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어디선가 종소리가 (1)

정안야

날씨가 은근히 쌀쌀했다. 이른 아침이어서 도로에는 차가 다니지 않아 휑하고 길가에 잔설만이 거리를 지키는 듯했다. 하자누판 교도소 긴 철망 끝에 철조망을 머리에 인 철문이 열렸다. 청바지에 검정 가죽 재킷을 입은 하랄드가 고개를 숙이고 저벅저벅 철문을 빠져나왔다.

그는 뒤돌아섰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성벽처럼 견고해 보이는 저 건물, 저 안에서 삼 년을 지냈다. 교도소 생활에서 그나마 위안거리가 된 것은 엘베강의 잔잔한 물결과 아침이면 어김없이 창틀에 앉아 쫑알거리는 새들이었다. 하랄드는 성호를 그어 새들을 축복하고 뒤로 돌아섰다.

길 건너편에 루치아 정이 차를 세워놓고 손을 흔들었다. 진붉은색 코트를 입고 진붉은색 모자를 쓴 그녀가 환하게 웃었다. 그녀는 중요하거나 예의를 차려야 할 장소에 갈 때면 저 차림을 했다. 누구보다도 하랄드의 출소일을 손꼽아 기다린 사람이다. 석 달 전에 면회를 왔을 때보다 더 늙어 보였다.

루치아 정은 일 년에 세 번은 하랄드를 면회했다. 하랄드는 그녀가 늙었다는 생각이 들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제오늘의 일도 아닌데 말이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째이니 루치아 정은 몇 년이나 이곳에 발걸음을 한 것이다. 아무리 대모라고는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루치아 정이 빨리 오라는 손짓을 보냈지만, 하랄드 제자리에서 머뭇거렸다. 혹시라도 잉에가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랄드는 잉에와 아이를 갖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루!”

루치아 정이 갈라지는 목소리로 힘껏 불렀다. 그녀는 하랄드를 앞의 한 자를 따서 하루라고 한다. 하루씩 탈 없이 살다 보면 그게 행복이라며, 하랄드가 싫은 내색을 해도 그렇게 불렀다. 한편으로는 한국식 이름을 붙여주고 싶은 심사도 있었다. 하랄드는 천천히 길을 건너가 엉덩이를 뒤로 쭉 빼고는 루치아 정의 뺨에 자신의 뺨을 댔다. 뒷짐을 지고 있던 루치아 정이 재빠르게 하랄드의 목을 잡고는 두부를 입안에 밀어 넣었다.

“창피하게 이게 뭐예요.”

“한국에선 다들 이렇게 해. 이래야 이런 데 다시는 안 오지.”

“미스 정, 난 한국이란 데 한 번도 가본 적 없거든요.”

하랄드는 일흔네 살의 루치아 정을 미스 정이라고 부른다. 언제나 미스처럼 꾸미고 다닌다고 놀리며 붙인 호칭이다.

“두 번이나 다녀왔으니 이젠 그만 가도 되지?”

“누군 교도소가 좋아서 가는 줄 알아요?”

하랄드가 입을 잔뜩 내밀었다.

“아무리 그래도 네 핏속엔 한국인이 들어 있어.”

루치아 정이 하랄드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루치아 정이 차 키를 하랄드에게 건넸다. 루치아 정은 두 해 전 충돌사고가 난 후로는 웬만하면 운전을 하려 들지 않았다. 오늘은 하랄드를 데리러 차를 가지고 왔다. 하랄드가 핸들을 잡았다.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니 차가 쭉 미끄러져 나갔다. 그는 오랜만에 운전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루치아 정이 스틱에 올려놓은 하랄드의 왼손을 슬며시 잡았다.

“하루, 올해 스물다섯 살이지?”

“여섯이요.”

하랄드가 볼멘소리로 대답했다.

“하랄드, 이젠 어엿한 어른이니 사회생활도 점잖게 잘 해내겠지? 미소도 살짝 머금고 말도 의젓하게 하고 말이지. 하랄드, 한 번 웃어봐. 이가 다 나오게 말이야.”

“그게 무슨 소리예요. 운전 하고 있는데.”

하랄드가 핀잔했다.

“하랄드, 성당에 먼저 들르는 게 좋겠지?”

칠 년 전 출소할 때도 그랬다. 성당에 잘 나가지도 않는 하랄드를 끌고 가서는 신부에게 축복기도를 받도록 했다.

“묘지에 먼저 들르면 안 될까요?”

“굿 (Gut), 우리 하루. 내가 그 생각을 못 했구나. 어머니를 먼저 찾아봬야지.”

지난해 여름 하랄드의 노모 명의선이 뇌출혈로 쓰러졌다. 큰아들 마티아스가 타지에서 생활하는 만큼 장례를 치르는데 루치아 정이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칠 년 전이었다. 중앙역에서 내린 루치아 정은 중앙역을 빠져나왔다. 길은 온통 떨어진 은행잎으로 뒤덮였다. 노란 은행잎을 밟으니 바스락, 하는 소리가 정겹게 들렸다. 그녀는 낙엽 밟는 소리가 새삼 신기했다. 오랜만에 귀 기울여 이런 소리를 들은 걸까. 생각해보니 이렇게 한가하게 외출을 한 지도 꽤 오래되었다. 이도 시끌벅적한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중앙역은 늘 많은 사람이 오가느라 소란했다. 나뭇가지에서 주르르 떨어져 길바닥을 차지한 목숨을 다한 이파리들을 밟으며 중앙역 밖으로 나왔다.

