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준
3월 18일 토요일. 내가 무척 기다리고 있던 날이 드디어 돌아 왔다. 며칠 전부터 봄을 재촉하는 비가 바람까지 동반 찔끔 찔끔 내리더니 오늘은 햇빛을 볼 수 있고 기온까지 올라 축복을 받은 기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며칠 전부터 벼르고 벼르다 통 크게 마음 먹고 결심한 하늘과 땅으로 이어가는 천상의 하모니 하늘의 소리 공연을 관람하기로 정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망구(望九)의 나이에 무엇 때문에 이날을 그토록 기다렸을까? 답은 자유롭게 마음대로 외출을 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해 있던 나한테 외출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젊은 나이에 고국을 떠나 이역만리 타국 독일 땅에 정착. 상생보다는 원칙과 법치만이 통하는 냉정한 국가 오직 논리가 지배적인 사회에서 내가 정착할 자리를 잡기 위해 충분한 여가를 즐길 시간도 없이 항상 쫓기듯 바쁘게 젊은 날을 그렇게 살아 왔다.
이후 일손을 놓은 연금자가 되어 몸에 날개를 단 듯 홀가분하게 신바람이 났으나 그 또한 오랫동안 길지 못했다. 그 때 그 시절에는 이곳저곳에서 초대도 받고 갈 곳도 많았으나 막상 일 손을 놓고 자유로운 시간이 많았으나 찾아 갈 마땅한 곳도 없고 또한 주머니 사정도 넉넉지 못해 무료하게 보내는 날이 늘어만 갔다.
한국을 다녀 온 주변 친지들은 한국처럼 노인을 위한 복지시설과 정책이 훌륭한 나라가 없다 하며 노후를 한국에서 보내고 싶어 돌아 갈 준비를 계획하고 있다며 동행을 부추겼으나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을 했다.
그동안 이 땅에 정착하기 위해 얼마나 노심초사 눈꼴사나운 일을 겪으며 살아오다 이제 안정을 찾았는데 하는 오기가 발동 이 땅에 뼈를 묻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내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남아도는 시간을 활용하기로 작심하고 인터넷 신문 해외기자로 활동 이곳저곳 행사 취재를 위해 열을 올리며 나름대로 만족을 하며 살아 왔다.
그런데 덜컥 문제가 터졌다. 내 몸이 아닌 다른 손과 발이 되어 수발을 하며 시간에 맞춰 제 시간에 약을 복용케하고 병원과 집을 오락가락하는 간병인 신세가 되고 말았다. 발목이 잡히고 다른 생각을 할 여가도 없었다. 이국 생활의 외로움을 달래며 정담을 나누던 각종 행사와 모임마저 설상가상 코로나 역병으로 인해 오랫동안 중단 되어 주변 친지들과 교감도 없이 지내 왔다.
이후 안심 할 수 없으나 규제가 풀리고 정상을 되찾은 듯 각종 행사와 모임이 간혹 가믐에 콩잎 돋듯 열려 그 자리에 초대를 받았으나 자유롭지 못한 내 사정에 그림에 떡을 보듯 지내왔다.
그러나 하늘과 땅을 이어준다는 천상의 하모니 하늘의 소리 공연은 만사를 제쳐 놓고 꼭 관람을 하고픈 생각이 간절했다. 이유는 잉꼬부부로 정평이 나 있는 분이 작년에 불행한 일을 당하고 혼자 지내는 동안 외로움과 고독에 혹시 우울증이라도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노파심에서 간혹 안부를 물을 때 마다 분위기를 바꿔 바삐 살다 보니 모든 시름을 잊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요즈음 하늘의 소리 합창단에서 소프라노로 활약하고 있다하며 3월18일 공연에 초대까지 했다. 그분의 평소 성품으로 보아 도저히 믿기지 않아 직접 내 눈으로 그분의 변한 모습과 공연을 보고 싶은 마음에서 어려운 외출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때 마침 근처에 살고 계시는 은퇴 목사 사모한테 자초지종 사정을 말하고 내 대신 손과 발이 되어 달라고 간곡히 부탁 허락을 받고 천상의 하모니 하늘의 소리 음악회가 열리는 곳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프랑크푸르트의 Mainzer Land-straße 획스트 초입에서 우측 길로 들어서며 라인마인 한인 교회가 있다. 근처 주말농장이 있는 소로에 자리 잡은 라인마인 한인교회 앞에 당도하자 요즈음 지도자를 잘 못 선택한 바람에 수난을 겪고 있는 단발머리 위안부 소녀상이 건재한 모습으로 나를 반겼다.
더러운 돈은 한 푼도 받을 수 없다고 절규하던 양금덕 할머니가 문득 떠올라 금새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가까스로 참으며 입구를 향해 계단에 발을 올렸다.
16시. 라인마인 교회에 들어 가니 부산하게 공연 준비를 하고 있는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띠었다. 대단했다.
