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작품속의 언어 – (4)

문학작품속의 사건과 인물들은 세계공통어가 되어 일상에서 다시 되살아난다

황만섭

작년(2019) 한국휴가 때, 용산역에서 목포행 KTX를 기다리면서 시간이 좀 있어 역안에 있는 서점에 들려 이책저책을 구경하던 중 눈에 들어오는 책이 유시민이 쓴 ‘어떻게 살 것인가’였다. 난 주저 없이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책내용은 차차 늙어가는 나에게 인생공부를 시켜주는 유익한 내용들로 가득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한 번 더 읽고 싶은 대목들이 많아 손닿는 가까운 곳에 놓고 틈나는 대로 다시 읽기를 시작했다. 다 읽은 책을 또 읽겠다고 작정한 것은 드문 일이다. 아주 먼 옛날에 삼국지를 몇 번인가를 그렇게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유시민의 글을 좋아하는 나는 상당히 많은 그의 책을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쓴 ‘어떻게 살 것인가’ 책 중에서 특히 삶과 주검을 짧고, 간결한 문장으로 쓴 대목이 유별나게 띄어 소개한다.

부모 몸에서 염색체의 감수분열이 일어나고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고 수정란 세포가 분열하여 100조 개의 세포가 됨으로써 세상에 없던 새 생명이 태어난다. 고유한 유전자 조합을 가진 그 아기가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자기만의 정체성을 형성하며 어른이 되어 다시 아기를 낳아 기르고, 그런 다음 늙고 병들어 죽는다. (이렇게 인간사가 반복하면서 지속된다는 것을 유시민은 쉽고 간결하게 설명한다).

자살을 용기로만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삶도 용기만 있다고 해서 마냥 잘 살아지는 것이 아니다. 삶은 습관이고 죽음은 패배일 뿐이다. 자살은 인간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철학적 실존적 선택이다. 극복할 수 있는 시련과 고통 스트레스는 해롭지 않다. 동물은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하면 최후까지 버티다 굶어 죽는다. 그러나 삶은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조차 지킬 수 없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다음은 톨스토이 이야기다. 안나 카레니나, 전쟁과 평화, 부활은 톨스토이의 3대 명작에 속한다. 이 3대 명작은 그의 문학세계 전반을 놓고 보아도 그가 보여주는 예술세계의 정점이라고 할만하다. 안나 카레니나는 전쟁과 평화에서 보여준 러시아 사실주의의 특징이 고스란히 녹아 있으며, 부활에서 보여주는 계몽적이고 종교적이며 사회참여적인 색채가 뚜렷하다.

작품은 뛰어난 구성력과 사실적이면서도 미적인 묘사와 문체가 책 곳곳에서 반짝인다. 톨스토이는 이 작품을 완성할 무렵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에 대한 무상함으로 심한 정신적인 갈등을 겪고 있었다. 그의 작품 곳곳에서 당시 러시아의 사회, 문화, 정치 등 전반에 걸쳐 반영하고 있으며 시대정신과 인간의 근원적인 한계와 구원에 관한 그의 깊은 철학과 고뇌가 담겨있다.

톨스토이보다 7살이 많은 도스토옙스키가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너무 흥분한 나머지 거리를 뛰어다니며 “톨스토이는 예술의 신이다”라고 외쳤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 소설은 실제 인생 그 자체라는 평가를 받는 러시아 사실주의의 완성을 보여준다.

톨스토이에 관한 모든 것들은 고려대 석영중 교수의 강의가 특별하게 빛난다. 톨스토이는 “어떻게 후회 없이 살 것인가?”를 고민했고, 유시민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을 썼다.

톨스토이가 쓴 소설 ‘안나 카레니나’ 의 이야기는 미모와 재능을 겸비한 안나 카레니나라는 여인이 상트페데스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기차를 타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안나 카레니나’는 고위관료의 작은아들과 결혼해 아들을 낳고 부러울 것이 없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주부다. 안나는 모스크바에 사는 오빠가 가정부와 불륜을 저질러, 그 문제로 가정불화가 심각하다는 소식을 듣고, 오빠와 올케의 싸움을 말리기 위해 모스크바로 가는 기차를 탔고, 그녀의 운명은 기차 안에서 젊고 잘 생긴 브론스키 장교를 만나게 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두 사람은 첫눈에 서로 반하게 되지만, 오빠 집에서 일어난 불화가 어느 정도 잠잠해지자, 브론스키를 피해 상트페데스부르크로 돌아온다. 브론스키는 상트페데스부르크까지 그녀를 찾아왔고 몇 번의 밀회 끝에 안나는 가정과 명예를 버리고 브론스키를 따라 모스크바로 떠난다.