중앙역 부근에는 많은 여행객과 전철 사용자들이 바쁘게 다니며 복잡하고 구걸하는 사람도 여기저기 많이 있다. 한쪽에는 오래전에 자취를 감춘 히피족의 후예인 양 히피펌 머리를 하고 귀고리를 한 애들 예닐곱 명이 시끄럽게 떠들고 자기들이 치고받는 시늉을 했다. 머리에 빨강, 파랑, 노란색을 모두 물들이고 손과 목에 문신을 정신 사납게 한 아이도 끼어 있었다. 다른 한쪽에는 맥주 캔을 마시며 담배를 연신 피워대는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루치아 정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쳐다보았다. 그중에는 한인 아이 막시밀리안도 있었다.

막시밀리안은 부모가 붙여준 이름은 그게 아닌데 애들한테 세게 보이고 싶어서 스스로 붙인 이름이다. 루치아 정에게 자신을 막스라고 불러 달라고 했다. 막스는 한국인 엄마와 독일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잘 자랐지만, 청소년기가 되면서 거칠게 노는 아이들과 어울렸다. 그때 이름을 바꾸었다.

일 년 전에 멀리 뉘른베르크에서 이사 왔다. 부모가 이혼하고 막스는 엄마를 따라 이곳에 왔다. 한 넉 달 되었을까, 루치아 정의 눈에 막스가 자주 눈에 띄었다. 막스의 얼굴에서 한국인의 모습이 비쳤다. 막스 엄마가 한인이었으며, 막스는 한국어를 할 줄 몰랐다. 루치아 정은 다짜고짜 막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아이들 선도를 오래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겨서 어렵지 않게 다가갈 수 있었다. 하지만 막스는 아직 마음을 열지 않았다. 루치아 정은 막스에게 말을 걸려다 말고 눈을 맞추고 손을 흔들고 발길을 돌렸다. 하랄드를 어렵게 불러냈는데 늦으면 일을 망칠 수 있어서다.

약물 중독 치료 센터로 가니 하랄드가 약속한 시간보다 일찍 나와 있다. 하랄드는 마약범으로 16개월 형에 집행유예를 받고 마약중독 치료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치료를 거부하는 바람에 실형을 살고 출소한 지 한 달째였다. 보름 전에도 만났지만 허사였다. 이번에는 꼭 참석을 시켜야 한다. 이제 앞날이 창창한 열여덟 살이다. 루치아 정은 몇 번을 전화한 끝에 간신히 설득해서 만나기로 했으니 하랄드의 얼굴을 보니 기뻤다. 어쨌거나 나온 걸 보니 영 내키지 않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루치아 정이 하랄드의 손을 잡고 앞장서자 하랄드는 살짝 손을 빼고 뒤를 따랐다. 루치아 정이 다시 하랄드의 손을 세게 잡아챘다.

마약 중독 회복자 자조모임에는 상담사 한 명과 아홉 명의 회원이 빙 둘러 의자에 앉았고 양쪽 벽 앞에는 보호자 일곱 명이 앉았다. 하랄드가 가장 어렸다. 하랄드는 어색한지 못마땅한지 자주 고개를 돌려 루치아 정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그때마다 딴청을 부렸다.

한 명씩 얘기했다. 정해진 주제는 없었다. 마약을 시작한 계기나 살면서 어려운 일들 그런 것들을 두서없이 이야기했다. 상담자도 별로 간섭하지 않았다. 하랄드의 차례가 되었지만, 그는 좀체 입을 열지 않았다. 상담사는 차례를 바꾸어주었다. 루치아 정은 오늘도 실패할까 봐 마음을 졸였다.

하랄드 어머니 명의선은 성당에서도 말수가 적은 편이었다. 그녀는 남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얼마 뒤 성당의 문을 두드렸다. 그때 루치아 정이 그녀를 맞았다. 나이 어린 마틴과 하랄드 두 형제가 있는데 혼자 어떻게 애들을 키우며 살지 막막해서 왔다고 했다. 그럴 만도 했다. 그녀는 파독 간호사로 독일에 온 어머니와 독일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독일인 남편과 오래 살지 못하고 이혼했다. 명의선은 홀어머니와 외롭게 자랐다.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남편마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그 불안감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것이었을 테다.

이제 하랄드만 남았다.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아직도 그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 상담사는 다른 사람에게 천장을 바라보라고 하고는 하랄드에게 눈짓했다. 그제야 그는 입을 열었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자기 이름을 밝힌 다음 뜸을 들이다가 한숨을 내쉬고는 결심한 듯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난 필로폰이 좋아서 한 게 아니라, 억울해서 했어요.

