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준 아동을 소개 합니다

장 프랑스아 밀레는 어릴 때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집은 그림공부를 하기에는 너무 가난하였기에 오전에는 아버지와 함께 농사일을 하고, 오후에서야 잠깐 그림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그는 도시로 나가 그림 공부를 하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가정형편이 그렇지 못했습니다.

밀레가 살던 노르망디의 그레비르 농촌은, 해가 서산으로 저물 때면, 너무나 아름다운 석양의 바다와, 들판을 함께 바라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밀레는 자연스럽게 전원화가의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결국, 그의 그림을 좋아하는 후원자의 도움으로 도회지에 나가 화가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의 사회 풍조는 전원 풍경화는 상품이 되지 않았기에 주위 사람들은 다른 그림을 그리라고 충고하였지만, 밀레는 오직, 줄곧 전원 풍경화만을 그렸습니다. 역시 그림은 팔리지 않았고, 살림은 언제나 궁핍했습니다.

1859년, <만종>을 그리던 당시, 일기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날씨는 추운데 땔나무는 없고, 아내는 곧 해산을 하는데……..> 그러나 그는 늘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언젠가는 저의 그림을 전 세계 사람들이 보면서, 하나님을 찬양할 것으로 믿습니다.>

만종을 그린 지 8년이 지난 후, 드디어 만국박람회에 출품한 밀레의 그림이 1등을 차지하였습니다. 프랑스 국민들은 무명화가였던 밀레를 외치며 환호와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밀레는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그린 그림으로 이젠 자식들을 굶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또한 저의 그림이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보여 진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멀리 예배당에서 저녁 종소리가 울려 퍼질 때, 밀레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일손을 멈추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장면, 아버지는 경건한 신앙으로 모자를 벗어들고 있었습니다. 밀레는 한 폭의 그림 속에, 저녁의 석양뿐 아니라, 아름다운 종소리, 그리고 부부의 사랑과 하나님께 감사하는 경건한 신앙까지를 담아내려 했던 것입니다. 밀레의 소망처럼 지금도 그의 그림 <만종>을 감상하는 자들은 그의 그림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약, 5개월 전에 프랑크푸르트의 미술 박물관 앞에 몇 주 동안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마침, 한국 사람처럼 보이는 두 청년이 서 있기에, 물었습니다. 그는 지금,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전시 중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가 평생 스승으로 여기며 존경했었던 사람이 바로 밀레였습니다. 밀레는 농민을 가장 소중한 직업으로 여겼고, 1948년에 발표한 <키질하는 사람>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는데, 키질하는 농민의 모습을 마치 영웅처럼 그려놓은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농민을 사랑하고, 소박한 삶을 동경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허기야, 어린 시절부터 농민들 속에서 농민과 함께 살아온 밀레에게는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속에 깊이 들어오셔서, 그의 심령을 소박함으로 채워주시고, 겸손함으로 어루만져주셨기에, 그의 그림에서는 언제나 소박한 정서와 농민들에게서만 품어져 나오는 힘을 엿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밀레의 만종, 이삭줍기, 키질하는 사람 등, 그의 그림 속에서 숭고함이 느껴져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이삭 줍는 여인> 속에서 이삭을 줍고 있는 3명의 여인들은 완전히 추수가 끝나버린 들판에서 혹시 남은 부스러기라도 얻을까 싶어서 이삭줍기를 하고 있는 가난한 여인들이었습니다.

이토록 밀레가 가난한 농민과 하층민들의 삶을 그린 것은, 흡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그 당시 가장 천대 받았었던 세리와 창기 등, 소외받던 사람들과 함께하셨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이렇게 서민들과 가난한 자들을 중심으로 그림을 그리는 밀레에게, <하층시민을 선동하는 사회주의 자> 라는 비난을 퍼붓는 무리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감히 이렇게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는 밀레와 같은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이 살아있기 때문이라고요!

<너희가 이 형제들 중,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한 일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 마태복음 25정40절B

오늘 소개드리는 강민준 아동은 강원도에 있는 양육시설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아동은 가정폭력으로 인하여 시설에 입소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폭력적인 행동을 많이 하고, 시설에 적응하기 매우 힘들어 했으나, 지금은 잘 적응하여 또래 친구들과도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동은 2020년 학년도 기준으로 중학교 3학년입니다. 친구들과도 잘 지내며,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아동은 운동을 좋아해 방과 후에도 열심히 축구도 하고, 특별히 풀로어 볼(하키와 비슷)에 강한 집착이 있으며, 장래에는 풀로어 볼 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동은 시설에서 진행하는 여러 가지 수업에 참석하고 있고, 가장 재미있을 때는 학교 체육시간이라고 합니다. 운동신경이 잘 발달되어 민첩하고 씩씩한 민준 아동이 교민 여러분의 격려와 사랑으로 장래에 대한민국의 일꾼으로 성장 하는 데에, 교민 여러분의 도움이 절대 필요합니다.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남북전쟁 시 버크셔군대에서 사령관이 지휘봉인 칼을 텐트에 두고 왔습니다. 이에 부하 조니 링이 다시 다리를 건너가서 칼을 가지고 다리를 건너오다가 적의 총탄에 맞아 피를 흘리면서도, 끝까지 칼을 가지고 대령 앞에서 쓰러졌습니다. 콘웰 대령은 죽어가는 부하를 보고,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니, 미안해> 조니는 신음하면서 <대령님 걱정 마십시오. 저는 죽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습니다. 저는 영원토록 그와 더불어 행복하게 살 것입니다.

그날 밤 콘웰 대령은 조니의 시체 옆에 꿇어앉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조니의 소원대로 목사가 되기로 맹세하였습니다. 그는 하루에 16시간씩 일하기로 다짐하고, 8시간은 조니의 몫으로, 그리고 8시간은 자신의 몫으로 헌신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의 설교의 주제는 언제나 <문제가 있는 곳에는 다이아몬드가 있다!>였습니다. 그는 6천 번이나 강사로 초청되었고, 그 받은 돈으로 탬풀 대학을 창설하였습니다. 한 소년의 예수님을 아는 진실한 믿음은 콘웰 대령을 감동시켰고, 수많은 청년들을 일깨우는 탬풀 대학으로 다시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존경하는 교민 여러분, 열리지 않는 인생의 무거운 문을 열 수 있는 진짜 열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떠한 난관도 뛰어 넘을 수 있는 당신의 진정한 힘이 될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박 해 철 선교사 드림

1184호 34면, 2020년 8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