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학 편집장과 함께하는 역사산책(47)

독일 정신의 발원지 보름스(Worms)

중세 게르만 문학 서사시 니벨룽엔(Nibelungenlied)의 전설이 전해 내려오며, 라인강이 흐르는 보름스는 루터(Martin Luther)의 외침과 종교개혁의 정당성을 이끌어낸 역사의 장소이다. 이렇듯 보름스는 자연과 개신교라는 종교 그리고 게르만족 고유의 문화를 아우르는 독일 정신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일반인들에게는 루터에 대한 종교재판이 열린 도시, 루터가 거대한 위협과 핍박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켜낸 곳으로 보름스는 잘 알려져 있다. 2021년 보름스 시는 이 종교재판을 기념하기 위해 “500 Jahre Luther in Worms”라는 표어로 대대적인 행사를 준비하였으나, 코로나로 인해 많은 행사들이 취소되어 많은 아쉬움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루터에 대한 종교재판의 유명세로 인해 2000년 역사 도시 보름스의 가치가 매우 제한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점도 사실이다.
이번 “역사산책 보름스” 편에서는 중세시대 중요 도시로서의 보름스, 루터의 종교재판 현장,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유대인공동체 유적, 그리고 독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니벨룽엔의 노래”의 주 무대 보름스를 함께 살펴보며, 보름스를 새롭게 인식하도록 한다.

◈ 홀로 아닌 여럿이서 이뤄낸 종교개혁

루터광장(Lutherplatz)

지난 호에서 살펴본 루터재판 현장에서 시내(또는 대성당) 반대편으로 나오면 대로인 Lutherring과 Lutherring 녹지(Günanlage)가 나온다. 녹지를 따라 시내 방향으로 조금 걸으면 바로 루터광장((Lutherplatz)이다.

파시즘 희생자 기념비(Mahnmal für die Opfer des Faschismus)

그러나 우리는 루터광장 바로 전에 있는 Otto-Wels-Platz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이 자리에는 1950년 9월 10일 제막된 “파시즘 희생자 기념비(Mahnmal für die Opfer des Faschismus)”가 자리하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나치 정권에 의해 학살당한 지역 주민들을 기념하는 목적으로 세워진 이 기념비는 나치 정권에 대한 책임과 학살의 역사를 기억하고자 하는 의지를 상징하고 있다.

또한, Mahnmal für die Opfer des Faschismus는 독일의 다른 여러 도시들에도 같은 이름의 기념비가 있다. 이를 통해 독일의 언제나 나치 정권의 과거를 기억하고 잊지 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이 기념비는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후원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나치 정권에 의해 압도당한 독일의 어둠의 역사를 상기시키고, 이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루터 광장(Lutherplatz)

파시즘 희생자 기념비 건너편 녹지에는 루터과장이 있고, 이 루터광장에는 세계 최대의 종교개혁 기념비가 서있다. 이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기념비 가운데에는 성경책을 들고, 주먹 쥔 손을 성서 위에 올리며 굳은 결심에 찬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루터의 동상이 세워져있다. 그리고 여러 종교개혁자들의 동상이 루터의 주변에 함께 세워진 것이 이 기념비의 특징이다.

루터를 비롯해 여러 인물 동상을 함께 세운 것은 종교개혁 과정을 나타내기 위함이었고,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는 루터 동상 하단부에는 “나는 여기에 있습니다.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하느님, 이 몸을 도우소서 (Hier stehe ich, ich kann nichts anders, Gott helfe mir. Amen!)” “라는 루터의 말이 새겨져 있다.

루터의 양쪽에는 현자 프리드리히 선제후(Friedrich III. Sachsen)와 헤센의 필립 방백(Philipp I. von Hessen)이 서 있으며, 뒤에는 필립 멜란히톤(Philipp Melanchthon)과 요한네스 로이힐린(Johannes Reuchlin)이 있다.

루터 동상 주변에는 적극적으로 종교개혁에 참여하고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노력한 31개 개신교 영지들의 문장을 발견할 수 있다. 루터 동상 아래는 영국의 성경 번역자 요하네스 위클리프와 화형 당한 체코의 요하네스 후스, 그리고 루터보다 약 한 세대 정도 앞서 살면서, 타락한 자기 시대와 교회를 향해 강력하게 회개하라고 외쳤던 설교자 사보나롤라(Girolamo_Savonarola), 최초의 종교개혁자라고 평가되는 페터 발도(Peter Waldo) 등 여러 종교개혁자들의 동상과 당대 선제후들의 모습이 담겨있으며, 종교개혁과 관련된 주요 사건들도 함께 조각되어 있다.

이 동상들은 에른스트 리첼(Ernst Rietschel)과 다른 조각가 31이 12년 동안(1856~1868) 함께 작업해서 만들었다. 드레스덴 예술가였던 Ernst Rietschel은 두 인물(루터와 위클리프)을 만든 후 1861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다른 인물들은 그의 제자인 Adolf von Donndorf, Gustav Kietz 및 Johannes Schilling가 라첼의 초안에 따라 제작하였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 동상을 세워놓은 위치이다. 루터가 재판받은 자리는 가톨릭 교회의 소유지인 관계로, 그곳에는 종교개혁과 관련된 기념물을 세울 수가 없었고, 실제 장소에서 약 100m 가량 떨어진 이곳에 동상을 세우게 된 것이다.