그때가 열일곱 살이었어요. 어머니는 일하러 나가고 마티아스 형도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나가고 없었어요. 자연스럽게 동네에 나보다 나이 많은 큰 형들과 같이 어울리게 됐어요. 늘 혼자 다니는 날 처음엔 놀리더니 나중엔 데리고 다녔어요.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어차피 공부 같은 생각도 하지 않았고 매일 심심했거든요.

그날은 비가 많이 왔어요. 형들이 바에 들어가길래 저는 밖에서 기다렸어요. 늘 그랬어요. 어디 갈 데도 없으니까 밖에서 형들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죠. 빗줄기가 점점 거세져 비를 맞게 되어 들어가서 기다리기로 했어요. 들어서자마자 화장실에 가려고 나온 레오가 여기 혼자 있으면 무슨 일 당할지 모르니 안으로 들어가라면서 형들이 노는 방에 날 밀어 넣었어요. 안은 엉망진창이었어요. 방은 뿌옇고 술 취한 형들이 비틀거리고 시끌벅적하게 음악 소리가 들렸어요. 그때 빈트가 조그만 비닐봉지를 손에 쥐여주고는 즐기라고 했어요. 내가 머뭇거리자 내 고개를 우악스럽게 뒤로 젖히고는 코에다 불어 넣어 줬어요. 재미있었어요. 음악에 흥분되어서 나도 모르게 소리도 지르고 그랬어요. 그렇게 한참을 놀았어요.

갑자기 경찰이 들이닥쳤어요. 몇 명은 잽싸게 뒷문으로 도망갔고 몇 명은 붙잡혀서 경찰서로 끌려갔어요. 사실대로 말하면 풀어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내 말은 아예 듣는 척도 안 하더라고요. 어머니가 변호사를 마련했는데 소용없었어요. 변호사도 법정에서 별다른 말을 하지 않더라고요. 정말 충격이었어요.

결국, 교도소에 갔어요. 그 안에서 공부하고 9학년 졸업장을 받게 되었어요. 그 안에서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하니까 교도원들도 잘 대해 주었어요. 어머니는 식당 일로 바쁘신 데도 주말이면 면회를 왔어요. 다른 면회자들은 모두 차를 태워 들여보내고 왜 그랬는지 어머니는 따로 남아있게 해서 다른 방으로 데리고 가서 늦게야 혼자 차를 태워 면회장까지 왔어요.

교도원은 어머니에게 몸 검사를 하면서 옷을 벗게 하고 몸수색을 마친 후 면회하게 허락해 주었어요. 개가 옆에서 냄새까지 맡아 마약을 찾아내려고 했다는 거예요. 엄마가 아들에게 몰래 전달해 주는 줄 생각하고 엄마의 옷을 벗겨 항문까지 검사하게 했던 거에요.

어머니는 놀라고 수모를 당했다고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와 부들부들 떨면서 면회장에 들어왔어요. 나를 보자마자 뺨을 한번 날렸어요. 어떻게 교도소에서까지 마약을 한다고 의심을 받게 했느냐고요. 오죽하면 하면 날 때렸겠어요. 그땐 정말 미안했어요.

많은 생각을 했어요. 출소하면 일자리 구해서 착실히 살아야지 하는 마음도 들었어요. 가족에게도 너무 미안했고요.”

“하랄드,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요. 너무 힘들 테니까요.”

상담사가 하랄드의 말을 끊었다.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 박수를 쳤다. 하랄드는 왜 박수를 치는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루치아 정이 하랄드에게 가서 등을 두드리며 잘했다고 말했다.

루치아 정은 하랄드를 집에 데려다주고 성당으로 갔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성당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루치아 정은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고 나서 자리에 앉아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파독 간호사로 독일에 온 지 어느새 반세기가 되었다. 그때는 정말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면서 향수병에 시달리기도 하면서 열심히 살았다. 2세대는 정체성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로 인해 방황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특히 독일인 남자와 결혼한 가정의 아이가 더 그랬다. 루치아 정은 그 아이들을 상담해왔다. 아이들이 일탈하면 대개 폭력이나 마약, 알코올 중독이 문제가 되었다. 벌써 이십 년째 상담하고 있다. 1세대와 2세대 모두 한국인끼리 결혼한 경우는 흔치 않은데, 하랄드네가 그랬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단명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명의선이 성당에 처음 와서 넋을 잃은 얼굴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하소연하던 때가 떠올랐다. 어머니와 함께하던 식당을 하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자 남편과 함께했다. 그런 와중에 남편마저 교통사고로 잃은 것이었다.

명의선은 혼자 성당을 나오다가 삼사 년이 지났을 때 두 아이도 데리고 나왔다. 형인 마티아스는 얌전한 편이었지만, 하랄드는 미사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마티아스는 별 탈 없이 학교에 다녔고, 하랄드도 별 탈은 없었지만,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그런가 했는데 하랄드가 마약 흡연과 소지 혐의로 잡혔다. 명의선은 또 넋을 잃은 얼굴을 하고 성당에 와 종일 기도에 매달렸다.

(다음호에서 이어집니다.)

1236호 14호, 2021년 9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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