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데미 시대의) 식충이

류 현옥

종일 하는 일도 없이 빈둥거리며 양식만 축내는 건달을 ‘식충이’라고 부르던 때가 있었다. 먹거리가 부족하던 시대를 경험한 사람들은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한다.

60년대 시절에 듣던 말이 기억난다. “장골 같은 놈이 방구석에서 뒹굴며 양식만 축낸다.”는 말, 빈둥거리는 실업자 아들을 집안의 우환으로 묘사했던 이 문구, 그 자체는 생활의 수준이 먹는 것에 국한된 사람을 비하하는 표현이었다. 칼로리 조절로 고민해야 하는 서구사회에서는 이 말의 어원을 이해하기 어렵다.

어느 사회나 시대에 맞는 문화생활이 있다. 주식이 해결된 후에야 문화생활이 가능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궁핍 속에서도 쓰는 일에 몰입하였던 작가들은 감동 깊은 예술적 작품으로 후세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

한 세대를 상징하는 어휘도 마찬가지다. 허기진 어린 날을 경험한 사람에게는 ‘식충이’라는 말에서 느끼는 어감이 남다를 것이다. 궁핍한 세월이 지난 후에도 내면적으로 아물지 않고 배고팠던 시절이 남긴 상처를 가지고 살기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게 된다. 이런 이들 중에는 어른이 되고서도 끊임없이 음식을 오물거리는 ‘묵돌이’로 살아간다. 전후의 독일에서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몇 년 전부터 한글을 배우는 독일친구 빌프레디가 그런 사람이다. 그는 독일에 없는 식충이라는 단어의 뜻을 이해하지만, 어린 날 우리끼리 부른 ‘묵돌이’ 단어를 설명하자, 자기는 오히려 ‘묵돌이’가 마음에 들고 자신에게 맞는다고 말했다. 묵돌이는 식충이처럼 비하하는 말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175cm 키에 120kg 몸무게로 살아가는 그는 전쟁 희생자로 짊어지게 된 짐이라고 변명한다. 농가로 보내져 굶어죽지 않았던 어린 날의 심리적 트라우마가 남긴 후유증이라고, 그래서 자신은 결코 식충이는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욕구불만을 해소하는 씹기 운동을 하는 사람을 식충이라는 말로 사람을 비하하는 것은 잔인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식충이는 기생충과 같은 뜻을 가지고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사회에서 추방된 단어이기도 하다.

중국대륙에서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모얀이 ‘식충이’이라는 산문을 세상에 발표하여 잊고 살아온 이 단어를 되살렸다. 판데미를 예감한 듯 코로나가 세상을 점령하기 오래 전에 이 수필이 발표되었다. 사람들을 거리에서 집안으로 몰아들이는 방역대책이 그것이다. 숙식의 장소였던 집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자 부엌이 중요해졌고 식충이의 특성이 나타나 새삼 의식 속에서 되살아났다.

이 수필은 내가 근래에 와서 읽은 글 중에 가장 감동받은 작품이다. 작가가 어린 날을 보낸 60년대의 중국은 식량부족으로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았다. 실제로 경험한 배고픔, 당시의 기아선상의 인간살이를 절실하게 묘사했다.

그는 산문의 서두를 이렇게 시작했다. “내 두뇌가 영양분을 가장 필요로 하던 때는, 바로 대다수의 중국인들이 굶어 죽어가던 때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동의어로 ‘보릿고개’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70년대 어느 정당의 구호, “배고픔에 시달리는 민생구제”라는 말이 생각난다. 잊었던 언어의 창고 속에서 불러내어 확인하는 계기였다.

모얀은 대가족이 한집에 살면서 식량부족으로 굶주렸던 어린 날의 기억을 잔인하다고 할 만큼 진솔하게 묘사했다. 썩어서 검은 반점이 있는 고구마말랭이 한 조각을 서로 먹겠다고 한집에 사는 사촌여동생과 싸우면 어머니는 배가 큰아들을 낳은 죄라며 다른 식구들에게 미안해하였다. 아침을 굶고 등교하는 아이들이 석탄 덩어리를 숨겨와 수업시간에 씹고 있어 선생님이 무엇을 먹느냐고 묻자 아이들이 석탄덩어리를 보여주며 맛이 있으니 먹어보라며 내민다. 배고픈 교사가 역시 석탄덩어리를 맛을 보았다는 장면이 감명적이다.

어른이 된 후에 정말 그랬던가! 희미한 기억을 의심하며 모교를 찾아간다. 옛날의 그 수위가 허리가 구부러진 노인이 되어 그때처럼 학교입구의 수위실에 앉았다가 일어서며, 유명해진 노벨문학 수상자를 반갑게 맞는다. 정말 그때 배고픈 아이들이 몰래 숨겨온 석탄 덩어리를 먹었고 입술들이 검었다고 확인을 해준다.

