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pl.-Ing. WONKYO 연구소장
교포신문은 6월부터 1년간 정원교선생의 “천 년을 가라 한들 멀다 했으랴” 글을 연재합니다.
이 연재가 독자들의 인문학적 지평을 넓혀줄 것을 확신하며 독자들의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에이브라함 링컨
우리는 에이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 이 미국의 16대 대통령이었음을 알고 있고 흑인노예를 해방시킨 훌륭한 대통령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얼마나 가난한 삶이었으면 삽에다가 글을 쓰면서 공부를 했다는 이야기가 있을까 싶으며 반짝이는 반딧불과 반사되는 흰눈빛으로 공부하여 이룬 성공(형설의 공)이 아니라 빛도 반사도 없는 검은 삽 (Schaufel) 에 쓰기를 하여 이룬 성공이다.
링컨은 학교에서 배우기보다는 집에서 스스로 공부하면서 독학으로 변호사가 되고 주의원이 되는가 하면 하원의원도 하면서 정치적인 입지를 키워 갔다. 소위 0,1% 에 속하는 영재가 아니었다 싶다.
그는 대한민국이 6.25 전쟁 때 남북으로 갈라져서 동족끼리 전쟁을 치루었던 것처럼 미국도 남과 북으로 갈라져서 동족상잔이 일어났었을 때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끈 대통령이기도 하다.
미국 남북전쟁 이전의 남쪽은 아프리카에서 사들이거나 끌어 온 흑인노예들을 주로 목화 밭이나 채소밭에서 강제노동을 시키고 있었다.
북쪽보다 남쪽의 기후가 따스하고 기름진 평야가 많은 데에 비해 노동인력은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들 흑인 노예들은 아프리카지역에서 잡혀 오거나 팔려왔으며 덩치가 크고 건강하며 일 잘하게 생긴 노예들은 경매로 비싼 값으로 다시 팔려가기도 했다.
노예들을 한 인간으로 본 링컨은 대통령이 되기 이전부터 “만약에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이 비인간적인 노예제도를 폐기시키고 그들을 모두 노예에서 해방시키겠다” 고 기회있을 때마다 말해 왔었다.
그후 링컨이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남부지역 11개 주에서는 미국연방으로부터 분리하겠다며 독립선언을 발표하고 나섰다. 남부지역이 미국연방에서 탈퇴하게 되면 흑인노예해방에 관한 연방법과 상관없이 흑인들을 노예에서 해방시키지 않고 계속해서 노동력으로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노예해방 문제로 인해 남과 북의 정치적 통합이 어려울 것으로 본 링컨 대통령은 강압적이고 독재적인 정치를 펼치기 시작했다. 남부지역에 몰려 있는 연방분리주의자들을 수색 검거하기 시작했으며 체포되면 재판 없이 바로 형무소에 투옥시켜 버리는 독재였다.
하지만 노예해방문제로 4년에 걸친 남북전쟁 (1861-1865)을 피할 수 없게 되었으니 서로가 이 전쟁으로 약 50만 명에 이르는 사상자를 냈다. 결국 남부연합을 이끌었던 로버티 리(Rober Edward Lee) 총사령관의 항복으로 전쟁이 끝났다.
대한민국 남북 (6.25) 간의 동족상잔은 불과 3년 전쟁 (1950-1953) 이었지만 72년이 지난 현재까지 휴전상태인 것이지 전쟁이 끝이 난 것이 아니다. 이러다가 영국과 불란서가 100년 (1337-1435) 동안 싸웠던 <100년 전쟁>의 기록을 대한민국이 바꿔버릴 수도 있겠다.
링컨 대통령은 1864년 재출마하여 재임에 성공했다.
남부지역에서 연극 배우로 유명하면서 흑인 노예해방에 반대해 오던 존 읠크스 부스(John Wilkes Booth)는 노예를 해방시킴으로서 남부지역 농장에 큰 피해를 입히게 한 링컨 대통령을 납치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링컨대통령이 흑인노예들을 해방시킬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선거권도 줄 것이라는 발표를 듣고 나서는 납치에서 암살하겠다는 마음으로 계획을 바꾸었다. 부스(Booth) 는 미국 남북전쟁 때 남부군의 비밀요원으로 활동했었기에 대통령이나 중요 정치인들의 이동을 파악하고 있었다.
남부군이 항복을 선언한 6일 후, 링컨대통령은 포드 (Ford) 극장에서 희곡 “우리 미국인 사촌(Our American Cousin)“ 이라는 연극을 관람하고 있었다.
희곡이란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드라마이다. 즉 연극배우들이 극장이라는 무대공간에서 사람들을 모아 놓고 보여주는 말과 행동이 드라마이며 희곡인 것이다.
이 연극은 영국작가 톰 테일러 (Tom Taylor) 의 작품으로 “어수룩하고 촌스러워 보이지만 정직하고 순진한 미국인이 그의 조상이 대대로 가지고 있던 토지의 소유권을 요구하기 위해 영국으로 건너가 조상의 땅을 차지하고 있는 부유층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연극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가 링컨 대통령이 이 연극을 보던 중에 암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에리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이 연극을 보던 중에 존 윌스 부스(John Wilkes Booth) 의 총격을 받고 1865년 4월 14일 향년 56세라는 아까운 나이에 사망했다.
링컨 대통령 사망 이후 57년이 지난 1922년 5월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 에는 1915년부터 짓기 시작해서 1922년에 완공된 링컨 대통령 기념관 (Lincoln Memorial) 이 있다. 이 기념관 앞 너른 광장은 1930년대 이후부터 세계 인권이나 인종관계를 주장하는 단체들의 중요한 모임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기념관 내부에는 카라라(Carara) 백색 대리석으로 된 어마어마하게 큰 모습으로 링컨대통령이 앉아 있는 동상과 그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문 (Gettysburg Address) 이 새겨져 있다.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는 지상에서 멸망하지 않으리라”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는 내용이다.
1413호 22면, 2025년 6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