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여행 14일 (2019년 7.21~8.4) – (2)

황만섭

7월 22일, 저녁식사는 쇠 울타리로 막아져 호텔과 거기에 속한 부대시설로 한 동네를 이루고 있는 지중해변에 혹처럼 뻗어나간 지형에서도 상당히 높은 언덕에 자리한 이태리식당이었다.

호텔에 머물면서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호텔동네를 벗어나 시내로 나간다는 것은 거리도 멀고 복잡하다. 비록 호텔동네의 음식 값은 비쌌지만, 사람들은 분위기에 취해 식사비가 비싸고 싼지를 모른다. 혹 비싸다고 하더라도 식사비 문제로 따질 분위기는 더더욱 아니다. 속으로야 비싼 음식 값에 마음이 가슴이 쓰리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점잔을 빼야만 이 호텔에 머무를 자격이 된다. 사람 사는 세상은 참 요지경 속이다. 사실 이태리식당에서 먹는 생선과 빵 요리는 별로였지만, 다른 일행들은 분위기에 취해서 그러는지 허세를 부리는 건지 음식 맛이 아주 그만이라며 찬사가 요란하다. 나에게는 먹는 것이 상당히 엄청나게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다음은 테세우스의 신표(信標) 이야기다. 그리스 도시국가 중 하나였던 아테나의 왕 아이제우스는 모든 것이 풍족해 만족한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한 가지 걱정은 자식이 없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그는 델포이에 있는 아폴로 신전에 신탁(神託)을 받으려 가게 되었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신들이 인간의 팔자를 주관하고 있다고 믿었다. 신전의 여 사제는 신탁이 맞을지 틀릴지 몰라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마냥 두루뭉술한 대답을 하길 좋아했다. 신탁이란 오늘날의 점을 치는 것과 같았다. 그가 받은 신탁은 ‘통가죽부대의 발을 풀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 당시 그리스에서는 병 대신 술을 통가죽부대에 담아 사용했다. 그러니까 ‘술을 조심하라’는 점괘가 나온 것이다.

아이제우스 왕은 신탁을 받은 뒤, 귀가 도중에 트로이젠이라는 나라를 방문하게 되었고, 그 나라의 왕이 하도 술을 권해 마지못해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마침내 술에 취하게 되었고, 아침에 깨어보니 트로이젠 공주(아이트라)가 알몸으로 아이제우스 왕 옆에 누워 있는 게 아닌가, 공주의 알몸이야기만 나오지 공주와 어떻게 해서 잠자리가 시작되었는지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 이는 플루타르코스(플루터크) 영웅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아이제우스 왕은 떠나기 전, 방 앞에 있는 섬돌 밑에 칼 한 자루와 가죽신을 감추고 나서, 공주에게 “만약 아들이 태어나. 아버지를 찾거든 이 가죽신과 칼을 채워 나에게 보내시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후에 아들이 태어났고, 이름을 테세우스라고 불렀다. 테세우스가 열여섯 살이 되자, 당시의 풍습대로 아폴로 신전이 있는 델포이로 갔는데 신전문 앞에는 “너 자신을 알라”(Know theyself, 그리스어는 그노티 세아우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 아니고, 오래 전부터 신전 문지방에 쓰여 있었던 말이다.

자신을 향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그 답을 모색해야만 한 인간의 삶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의문을 제기하고 답을 모색하지 않으면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없고, 다만 조연에 불과한 허망한 인생을 살다가 떠난다는 가르침이다.

