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회] 해로(HeRo) 특별 연재 – 특별했던 제5회 치매예방의 날 행사

16/ 특별했던 제 5회 치매예방의 날 행사

2016년, 베를린 한인사회에서 화제를 모은 사건이 있었다. 베를린에 소재한 작은 돌봄단체의 행보였다. 특별한 행사를 진행하며, 노년시대 떠올리고 쉽지 않은 단어를 지상으로 끌어올리며 담론화를 시작한 것.

“난 아직 아닌데, 그래도 혹시 몰라!”

“언젠가 나도 그런 때가올지 몰라. 늘 깜박깜박해!”

“멀쩡하던 김씨도 그거 걸렸대”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행사장에 몰려든 이들은 파독 1세대 분들이었다. 그들은 이미 칠십의 고개를 넘기고 고령화의 최전선에서, 그리고 노환과 죽음 앞에서 서성거린 이들이었다.

독일 땅에서 투쟁 같은 젊은 시절을 보냈지만 노년에도 싸워야 할 대상이 있었다. 그것은 질병과 외로움이었다. 동포사회의 텃밭을 일구었던 파독 1세대의 현주소는, 곁에 있어 줄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는 것. 특히 암보다 무서운 병 ‘치매’는 노년의 그늘진 초상이었다. 설립 1년이 채 못 된 갓난아기 같았던 사단법인 <해로>의 야심찬 선포였다.

<해로>의 초기 설립 의도는 치매 어르신 돌봄이었다. 노년과 치매의 불가피한 연관성은 이국땅이라는 메커니즘 속에서 한인사회에 더 큰 위기감으로 다가왔다. 해로의 활동이 치매문제에서 시작되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도움의 가지는 확장되었다. 그럼에도 설립 밑그림이었던 치매는 중요한 거점지역과 같았다.

치매에 걸리면 제2외국어(예, 독일어)를 잊어버린다는 공공연한 의료계의 의견도 한 몫 했다. 원천적인 치매 치료는 어렵더라도 예방이나 환기 필요성은 시급했다. 창립 다음 해인 2016년부터 ‘치매예방의 날’을 지정해 해를 거르지 않고 추진했다. 그만큼 치매 문제는 노년이 된 기존 한인사회의 물음표였다.

재외동포재단의 지속사업 프로젝트를 통한 지원은 매년 포기하지 않게 하는 담금질이었다. 초창기 재정적 어려움 속에서 주효한 통로였고 버틸 힘이었다. 그렇게 물꼬를 튼 치매예방의 날이 올해로 5회째다.

사실 2020년은 코로나 여파로 사회 시스템이 각종 규율 속에 통제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행사의 꽃인 참여자들의 초대를 독려하는 것은 위험한 모험이고 도전이었다. 게다가 바이러스의 두터운 벽은 쉽게 깨지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 있었다. 그러기에 무리한 행사 진행은 어불성설이었다. 내부적인 회의를 거친 끝에, 결국 어르신들에게 꼭 필요한 건강 강좌를 10월 한 달간 매주 한 번씩 소모임으로 여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물론 온라인 세미나를 열 수도 있었지만, 디지털에 취약한 어르신들에겐 무리한 요구였다.

행사 참여인원은 협소한 공간을 감안, 6명 이하로 제한했다. 최소 1.5m 간격을 두고 마스크를 착용하며 입장 시 위생을 위한 손 소독은 필수였다. 참여자들은 평소에도 건강 강좌에 대한 바람을 표시했던 어르신 위주로 초청했다.

다행히 10월 첫 주 강좌는 비교적 공간이 넓은 관계로 50여 명이 참여했다. 재독 한인간호협회와 연계한 ‘한방 세미나’ 강좌였다. 한방치료사인 남차희 강사는 파독 간호사 출신이며, 독일에서 한의학 관련 다수의 자격증을 보유한 전문인이다. 나이든 어르신들을 위한 체감적이고 실제적인 자연 건강관리에 역점을 뒀다.

남 강사는, 독일의 자연요법사이자 성직자인 세바스티안 크나이프(Sebastian Kneipp)가 “자연이 가장 좋은 약국(Die Natur ist die Beste Apotheke)”이라고 한 말을 인용하며 자연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건강식품을 소개했다. 그녀는 평소 이른 아침에 일어나 해바라기 오일로 가글을 하고, 검정깨를 매일 두 숟가락씩 볶아먹는다고 했다. 솔깃하고 쉬운 건강요법이었다. 검정깨는 자연의 항생제이며 암 예방과 각종 영양소가 포함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참여 어르신들에게 직접 한방 뜸을 시연하며 무엇보다 건강의 기초는 정신에 있기에 “많이 사랑하고 내려놓으라”는 주문도 놓치지 않았다.

10월 21일 강좌는 사단법인 <해로> 공간에서 열렸다. 베를린에서 가정의학과 의원을 운영하는 최광렬 전문의가 초빙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발생하기 쉬운 노인성 질환인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 관상동맥, 협심증, 심근경색, 뇌졸증 등에 대한 증상 및 약품 설명 등 실제 병원 치료사례를 토대로 진행되었다.

특히 혈압약의 종류와 부작용 등에 대해서 실제 약을 처방받고 있는 어르신들의 질문을 받고 답변을 이어나가는 등 세미나 공간은 더욱 진지해졌다.

최 강사는 뇌졸증에 대해, “뇌가 졸도해 중풍이 왔다”는 뜻이며, 뇌혈류 이상으로 국소적인 신경학적 결손 증상이라고 언급했다. 특히 갑작스런 근육 저하와 한쪽의 마비나 저린 증상, 갑작스런 시력 장애 및 언어장애, 심한 두통, 급성 어지러움이나 안면 마비가 올 경우에 뇌졸증을 의심해야 하며 정밀 검사를 권유했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의학용어로 설렁설렁 듣던 정보가 최 강사를 통해 알기 쉽고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잠깐의 휴식시간에서도 참여한 어르신들의 질병 고충을 듣고 상담하는 시간을 갖는 등 열기는 쉬 가라앉지 않았다. 3시간 여의 강좌는 아쉬움을 남긴 채 다음을 기약했다.

올해의 치매예방의 날 행사는 치매에만 국한하지 않고, 더불어 노령시기에 나타날 수 있는 질병들을 종합적으로 진단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하루 행사로 지나칠 수 있었던 단편적 접근보다 오히려 더 풍성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기에 반응도 기대 이상이었다. 코로나로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한 해를 보내는 요즘, 이 행사는 이전보다 더 이웃 돌봄의 중요성을 체감하며 서로간 더 깊어진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박경란/ 사단법인 <해로> Alltagshilfe 자원봉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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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4호 12면, 2020년 11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