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들과 함께한 한국문화탐방 (3)

최 완
21세기 한민족문화포럼

대표

1016, 안동하회마을 관광

안동호텔에서 우리의 버스를 타고 약 30분 후에 하회마을에 도착했다. UNESCO에 등재되어 있는 약 600년 된 조선시대 양반마을이었던 안동하회마을을 둘러 본 다음에 안동하회탈춤을 관람하기 위하여 셔틀버스를 타고 마을 외곽에 있는 공연장으로 갔다.

안동 하회마을에서의 탈춤 공연

별신굿 탈놀이(하회탈춤)는 국가무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마을의 안녕과 풍농(豊農)을 기원하기 위하여 마을 굿의 일환으로 연희(演戱)되었었다.

이 공연은, 우리 독일인일행들에게 한국전통문화의 한 시대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 것 같았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각 장르의 탈춤의미를 되새기는 질문을 해오기도 했었다. 탈춤관람을 마치고 다음 일정인 설악산에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숙박지인 울진으로 출발하였다.

1017, 설악산 관광

울진에서 설악산까지는 약 120km 거리다. 여유 있는 시간에 도착한 우리는 신흥사일주문(一柱門)으로 들어가서 입장권을 샀다. 입구에서부터 펼쳐지는 아름다운 단풍과 멀리 올려다 보이는 바위산의 기묘한 만물상들이 우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에 올라갔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또 걸어서 올라가니 약 15분 후에 산 정상인 권금성에 도착하게 되었다. 와! 온갖 형상으로 조각된 듯한 바위들이 빨간 단풍나무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며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뾰족뾰족한 바위들이 줄을 서며 춤을 추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우리는 여유 있게 구경을 하고 15시 30분에 서울로 출발하였다. 서울까지는 약 200km 거리다.

고속도로중간지점인 강원도 홍천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가졌다. 휴게소에는 역시 먹거리, 동해 산 건어물 등, 구경거리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 색다르게 눈에 뜨이는 것이 있었다. 무인안내소에 표시 된 다음과 같은 문구들이었다.

무료사용안내: 컴퓨터, 팩스, 프린터, 복사 무료사용(안내소 내), 구급약품(식당계산대), 일회용 아기 기저귀(수유실), 경조사봉투(안내소 비취), 휴대전화충전기(식당계산대), 휴대폰 보조배터리(식당계산대), 메모지, 필기도구(안내소 비취) / 휠체어, 유모차, 지팡이 무료대여 등을 안내하고 있었다.

여행객들을 위한 이 같은 세심한 배려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독일친구들은 입이 딱 벌어졌다. Herr S.는 “독일이 배울 것이 많다”며 혼자 중얼거렸다. 나는 이 같은 대한민국의 국민 편의시설에 스스로 놀랐으며 자랑스러웠다.

서울에서 문화재 탐방 45

서울에는 조선역사의 문화유적과 문화재가 집중되어 있어서 서울에서 4박 5일을 하게 되며 우리나라 남북분단의 아픔을 기억하게 하는 임진각까지도 둘러보게 되었다.

서울은 궁궐도시라고 한다. 5개 궁궐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조선의 통치정신을 말해 주는 종묘와 한양도성이 있다. 5대 궁궐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이다. 이 중에 경희궁은 아직 복원이 되지 않고 있다.

1018, 창덕궁 탐방으로부터 익선동 한옥마을과 인사동 탐방

서울에서는 교통수단으로 전철을 이용했다. 대중교통문화를 체험하는 것 또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창덕궁을 가기 위하여 압구정동에서 3번선 전철을 타야 했었다. 독일인들은 서울에서 처음 타는 전철이기 때문에 일행들에게 승차권을 사는 방법과 출입하는 방법, 갈아타는 방법 등을 설명해가며 압구정 역에서 3번 선을 타고 안국 역에 내렸다.

안국 역에서 창덕궁까지는 걸어서 약 10분 거리였다. 창덕궁 앞에 다다르니, 아름다운 돈화문 처마가 마치 하늘을 나르던 학이 날개를 추스르며 사뿐히 내려앉으려는 찰라 순간의 우아한 모습으로 우리들 시야에 들어왔다.

돈화문(敦化門,보물 제383호)은 창덕궁의 정문이며 태종 12년(1412년)에 우진각 지붕의 중층으로 지어진 목조건물이며 창덕궁 정문이다.

창덕궁(昌德宮,사적 제122호)은 조선왕조 제 3대 태종 5년(1405년)에 정전(正殿)인 경복궁의 이궁(離宮)으로 지어졌다. 창건 당시에는 정전인 인정전, 편전인 선정전, 침전인 희정당, 대조전 등, 중요 전각들이 완성 되었다. 그리고 조선말기 조선왕가의 비운이 스며 있는 낙선제가 있다.