테세우스는 자신을 찾아 나섰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왜? 다른 사람은 아버지가 있는데 나에게는 아버지가 없는가? 집으로 돌아온 그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무거운 섬돌을 들어 올리게 하고, 그 아래에 감춰진 칼과 가죽신을 가리키면서 “이걸 갖추고 아테나에 있는 아이제우스 왕에게 가라. 그가 너의 아버지다”라고 알려주었다. 트로이젠에서 아테나로 가는 길은 육로가 가까웠지만 험하고 도둑떼들이 들끓었다. 어머니는 “안전한 바닷길을 이용하라”고 권했지만, “편한 길을 택하는 것은 아버지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이라며, 도둑떼들이 들끓는 육로를 택했다. 그 중에는 악명 높은 프로크루테스가 있었다. 이 도둑은 자기 집에 재워준다면서 나그네가 침대보다 길면 잘라서 죽이고, 짧으면 늘려서 죽이는 대단한 악질이었다. 그

때 나온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전해지면서 ‘프로크루테스’라는 말을 우리가 인용하고 있다. 침대에 맞추듯이 자기의 생각에 맞추든가,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횡포를 부리는 사람을 우린 프로크테우스라고 말한다. 그렇게 고대그리스신화에서 나오는 말들은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우리 생활 속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테세우스가 도둑떼를 물리치면서 아테나로 오고 있다는 소문은 테세우스가 아테나에 당도하기도 전에 이미 메데이아 왕비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왕비는 테세우스를 독살함으로써 자기가 낳은 왕자들을 보호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술에 독약을 넣고 테세우스를 기다렸다.

신하들과 잔칫상을 차려놓고 기다리던 왕과 왕비는 그가 도착하자 “트로이젠의 영웅이여! 피테우스 왕은 잘 계신가? 나도 얼마 전에 트로이젠에 갔었다네”라며 독약이 든 술잔을 권했다. 술잔을 받아 든 테세우스는 칼을 빼어 들고 자기가 먹을 만큼의 양고기를 잘라냈다. 그 칼을 본 왕은 자기가 16년 전에 섬돌 밑에 감추어 둔 칼이라는 것을 알아차렸고 칼과 가죽신을 번갈아 보면서 그가 자기 아들임을 확인했다.

왕은 소리쳤다. “잠깐 그 술잔을 버려라!” 가까스로 독살에서 벗어난 테세우스는 아슬아슬하게 아버지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미궁에서 미노타우스(괴물)를 때려죽인 영웅 테세우스다.

자연은 언제 봐도 아름답다. 높은 호텔방에서 바라다보는 멀고 높은 산, 가깝고 낮은 산들과 언덕, 높은 산 봉오리 쪽으론 앙상한 나무들까지도 자연은 언제나 편안하고 좋았다. 귀뚜라미 소리는 바람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음악처럼 감미롭다.

머물고 있는 호텔동네의 주위와 분위기를 살피기 위해 산책을 나섰다. 앞에서도 간단하게 언급한 대로 가느다랗게 육지와 연결되어 바다 쪽으로 혹같이 뻗어나간 척박한 땅덩어리다. 한 면은 그나마 나무들이 우거져 있고 다른 쪽은 바위와 돌뿐이다. 혹처럼 뻗어 나간 땅덩어리의 6분의 1은 항구로 연결되는 도로와 배들이 정박해 있는 항구가 차지하고 있었고, 나머지 땅들은 호텔에서 사들여 호텔마을로 만든 것이다.

호텔은 높고 튼튼한 쇠 울타리로 경계를 이루고 있었고, 그 쇠 울타리 안에는 고층건물의 호텔본관과 각종부대시설들, 큰 수영장을 가지고 있는 빌라 20채 정도, 작은 수영장이나 그냥 잔디와 꽃으로만 꾸며진 빌라 21채가 마을을 이룬다. 호텔동네는 꽃과 나무들이 적당히 꾸며져 있었고 각양각색의 도로와 샛길들이 흥미롭고 편리하다. 바닷가의 들쑥날쑥 맘대로 뻗어나간 지형에는 작은 모래사장 여러 개가 아기자기하게 만들어져 해수욕장으로 사용되면서 호텔손님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호텔동네 안에는 7개의 식당이 분위기와 거리를 감안해 적당히 떨어져 자리잡고 있었고, 호텔동네에서 일하는 사람이 자그마치 1000여명 넘을 정도라니 놀랄만한 규모다.

* 참조 : 그리스 로마 신화(이윤기), 그리스(손영삼),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사전, 나무위키 참조

2020년 3월 20일, 1163호 1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