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 해로 (Kultursensible Altenhilfe HeRo e.V.)
요사이 ‘재능 기부’라는 아름답고 훈훈한 활동을 많이 보게 된다. 기부나 봉사는 감사의 마음이 바탕에 깔려있다.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나 혼자 잘해서 얻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고 믿고, 오늘까지 나를 키워주고 오늘의 내가 있게 해준 사회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자신의 것을 이웃과 나누는 것이다.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섬기며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를 더욱 따뜻하게 해준다.
지난 5월 26일에는 ‘서울나눔 클라리넷앙상블’이 올해도 잊지 않고 독일 베를린을 방문해 파독 간호사 6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 연주회와 한인 어르신들을 위한 다양한 음악적 재능 기부활동을 펼쳤다. 이들은 3년 전, 광부 파독 60주년 때에도 베를린 돔에서 감사와 보은의 연주회를 했었다.
서울나눔 클라리넷앙상블은 임상종 단장을 중심으로, 지휘자 김문길, 악장 정진호와 함께 베를린의 비영리단체 사단법인 해로와 협력하여 파독 1세대 어르신들을 위한 감사의 음악 일정을 펼쳤는데, 여기에 베를린 선한목자교회 성악가 청년들이 재능 기부로 함께했고, 해로 노래교실 어르신들이 특별 합동 연주로 동참하였다.
특별히 이 연주회는 “Tröstet mein Volk! 내 백성을 위로하라” 주제로, 파독 간호사 독일 도착 60주년을 기념하며, 지난 60년 동안 독일 사회와 한인 공동체 안에서 헌신해 온 파독 간호사들의 삶을 기억하고 감사하기 위해 준비되었다. 전쟁의 상처를 기억하고 회복과 평화의 메시지를 함께 품고 있는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라는 역사적인 장소에서 울려 퍼진 클라리넷 선율은 낯선 땅 독일에서 청춘을 바쳐 일했던 파독 간호사들의 삶과 수고, 외로움과 인내, 그리고 오늘까지 이어진 신앙과 감사의 시간을 기억하며 마음에 되새기게 하였다.

임상종 단장은 프로그램 순서지의 인사말을 통해 “먼 타국에서 헌신과 책임으로 한국의 이름을 지켜내신 파독 간호사들의 삶은 단순한 노동의 역사가 아니라, 희생과 사랑, 그리고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의 이야기”라고 하였고, 이번 연주회가 “그분들의 삶의 여정을 음악으로 되새기고, 독일과의 깊은 인연, 그리고 지금까지의 모든 여정을 이끌어 오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오늘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전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라고 밝혔다.
이날 연주회는 단순한 공연을 넘어, 기억과 감사, 위로와 격려, 삶과 신앙의 의미를 함께 나누는 시간이었다. 파독 간호사와 가족들, 임상범 대사를 비롯한 베를린 한인사회 교민들, 지역 주민들이 함께 자리했으며, 참석자들은 음악을 통해 지난 세월의 수고를 기억하고 서로를 격려했다.
이날 연주회의 하이라이트는 클라리넷 악기의 멋진 반짝거림과 어우러진 여러 아름다운 색의 한복을 입고 등장한 파독 간호사 어르신들의 무대였다. ‘걱정말아요 그대’와 ‘만남’을 젊은 성악가들의 아름다운 음색과 어르신들의 긴 세월의 연륜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들으며 눈시울을 붉히는 분들도 있을 정도로 모두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지나간 것은 지나 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함께 노래합시다. 후회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라는 노래 가사처럼 후회 없이 살아온 60년의 세월을 돌아보며 앞으로 남은 시간을 새로운 꿈을 가지고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는 시간이 되었다. ‘아리랑 판타지’와 ‘애국가’를 부를 때에는 청중들 모두가 독일 국기와 태극기를 흔들며 모두 하나가 되어 노래했고, 자연스럽게 나라 사랑과 한국인의 자긍심이 가득 피어나는 무대가 되었다.
서울나눔 클라리넷앙상블은 대형 연주회만 한 것이 아니라, 사단법인 해로가 돌보고 있는 고령의 한인 어르신들과 치매 및 인지 저하로 일상적인 문화생활 접근이 어려운 파독 1세대 어르신들을 찾아가 특별 연주도 하였다. 연주자들은 어르신들이 머무는 공간으로 가까이 다가가 익숙한 선율과 따뜻한 음색으로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일부 어르신들은 치매가 진행되어 말로는 충분히 표현하지 못했지만, 음악이 시작되자 눈빛과 표정, 손짓으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익숙한 노래가 나올 때는 따라 부르거나 박자를 맞추는 모습도 보였다. 이 모습은 음악이 단순한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기억과 정서를 깨우고 사람과 사람을 다시 연결하는 힘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서울나눔 클라리넷앙상블은 베를린 간호요원회 문화 잔치에서도 연주를 선보였다. 베를린 간호요원회는 파독 간호사들의 역사와 공동체성을 이어온 중요한 모임으로, 이번 문화 잔치는 세대를 넘어 서로의 삶을 격려하고 기억하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앙상블의 연주는 행사에 품격과 따뜻함을 더했으며, 참석자들은 음악을 통해 지난 세월을 돌아보고 서로에게 감사와 위로를 전했다. 파독 1세대 어르신들에게 음악은 고향, 청춘, 신앙, 가족, 이주와 노동의 시간을 함께 품고 있는 깊은 기억의 언어임을 알게 해주었다.
해로와 함께 이번 음악회 일정을 함께 준비한 서울나눔 클라리넷앙상블의 방문은 음악을 통해 “파독 1세대 어르신들이 자신의 삶을 기억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존엄하게 돌봄을 받아야 할 존재임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라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기억하는 일은 돌보는 일’이며, ‘음악은 그 기억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가장 부드러운 언어’임을 보여주는 연주 일정이었다. 은혜는 돌에 새기라고 하였다. 은혜를 잊지않고 멀리서 찾아와 음악으로 감사를 전한 클라리넷 앙상블의 진한 감동의 여운은 오래오래 어르신들의 마음에 남아 있을 것이다.
“너희가 광야를 지나온 사십 년 동안,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를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기억하여라.”(신명기 8:2)
박희명 선교사 (호스피스 Seelsorger)
1462호 16면, 2026년 6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