창덕궁은 주변 자연과 자연지형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조화롭게 건축했기 때문에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운 궁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7년에 UNESCO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자연친화적이고 전형적인 한국궁궐정원인 창덕궁후원을 돌아보았다. 창덕궁후원은 태종 때 조성되었으며 왕과 왕족들이 휴식을 취하던 곳이다. 후원 에 있는 연못 부용지 연못에 걸터앉은 부용정(보물1763호)과 주합루(보불1769호)가 돋보였다. 주합루 안에는 왕실도서관인 규장각이 있다. 주합루 출입문인 어수문이 작지만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주합루 일대는 정조의 개혁정치와 문예부흥의 산실로서 정약용과 박제가, 유득공 등이 활동했던 공간이었다. 정조(1776-1800년)때 과거시험장이었던 영화당이 있다. 가을 단풍이 절정을 이루며 정자들과 어우러진 창덕궁후원의 자연경관은 절묘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독일 친구들은, “세계 여러 궁전을 돌아보았지만 이처럼 자연을 존중하며, 자연을 있는 그대로를 살리며 아름답게 보전된 궁정정원은 처음 본다”고 하며. “fantastisch!”를 연발했다.

창덕궁을 나와서 익선동 한옥마을도 둘러보았다. 익선동 한옥마을은 조선말기인 150여 년 전부터 조성된 서민동네였다. 다닥다닥 붙어있으며 곧 찌그러질 것 같은 작은 한옥들을 리모델링하여 상가로 조성하였다.

아주 좁은 골목의 한옥공간에 카페, 레스토랑, 꽃집을 겸한 카페, 파스타 집, 와인 레스토랑, 비어 집, 예술작품 갤러리, 액세서리 가게 등을 다양한 모습으로 설계하며 조성된 골목들이 마치 물 없는 베네치아 거리와 같았다.

서울 인사동 거리

이 곳을 떠나서 잠시 후에 인사동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인사동은 일제말기부터 골동품상가가 형성되기 시작하며 골동품, 고서화, 고서예, 공예품, 골동품장신구 등 온갖 문화유물들이 판매되며 노상박물관으로 알려졌었다. 지금은 이와 함께 관광기념품점, 한식당, 전통 찻집 등이 골목마다 즐비해서 구경거리가 더 많아졌다.

인사동을 돌아보고 민속국악창립 40주년 기념공연을 관람하기 위하여 서초동에 있는 국립국악원을 향하여 전철로 이동하였다. 공연내용은 판소리와 민요였다.

판소리는 일종의 1인오페라라고 할 수 있다. 창을 하는 한 사람이 노래를 하며 몸짓과 표정으로 가사에 담긴 이야기를 실감 있게 풀어가며 관중에게 그 의미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실내공연이 끝난 다음에는 실외에서 ‘남사당패 놀이’ 공연이 있었다. 남사당패 놀이는 농악중심의 한국민속풍물놀이로서 UNESCO 무형문화재에 등재되어 있다. 상모돌리기, 열두 발 돌리기 등 다양한 묘기가 관람객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갔었다.

공연이 끝난 후에 음악가인 Herr S. 는 나에게, 판 소리음악에는 도대체 음표가 있는 것인가? 하고 물었다. 음의 흐름에서 박자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고 하며 말이다. 나는 이에, 서양음악은 맥박을 기준으로 음표를 정하지만 한국고전음악은 호흡에 기준한 것으로, 박자 변수가 다르며, 또한 노래 하는 사람의 장르의 감정에 따라서 변음이 자유로울 수 있다고 한다고 말해 주었다

1019, 임진각 탐방

이날은 우리나라 분단의 아픔을 독일친구들에게 보여 주는 날이었다. 압구정동에서 DMZ 임진각까지는 약 70 Km 거리다.

임진각전망대: 임진각 지역은 6.25전쟁의 비통함이 서려 있는 곳이다. 임진각은 1972년 북한실향민을 위해 세워졌으며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이루어진 전망대다. 임진각설치 물로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철길 중단지점), 북한실향민을 위한 망배단, 미얀마 아웅산 순국외교사절 위령탑, 자유의 다리, 자유의 종, 미군참전용사 기념비, 망향의 노래 비 등이 있으며, 넓은 잔디로 조성 된 언덕바지에는 평화누리공원이 있다.

임진각주변을 둘러보며 독일인들과 우리의 아픔을 함께 나누며 비통함을 가슴에 안고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에 도착한 후에는 우리가 대절한 버스와 작별을 하고 종로 4가에 있는 종묘로 들어갔다.

