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만료되는 이란에 대한 제재를 연장하자는 결의안이 논의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미국이 사실상 ‘왕따’를 당하면서 제재 연장이 무산됐다. 이에 분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스냅백’(약속 불이행 시 제재 재도입) 조치를 발동하겠다고 밝혀 미국-이란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8월 15일 언론 브리핑에서 대이란 무기 금수 제재 연장 문제와 관련해 “우리는 스냅백을 시행할 것”이라며 “다음 주에 이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냅백은 이란이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내용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완화한 제재를 다시 복원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란 핵합의 당사자 간의 정상회의를 제안한 것에 대해서는 “아마도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대선이 끝날 때까지 지켜보겠다”며 회담을 거절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결의안 부결 직후 “중대한 실수”라며 “앞으로 며칠 내에 무기 금수를 연장하기 위해 어떤 일도 서슴지 않겠다는 약속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10월 만료 예정인 이란의 무기 금수 제재가 풀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6월 제재 연장 결의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14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표결에서 15개 이사국 중 미국과 도미니카공화국만 찬성표를 던졌다. 중국과 러시아는 반대했고, 이란 핵합의 참여국인 프랑스 독일 영국을 포함해 나머지 11개국이 기권해 해당 안건은 부결됐다.
이런 까닭에 JCPOA의 이행을 보증한 유엔 안보리 결의(2231호)에 따라 이란의 재래식 무기는 10월 18일부터 수출입이 가능하게 된다. 이러자 트럼프 대통령이 스냅백을 통해 직접 수출입 차단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이란은 결의안 부결에 반색했다.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이날 TV 연설을 통해 “미국이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다”며 “미국이 수개월 전부터 제재를 준비해 왔음에도 작은 섬나라(도미니카공화국) 지지를 얻는 데 그쳤다”고 꼬집었다. 아미르 하타미 이란 국방장관은 “제재가 해제되면 원하는 수요자에게 무기를 수출할 것”이라고 했다.
2015년 미국을 비롯한 6개국과 이란이 체결한 핵합의는 이란이 핵개발을 포기하면 그에 상응하는 조건으로 경제 및 군사 관련 제재를 해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2018년 핵합의를 파기한 뒤 ‘최대 압박’에 나서면서 국제사회 공조가 깨진 상태다.
AFP통신과 CNN방송 등 외신은 “동맹국들조차 회의적 반응을 보이는 미국의 대이란 제재 복원 방침이 유엔 안보리 합의의 중요성과 정당성을 해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기 금수 조치 해제가 이란 핵합의의 필수 조건 중 하나였던 만큼 미국이 스냅백 조치에 나선다면 핵합의가 파기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폼페이오 장관은 “세계 최대 테러 지원국의 무기 시스템 구매와 판매를 허용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이건 그냥 미친 짓”이라고 강하게 비난했지만 이런 상황은 미국이 자초했다. 미국은 다른 JCPOA 체결 당사국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018년 JCPOA에서 탈퇴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 법무부는 8월 14일 성명을 통해 “베네수엘라로 향하던 이란 유조선 4척을 나포해 110만 배럴의 석유를 압수했다”며 이란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였다.
EU “미국 대이란 ‘스냅백’ 제재 복원 강제 권한 없다”
유럽연합(EU)이 미국이 ‘스냅백’ 조치를 통해 대이란 제재 복원을 강제할 권한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EU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의 대변인은 8월 16일 미국은 일방적으로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탈퇴했기 때문에 해당 합의의 참가국으로 여겨질 수 없다면서 “우리는 따라서 미국이 JCPOA 참가국을 위해 마련된 절차들을 사용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본다”라고 밝혔다.
미국이 스냅백 조항 발동을 밀어부칠 경우 안보리가 심각한 외교적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긴급 화상 정상회의를 제안했고, 프랑스는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영국·독일 등도 미국과 다른 안보리 이사국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절충안 마련을 위해 노력 중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의 화상 정상회의 제안에 대해 “(미국) 선거가 끝날 때까지 지켜볼 것”이라면서 불참 의사를 내비쳤다.
이란 핵합의는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 등 6개국은 2015년 이란과 체결한 것이다. 이란이 핵프로그램을 감축·동결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는 대신 유엔·미국·EU의 핵개발 관련 제재를 해제한다는 것이 골자다.
이란 “미, 핵합의 먼저 깼으면서 제재 복원한다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스냅백'(snap-back. 이란 핵합의로 해제된 대이란 제재 복원)을 주장한 데 대해 이란은 핵합의를 이미 탈퇴한 미국은 그럴 권리가 없다고 반박했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8월 16일) “미국은 2년 전 핵합의를 깨고 나가더니 스냅백을 한다고 한다”라며 “스냅백 절차를 개시할 수 없다는 것은 미국 자신이 더 잘 알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은 2018년 5월 기뻐하며 핵합의를 파기했을 때 존 볼턴(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미국은 핵합의 참가국이 더는 아니라고 선언한 회견문이 백악관 홈페이지에 아직 남아있다”라고 꼬집었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스냅백'(snap-back) 조치 발동을 시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데 대해 중국이 일방주의적이고 패권주의 행태라며 강력히 비난했다.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8월 17일 정례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스냅백 조치 발동 발언과 관련해 평론을 요구받고 이같이 밝혔다.
자오 대변인은 무기 금수 제재 연장을 위해 미국이 주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결의안이 전날 부결된 것을 거론하면서 “이번 표결로 일방주의는 인심을 얻을 수 없고, 패권주의 행태는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이 다시 한번 증명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자신의 이익을 국제 사회의 공동 이익보다 위에 두려는 어떠한 시도도 반드시 실패하게 돼 있다”면서 “최근 미국은 일방주의와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자신의 국제 의무를 포기해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조속히 일방주의를 포기하고, 단독제재와 간섭을 중단하기를 촉구한다”며 “이성적인 태도로 전면적인 협의와 안보리 합의를 준수하는 정상 궤도로 돌아오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1183호 19면, 2020년 8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