1868년 6월 25일 열린 의 제막식에는 10만의 인파가 이곳을 찾았으며, 그 가운데에는 당시 프로이센 군주이자 훗날 독일 황제가 되는 빌헬름 1세도 이 제막식에 참석했다.

특이한 것은 3명의 여자 동상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개신교의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아우크스부르크와 슈파이어, 마그데부르크(Magdeburg)를 형상화 시켜놓은 것이라고 한다.

먼저, 광장 왼편에 있는 이 여인의 동상은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서」(1530년)와 ‘아우크스부르크 화의’(1555년)를 기념하는 것이다. 그녀가 손에 들고 있는 두루마리(왼손)와 평화의 잎(오른손)은 그 두 사건을 의미하고 있다. 여인의 표정에서도 평안함과 온화함을 엿볼 수 있다.

광장 뒤쪽 모서리 한 가운데에는 ‘저항하는 슈파이어’를 상징하는 여인의 동상이다.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제 2차 슈파이어 제국의회에서 제후의 신앙이 그 지역의 신앙을 결정한다는 기존의 결의를 폐기하고, 제국 안에서는 오직 로마 가톨릭만 믿어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에 여러 개신교 제후와 도시 대표들은 황제의 결정에 강력하게 항의(프로테스탄트)하며, 기존의 결의를 지켜달라고 요구했다.

그렇기에 이 여인의 동상은 무언가를 제지하려는 듯 한 모습을 하고 있다. 특히, 그녀의 무릎 위에 펴져 있는 커다란 책은 황제라도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하나님을 믿고 섬길 수 있는 신앙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표현한 듯하다.

마지막으로 오른쪽에 있는 ‘슬퍼하는 막데부르크’ 여인의 동상은 매우 어둡고 침울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칼을 축 늘어뜨린 채 슬퍼하는 이 여인의 동상은 30년 전쟁 중에 일어난 ‘마그데부르크 학살(또는 약탈)’의 참상을 표현한 것이다.

로마 가톨릭 측에 속한 틸리 백작과 파펜하임 장군은 막데부르크를 함락하고, 무려 25,000~30,000명가량 되는 시민을 학살했고, 도시 대부분을 파괴했다. 전쟁 후 막데부르크는 이를 복구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재물을 들여야만 했다.

한편 루터의 동상이 다른 동상들과 함께 세워져있는 모습은 지난 역사산책에서 살펴본 슈파이어 프로테스탄트 기념교회(Protestantische Gedächtniskirche) 입구에서도 볼 수 있다. 제국의회 당시 루터의 추방에 대해 친루터계 소수파였던 ‘복음파’ 6명의 제후들과 14개 제국 도시들은 황제의 결정에 강한 이의를 제기했다. 후대는 이들의 정신을 기념하기 위해 이 기념교회를 건축했고, 루터와 이들을 기념하는 동상을 세웠다.

◈보름스시내에서

이제 루터광장에서 벋어나 시내로 들어가 본다. 보름스는 그 규모가 작아 조금만 걸아가면 바로 시내 중심이 된다. 루터광장에서 길을 건너면 Obermarkt가 나온다. Obermarkt는 보름스의 중심지였기에, 원래 수많은 중세건축물이 자리 잡고 있었으나, 2차 대전 당시 폭격으로 이제는 옛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Obermarkt 광장에는 분수대외 함께 운명의 바퀴(Schicksalsrad)라는 청동조각물이 설치되어 있는데, 2000년 보름스의 역사를 상징하는 모습들로 장식되어 있다. 보름스를 방문하는 독자들은 꼭 한번 찾아보기를 권한다.

이 광장에서 시내 중심으로 50여 미터 가면 중앙 대로인 Kämmerstraße를 만나게 된다.

Kämmerstraße는 보름스 시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길로 도로 명칭은 보름스에서 가장 오래된 귀족이었던 Kämmer 가문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우리는 Kämmerstraße에서 Thalia 서점 방향으로 나아간다. Thalia 서점이 눈에 잘 띠기도 하지만, 서점이 들어선 건물이 보름스에서는 매우 유명한 대 저택, 즉 밤볼더 대저택(Wambolder Hof)인 까닭이다.

밤볼더 대저택은 보름스에서 2차 세계대전의 피해를 받지 않은 몇 안 되는 중요 건물로서, 18세기 초엽 당시 바로크 건축의 대가로 유명했던 Maximilian von Welsch에 의해 건축되었다. 밤볼더 대저택 전면에는 Wambold-Schönborn 가문과 Dalberg 가문의 문장에 장식되어 있어, 당시 보름스를 지배했던 가문의 저택임을 알 수가 있다.

다음 호에서는 Kämmerstraße를 따라 보름스 시내를 살펴보도록 한다.

1308호 20면, 2023년 3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