그의 수필에서는 한 번도 배불리 먹지 못하는 허기진 어린이의 하루하루가 먹는 것에 집중하는 것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코로나의 방역대책인 녹다운으로 정지된 문화생활이 먹는 것 위주로 일상생활을 축소시킨 점과 일맥상통한다.

머리는 점점 비어가고 뱃살이 점점 두터워진다. 식충이라는 말이 떠오르고 얼마 전부터는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세계적인 코로나 판데미가 일 년이 훨씬 지나도록 생활규칙을 지켰다. 집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먹는 것으로 소일하는 동안 조금씩 식충이가 되어간다는 기우가 생긴데서 시작했다. 홈 오피스, 집안에서 일하는 묵돌이 빌프레드 역시 생활전체가 컴퓨터와 먹는 것으로 축소되었다고 전화로 호소했다. 사람들이 모인 장소는 갈 수 없고 사람을 만나서 끌어안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그동안 있었던 일을 목소리 높여 이야기할 수도 없다. 맛있는 음식을 해서 친구를 초대할 수도 없고 같이 음식집에 들어가 메뉴를 보며 먹고 싶은 것을 고를 수도 없다. 영화관, 음악실과 박물관이 문을 닫았다. 영화는 TV나 저장된 카세트에서 재생시켜 볼 수 있고 음악은 CD를 통해서 들을 수 있고 만남이 금지된 사람과는 전화에 매달려 몇 시간이고 대화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빠진 것이 하나 더 있다. 같이 즐길 사람이 없다. 무언가 허전하다. 영화관에서 다른 사람들 사이에 끼어 앉아 함께 영화 속의 세계로 들어 갈 공동체가 없다. 영화관에서 나오면 잠시 잊었던 바깥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거리에 서서 현실 속으로 돌아온다. 살아있음을 확신하고 영화 속의 이야기를 나누며 만족한 기쁜 마음으로 기발한 예술기능에 감동한다. 잠시 세상을 망각하고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초월한 다른 세계 속으로 들어갔다 나온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며 재감상하는 쏠쏠한 즐거움이 아쉽다. 뭔가 빠져있다. 같이 앉은 영화관속의 사람들의 숨소리를 들으며 동시대의 사람들의 호흡을 확신함으로써 생을 확인할 수가 없다.

같은 내용의 영화라 할지라도 거실에서 보고 일어서면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를 연다. 먹는 것으로 결핍을 해소한다. 배가 고플 때가지 기다렸다가 먹어야 한다는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생활의 변화를 시도하며 하루를 다양하게 이루어나가는 유일한 것은 식단으로 축소된 것이다.

끊임없이 요리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부엌에서 시간을 보낸다. 먹는 것에 집중하며 하루를 소일한다. 배고파서 허덕이는 식충이가 아니다. 식탐에 얽매인 식충이다. 해소되지 않는 온갖 불만과 코로나 감염의 불안으로 안절부절 못하는 마음에서 생긴 식충이다.

아무리 정신을 차리고 이럴 때 일수록 뜻 있는 일에 신경을 집중하여 코로나가 후퇴한 후 정상생활을 하는데 문제가 없게 해야 한다고, 하루에도 몇 번 다짐하지만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킬 길이 없어 부엌에서 서성거린다. 뉴스를 보기위해 텔레비전을 켜면 코로나에 대한 정보와 정치적 방역대책과 세계 여러 나라의 코로나 소식과 상상을 초과하는 인도의 파국적인 장면으로 또다시 코로나 세상에 잡혀 들어간다. 목이 말라 물을 마시러 부엌에 들어가면 냉장고 문을 열고 눈에 보이는 대로 이것저것 입속으로 집어넣는다. 전형적인 식충이의행위다.

뱃가죽에는 이미 지방층이 생겨있기에 에너지로 해소되지 않는 여분의 영양분은 지방층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적인 모든 즐거움이 금지된 사태에서 유일하게 남은 먹는 재미다. 과식은 만병의 원인이라는 것도 알지만 이미 몸속에 자리를 잡은 지방세포는 절제를 거부한다.

녹다운에 의한 사회적 조치가아닌데도 개인 스스로가 결정하고 자제하지 못하는 식충이가 된 것이다. 많이 먹었는데도 돌아서면 출출하다는 속삭임과 하는 투쟁이다. 경험을 통해 능히 아는 일, 한번 붙은 뱃살은 좀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 물론 안다. 그럼에도 식충이처럼 입에 넣어 씹을 것을 찾고 있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1224호 14면, 2021년 6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