종묘(宗廟,국보 제227호)는 조선왕조의 역대 제왕과 왕비들이 잠든 혼(魂-신위神位)을 모시며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유교정신을 통치철학으로 삼았던 조선에 종묘의 존재는 국가정신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종묘에는 정전과 영령전이있다.

우리는 정전(正殿)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신향로(神香路-영혼이 들어가는 길)를 밟지 않으려고 조심해서 걸어가며 동문으로 해서 정전으로 들어갔다. 목조로 지어진 나지막한 기와집이 109미터 길이의 한 지붕으로 장대하게 뻗어있다. 이 장엄한 정전은 위엄과 무게가 무한히 느껴졌다.

그리고 동서로 117미터, 남북으로 80미터의 담장 안에 펼쳐진 월대는 잘 다듬어지지 않은 짙은 회색의 박석으로 울퉁불퉁하게 깔려있다. 방대한 광장에는 아무 것도 없이 정적이 감돌며 휑- 하니 무(無)이다.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았지만 무엇인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무(無)였지만 장엄함을 느꼈다.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종묘를 둘러보고 광장시장으로 이동했다.

광장시장은 전통재래시장이며 먹거리시장으로 잘 알려져 있어서 관광객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시장중심부에는 야외식당이 백화점처럼 줄을 지어 모여 있어서 구경거리도 되었지만 다양한 음식을 고루고루 맛 볼 수 있어서 식도락 하기에도 재미가 쏠쏠한 곳이었다.

광장시장에서 나와서 서울의 명물이 된 청계천으로 내려갔다. 서울 시내를 관통하고 있는 청개천은 맑은 시냇물이 흐르며 물고기들이 물줄기를 거슬러 치켜 올라가고 있었다. 거기에다 주변에 여러 나뭇가지들을 심어 놓아서 생동감 있는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사랑 받고 있었다.

청계천을 산책하게 하는 것은, 이미 지쳐 있는 우리일행들에게 휴식을 갖게 하며 아울러 삼일로와 광교 사이 구간 벽에 도자벽화로 조성되어 있는 *‘정조대왕능행반차도’를 보이기 위해서였다.

‘정조대왕능행반차도’는 1795년 윤2월에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아버지 영조에 의하여 죽임을 당함)의 회갑을 맞아 정조가 어머니 혜경 궁 홍씨를 모시고 수원화성과 현릉원(사도세자능)을 다녀왔던 행차그림을, 길이 186m, 높이 2.4m를 도자기로 조성한 왕의 행차행렬이었다. 세계제일 긴 모자이크화다.

1020일 한국교회 예배, 경복궁과 국립민속박물관 탐방

이날은 주일이라 한국전통교회에서 먼저 예배를 드리기로 하였다. 그 교회는 초동교회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중의 하나인 기독교장로회교단교회다.

예배를 마친 후에 경복궁으로 갔다. 경복궁 홍례문 앞 광장에서 2시 정각이 되니까 큰 북이 둥둥 울리며 수문장 들이 악장들의 연주를 앞세우며 등장했다. 대원들은 한 백 여명은 되는 것 같았으며, 붉은 제복으로 차려 입은 수문장들이 방패와 쇠 창, 삼지창 등을 들고 엄숙한 표정들을 짓고 있어서 든든하게 보였다. 수문장교대식을 보고 난 후에 우리는 경복궁탐방을 시작했었다. 경복궁(景福宮)은 1395년 태조 이성계가 조선왕조의 법궁(法宮)으로 창건하였다.

1910년에 일제가 국권을 침탈한 이 후 궁궐을 조직적으로 훼손하며 근정전 앞을 전부 허물고 조선총독부 건물을 세우는 등으로 궁궐의 면모가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었다. 이 것을 1989년에 약 40%정도를 복원하였다. 경복궁은 창덕궁과 달리 국체(國體)의 구심점인 근정전을 중심으로 하여 앞뒤로 일직선을 이루며 핵심공간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어서 권위적임을 알 수 있었다.

정문인 광화문으로 들어가서 홍례문, 영제교를 지나 근엄하고 우아한 근정전을 비롯하여 사정전, 강녕전, 교태전 까지 일직선으로 만나게 되며, 사정전 왼쪽으로 돌아가면 경회루를 만나게 된다. 경복궁을 모두 둘러보고 경복궁 북동 편에 자리잡은 국립민속박물관을 방문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한민족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문화전반에 대한 전시를 통하여 자기문화의 자각과 재인식을 구현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한민족생활상, 사계절변화에 따른 조선시대 사람들 생활상, 한국인의 일상을 주제로 한 전시 등, 한국인의 정체성을 잘 나타내고 있어서 외국인들에게 한국인을 이해하는 좋은 자료가 되었다.

1218호 14면, 2021년 5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