 홈경기까지를 기준으로 살아간 셈이었습니다. 아이들을 경기장에 데려갈 때마다 늘 무척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우리 큰언니는 제 아이들에게 최고의 이모였습니다. 조카들을 자신의 아이처럼 사랑했고, 아이들 역시 그 사랑을 그대로 돌려주었습니다. 그녀는 항상 매우 너그러웠습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말하기도 전에 이미 들어주곤 했습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통화를 했습니다… 주로 제가 오후에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기다릴 때, 또는 그녀가 밤늦게 집으로 돌아갈 때였습니다… 사실 우리는 낮의 절반을 함께 일하면서 보냈는데도 말입니다.
저녁에 일이 끝나고 곧장 집으로 돌아가는 날에도, 아이들이 행복하게 잠들기 전에 잠깐 들르곤 했습니다… 이모가 왔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기뻐했고,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짧게나마 이야기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네덜란드 바다로 함께 여행 가는 것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아이들은 누가 이모와 같은 방을 쓸지 항상 제비뽑기를 해야 했습니다. 모두가 이모와 같은 방을 쓰고 싶어 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는 더 이상 큰언니에게 전화를 할 수 없습니다… 이제 저녁에 갑자기 들러 아이들을 안아주고, 우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없습니다… 이제 큰언니와 함께 여행을 갈 수도 없습니다… 더 이상 해변의 작은 가게에서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거나, 그냥 나란히 앉아 책을 읽으며 함께하는 시간을 즐길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저는 단지 큰언니를 잃은 것이 아니라, 가장 친한 친구이자 직장에서는 제 상사까지 잃었습니다.
우리 큰언니는 누구도 채울 수 없는 빈자리를 남겼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많은 좋은 것을 남겨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남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제 큰언니였다는 것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당신을 너무나 그리워할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을 정말로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언제나 우리 마음속에 특별한 자리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마음 깊이 사랑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사랑하는 큰언니. 다시 만날 때까지…
막내 근영
1455호 12면, 2026년 4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