안나는 불륜 끝에 임신을 했고, 그녀는 남편을 찾아와 불륜을 고백하고 이혼을 요구하지만, 남편은 이혼을 거부하고 같이 살 것을 요청한다. 산월이 되어 출산 중에 사경을 헤매는 안나의 고통을 보면서 측은함을 느낀 남편은 아내를 용서하지만, 안나는 끝내 남편을 뒤로하고 브론스키를 따라 다시 모스크바로 떠난다.

​안나는 브론스키와 함께 유럽여행을 마치고 모스크바로 돌아오지만, 브론스키 주변의 사교계사람들은 멸시와 조롱으로 그녀를 왕따시킨다. 그런 와중에서도 안나는 브론스키에게 의지하며 집착했지만, 브론스키는 차갑고 매정하게 안나를 뿌리치고 싫어하며 배척한다. 안나는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모든 것이 소름 끼치게 된다면, 촛불을 꺼버려도 되지 않을까?”라는 슬픔에 잠겼고, 종국엔 눈이 멀고 신경쇠약에 병으로 고통 속에서 시달리다가 브론스키를 처음 만났던 그 기차역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다는 슬픈 이야기다.

이 소설을 통해 안나 카레니나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인이 되었다. 안나는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인간의 모든 성과 속, 생과 사를 몸으로 보여준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로 문학사적으로 평가받는 여인이 되었다. 안나는 지금도 우리들의 삶속에 상처로 남아 끊임없이 아픔을 주고 있다.

도스토옙스키(1821-1881)는 톨스토이(1828-1910) 보다 7살이 많았고, 톨스토이 부인은 남편보다 41세가 적지만, 톨스토이가 82세(1910)로 죽자, 같은 해에 죽었고, 두 사람이 죽었던 그해에 일본은 경술국치를 통해 우리나라를 빼앗아 가는 만행을 저질렀다. 도스토옙스키는 ‘죄와 벌’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이 세상에 남긴 후 6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프랑켄슈타인’은 1818년에 영국에 사는 18살의’메리 셸리’가 쓴 소설이다. 빅토르라는 신비학도가 시체조각을 조합하여 생명력을 불어넣어 인간괴물을 만들었고, 이 괴물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는 무서운 이야기다. 그 후로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이름은 충동적이며 난폭한 인간괴물을 상징하는 말로 사용되었으며 최초의 프랑켄슈타인 영화는 토머스 에디슨이 만들었다(1910). 헐리우드에서는 프랑켄슈타인(1931), 프랑켄슈타인의 신부(1935), 프랑켄슈타인의 세계정복(1969) 등이 잇달아 제작되었다.

‘세일럼의 마녀들’은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의 매사추세츠 주의 마을 세일럼(댄버스)에서 1692년에 있었던 재판에 대한 이야기다. 200명에 가까운 마을사람들이 마녀로 고발되어, 총 25명이 죽임을 당한다는 이야기로 19명이 처형되고, 1명이 고문 중 압사했으며, 5명이 옥사한 사건이다. 무고한 사람들이 차례차례 고발되었고, 재판을 받는 과정은 집단심리가 폭주했던 이야기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보도연맹사건으로 인민재판을 통해 양민학살을 할 때 당시 어린 나도(황만섭, 5~6세) 마을사람들과 함께 동네 앞의 신작로길바닥으로 끌려 나갔다. 쏘아 총! 말 한마디면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는 순간이었다. 누군가의 긴 연설이 끝난 후, 어찌된 일인지 쏘아 총! 대신에 전원 귀가조치를 취했다. 황만섭은 그때 죽었던가, 고아가 될 아슬아슬한 찰나였다. 토끼가 용궁에 갔다 온 셈이다.

* 참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사전, 나무위키 참조

2020년 5월 8일, 1170호 2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