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연재] 해로 (Kultursensible Altenhilfe HeRo e.V.)

제12회/ 함께 맞는 비

우리 조상들은 묵은 해의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일들은 떨쳐버리고 다가오는 새해에 무탈하는 마음으로 설빔을 지어 입곤 했다. 어머니는 아이들의 때때옷을 만들기 위해 밤을 새워도 피곤하지 않았다. 옷에 대한 생각은 시대가 흘러도 여전히 설렘 가득이다. 하지만 재봉틀 앞에서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이제 기록의 산물이 된 지 오래다. 그럼에도 남기고 싶은 우리네 아련한 풍경일 것. 이렇듯 누군가를 위해 옷은 만든다는 것은 창조적 행위 이상의 풍성한 가치를 지닌다.

오랜만에 Y어르신이 거울 앞에 섰다. 구십을 훨씬 넘은 그에게서 세월의 흔적이 드러났다. 노환으로 청력기능을 잃은 지 오래다. 다리의 근육은 세월의 무게로 자꾸만 후들거렸다. 점점 무기력감에 빠져들어 미소는 동토처럼 얼어붙었다. 그런 그에게 뜻밖의 선물이 왔다. 정성이 담긴 포장 속에는 설빔 같은 옷이 들어 있었다. Y어르신의 입꼬리가 귀까지 걸쳐졌다. 옷은 마치 자로 잰 것처럼 몸에 안착되었다. 거울 앞에는 이미 유년의 그가 서 있었다. 그 옆에는 어린 시절, 무명옷을 기워서 입혀주던 어머니가 보였다. Y어르신의 웃음이 미더덕을 깨문 것처럼 쫙 터져나왔다. 오랜만의 미소였다.

최근 파독 1세대 어르신을 위해 선한 섬김을 실천한 이가 있다. 그녀는 코로나 바이러스 위기에 마스크를 직접 만들어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전달하고 있었다. 이어 사단법인 <해로>를 통해 한인 1세대를 위한 마스크를 만들었고, 더 나아가 베를린의 최고령 남녀 어르신에게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직접 만든 옷을 선물했다. 선행의 손길은 바로 독일 게르하르트 슈뢰더(Gerhard Schröder) 전 총리의 아내인 슈뢰더 김소연 여사다. 그녀는 한국과 독일의 경제 관련 협력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커리어 여성이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그녀가 보여준 디자인 감각과 재봉틀 솜씨는 독일과 한인사회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그녀는 재독 동포의 어려움을 고민하고, 아울러 전세계 디아스포라 한인들과 지속적인 소통을 하고 있다.

김 여사는 어떤 마음으로 1세대 한인 어르신의 옷을 만들게 되었는지 소회를 드러냈다.

“생각해보면 그분들은 어려운 시대에 태어나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에 헌신했지만 모든 앞선 세대가 그러하듯이, 그 발전의 과실까지 함께 공유하지는 못하셨어요. 그 분들도 다른 시대에 태어났다면 그 먼 이국 땅까지 돈을 벌기 위해 힘든 일들을 – 매일 위험을 무릅쓰고 지하 탄광에 들어가거나, 병원에서의 힘든 간호사 일들을 – 하지 않아도 되었을 거예요. 그 시절에는 자기 일을 선택할 수 있는 개인의 자유가 매우 제한적이었어요. 그런데 그것은 그분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누구도 시대를 선택해서 태어나는 것은 아니기에. 그런 생각을 하니, 그 분들의 헌신 덕분에 이후 세대가 더 많은 자유와 경제적 풍요를 누릴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후세대로서 앞선 세대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정성을 모은 것입니다”

또한 마스크를 만들면서 서울 구로공단 등에서 미싱 돌리던 여성들을 떠올렸다고 한다. 우리나라 6-70년대는 섬유산업이 수출을 견인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어린 소녀들은 집안의 생계와 어린 동생들의 학비를 위해 미싱공으로 밤낮없이 일했다. 경제건설의 밑바탕에는 이렇듯 어린 민초들의 희생이 숨어있음을 여러 매스컴이나 기록영화를 통해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당시엔 공장의 작업환경도 열악했을 것이고 산재보험 같은 사회보장제도도 없던 시절이었잖아요. 이후 세대는 체험하지 못한 열악한 노동환경이었을 거예요. 재봉을 하면서 그들이 했던 일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경험할 수 있었어요”

김소연 여사는 재봉을 하면서 시대사적 통찰까지 더듬었다. 당시 궁핍했던 시절, 미싱을 돌렸던 어린 여공의 마음까지 자연스레 헤아려졌다. 시대에 함몰되어 잊혀져가는 근현대사의 우물에서 숭고한 가치들을 퍼올리는 것은 꾸준히 인식하는 자의 힘 같았다. ‘미싱을 돌리는 행위 자체가 앞선 세대에게 빚진 마음을 스스로 위로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주어진 일상에 더욱 감사하게 된 계기를 준 것 같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퍼올린 가치들이 연대감의 통로로 이어져 사회 속에서 어떻게 나눠져야 할지 봉사의 새로운 담론을 만들었다.

그러고보니 재봉을 하면서 그가 말한 ‘초보가 가진 어눌함’은 단지 겸손함의 발로였다. 그녀가 만든 옷의 문양과 색깔은 남달랐다. 단순한 치기가 아닌, 한땀한땀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무엇보다 몸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이 입고 벗기에 편하려면 신축성이 좋아야 했고, 그러면서도 나이 드신 어르신의 옷이니 혼방이 아닌 순면 베이스의 원단을 찾았어요. 문양과 색깔과 사계절 입기에 적당하고, 실내복이나 야외복 모두 겸할 수 있는 원단으로 골랐어요. 한 마디로 편하고 언제 입어도 괜찮은 옷을 만들어드리고 싶었어요.”

김 여사는 슈뢰더 전 총리의 외조의 공도 놓치지 않았다.

“1세대 한인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남편이 한국과 한국인을 더 많이 이해하시는 계기가 되었고 마음으로 크게 지지하셨어요. 또 제가 만든 옷을 모델로 먼저 입어보고 착용의 피드백도 아끼지 않았지요”

그녀는 현재 사단법인 <해로>를 위해 함께 비를 맞아주는 우산이 되어주고 있다. Schirmherrin(후견인)으로 한인 1세대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겠다는 의미다. 그는 신영복의 글 중 ‘함께 맞는 비’를 들려주며 많은 말을 대신했다.

“함께 맞는 비–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함께 비를 맞지 않는 위로는 따뜻하지 않습니다. 위로는 위로를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가 위로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박경란/ 사단법인 <해로> Alltagshilfe 자원봉사팀장

후원문의/ 이메일: info@heroberlin.de, 홈페이지: www.heroberlin.de


2015년에 시작된 HeRo(해로)는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늙어가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코멘트에서 출발했다. 해답은 늘 사람이었다. 그야말로 이국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도움활동의 필요성으로 귀결되었다. <해로>의 입술로 연재를 시작하지만,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재독 동포들의 목소리를 그릇에 담으려 한다. 이 글이 고단한 삶의 여정을 걷는 이들에게 도움의 입구가 되길 바란다(필자 주)

1184호 12면, 2020년 8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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