옛날에는 인생칠십 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고 70까지 생명을 유지하는 사람이 드물어 이렇게 말을 했는데 고희(古稀)를 훌쩍 넘긴 분이 주류를 이루고 그중 몇 분은 팔순의 중턱에 망구(望九.. 90의 나이를 바라 보는 팔순을 넘은 사람을 칭하는 말인데 할망구라고 하면은 비속어로 생각 화를 내니 망구라고 부른다.)의 나이이다.
그런데도 미색이 출중하고 자세가 한 치도 흐트러지지 않은 생기가 넘치는 건강한 모습에 부러움과 심술이 생겼다. 같은 연령층인데도 어느 사람은 도움 없이는 바로 발걸음을 뗄 수 없는 기저질환자라 생각하니 내가 있는 자리가 편치 못했다.
드디어 기다리던 공연이 시작되었다. 라인마인한인교회 강민영 담임목사의 축복 기도에 이어 1부순서 합창단의 첫 선곡은 “내 평생에 가는 길”이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니 늘 잔잔한 강 같지 않아도…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려운 길이 아니여도… 나의 영혼은 늘 편안 해….>
너무 고달픈 삶을 살고 있는 내 지친 영혼에 시원한 생수를 한 모금 마시게 한 듯 전신에 전율을 느끼며 마음과 가슴 속 깊게 울리는 천상의 하모니 하늘의 소리 찬송가에 또다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뜨거운 눈물이 양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이런 자리에 제아무리 거동이 불편해도 내 등에 업혀 서라도 이 자리에 참석 같이 지치고 힘든 심신을 치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모른 척 나 혼자 참석한 나의 이지적인 결정을 참회하는 눈물이 아닌가 싶다.
“찬송은 하늘에서 받은 최고의 선물이다”라고 말한 니체의 명언을 나는 왜 미처 생각하지 못 했을까..
이어 소프라노, 변영희, 박승자, 이현숙, 임소희 네 분의 “주님과 같이 내 마음을 만지는 분은 없네”와 임신애, 송영애, 두 분 각각 독창에 이어 오늘 하늘의 소리 공연의 하이라이트 <돌이킴의 축복 (누가 복음15장11-32)> 돌아 온 탕자를 주제로 한 무언성극의 막이 열렸다.
출연진은 김정자, 박승자, 하미경, 김향선, 임완자, 임신애, 이현숙, 김태련, 김승숙, 최인영, 조순자, 노순자, 고순자, 박경희, 임소희 등 열다섯 분이 성경 누가복음 15장에 등장하는 인물, 그 시대의 유대인 복장으로 분장 현란한 율동의 몸 찬양을 Hisaishi Joe 여로, 몽중비행(바람이 분다)과 M.J.Ju- Love Never Fails(제이어스) 등 음악이 은은히 흐르는 가운데 선보였다.
아마추어인데도 프로를 뺨 칠만큼 능숙한 연기의 몸 동작 찬양은 오랫동안 많은 연습을 한 탓인지 성경 속의 돌아 온 탕자를 실감나게 연기한 몸동작 찬양은 한 순간 많은 관중을 매료시켰다.
아쉽게 느낀 것은 그 시대의 시대적 배경 세트가 아무것도 없었고 분위기에 적합한 조명이 조화를 이뤘으면 하는 아쉬움이 컸다. 그러나 어느 합창단에서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한 무언의 성극 몸동작 찬양을 계획 연출한 이은경 감독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하늘과 땅으로 이어지는 천상의 하모니 하늘의 소리 합창단을 창단 오늘에 이르기 까지 온 정열을 쏟은 열정의 지휘자 이은주 전도사를 이 자리에 참석한 관람객은 잊지 말아야 할것 같다.
아무튼 오래간만에 이러한 분위기에 심취한 탓일까.
우리 생애에 음악이 없었다면 얼마나 인생이 무의미하고 삭막 했을까. <밥은 굶어도 음악 없이는 살 수 없다.>던 어느 분의 말이 떠올랐다.
외롭고 불행한 사람에게 위안과 용기를 주고, 절망과 실의에 빠진 혼에 힘과 빛을 던져주는 천상의 하모니 하늘과 땅을 울리는 하늘의 소리가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같이 공감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늘 공연을 보고 감동도 받았지만 많은 교훈을 얻었다.
내 삶의 경험을 통해 꼭 말하고 싶은 것은 나이는 출생신고에 불과하고 자신의 취미 생활과 활동하는 노력에 의해 젊음을 유지하며 세월이 반대로 흘러가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을 오늘 내가 받은 교훈이고 지론이다.
오늘 출연한 분을 소개한다.
누가 고희이며 어느 분이 망구인가를 선별 박수 갈채를 보내 주시기 바란다.
Sop: 김정자, 임소희, 조순자, 김태련, 김형례, 고영희, 이현숙, 하미경, 이은경, 김향선, 변영희, 임신애, 최인영, 차응남, 이윤정, 박승자.
Alt. 류순일, 박 파울리나, 김정순, 김승숙, 노순자, 최군자
Ober Stm: 고순자, 임완자, 박경희, 송영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