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연재] 해로 (Kultursensible Altenhilfe HeRo e.V.)

40회: 세대공감 사진전

첼로 선율이 작은 공간을 감싼다. 20평 남짓한 공간에 가득한 사람들은 82세 첼리스트의 연주에 녹아든다. 1965년에 고국을 떠나 쾰른 음대에서 첼로를 전공한 양유나 첼리스트는 은퇴한 후 딸이 사는 베를린으로 이주하여 사단법인 <해로>와 연을 맺었다. «세대공감 사진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오프닝에 참석하여 기꺼이 축하 연주를 해주었다. 그녀와 비슷한 시기에 고국을 떠난 한인 이민 1세대 파독 근로자들은 오래된 사진과 함께 흐르는 첼로 선율 속에서 주마등처럼 지나간 세월을 보았다.

2021년 11월 8일, 초겨울의 짧은 낮이 끝나고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때에 사단법인 <해로>가 주최한 “세대공감 파독근로 사진전”이 문을 열었다. 코로나가 아직 물러가지 않았지만 3G 규정을 지키면서 전시장에 입장한 분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파독을 보도하는 ‘대한 뉴스’ 영상이 벽에 비치며 시작된 오프닝에는 20대 무용가와 30대 음악가의 공연이 함께했다. 둘 다 평소 <해로>의 방문 활동에 함께하는 자원봉사자들이다.

사진의 설치 작업에는 40대와 50대의 미술가들이 힘을 모았다. 먼 도시에서 소식을 듣고 전시를 돕겠다고 자청하여 뛰어온 미대 유학생도 있었다. 전시장에는 10대들도 와서 옛 사진을 구경했다. 제목 그대로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의 자리였다.

사단법인 <해로>로 지난 6월 사진 공모전을 통해 독일 각지로부터 파독근로자의 초창기 모습을 담은 사진을 받아 우수작을 시상하였고 등수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묻어두기 아까운 많은 사진을 이번 사진전을 통하여 공개하게 되었다. 또한 호스피스를 통해 마지막까지 동행해 드린 분들의 유품 사진도 함께 전시하였다.

60년대와 70년대에 한국에서 독일로 근로자를 파견함은 한국과 독일 양쪽 이민사에서 한 획을 긋는 큰 사건이었고 아직도 많은 분들의 개인 사진첩에 기록돼 남아있는 사실이다.

찾아오신 분들은 사진 속에서 지인의 얼굴을 발견하고 반가워하고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뿌듯해하기도 하였다. 70대 할머니 두 분이 50년 묵은 한 사진 앞에서 소녀처럼 실랑이를 벌이고 계셨다.

“얘, 이거, 네 생일파티잖아, 여기에 왜 내가 빠져있니?”

“얘는.. 이 사진 그때 너가 찍었잖아! 너가 내 생일 파티에 빠졌을 리가 있니?”

“어머, 그랬었구나.. 호호호”

«생애 첫 생일파티»라는 제목을 본 한 교포 여성이 의아한 표정으로 내게 묻는다.

“이 뜻은 독일에 가기 전 한국에서 한 번도 생일파티를 안 해봤다는 뜻이 아니에요?”

“아마 그렇겠죠? 예전엔 아이들 생일파티라는 게 없었잖아요. 저만해도 4학년 때 생일파티를 열어달라고 어머니에게 조르고 졸라서 처음 한 번 한걸요.”

모든 것이 풍족한 요즘 세상에서는 낯선 모습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지난 이야기이기도 하다. 베를린 빌머스도르프 구청은 <해로>의 기획 의도에 공감하며 전시 장소를 찾고 있는 우리에게 막 공사가 끝난 빈 카페 하나를 기꺼이 빌려주었다.

아직 조명도 없고, 액자를 걸 수 있는 시설도 없고, 벽에 못을 박을 수도 없고, 부분적으로 공사가 덜 끝나 공사장 먼지가 아직 뽀얗게 쌓여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무료로 장소를 제공받았다는 것에 감사하며 전시 기획팀은 함께 쓸고 닦고 대여한 부품들을 설치하여 사진을 진열하여 텅 빈 공간을 따스한 전시실로 바꾸어 놓았다. 빈 상자를 자르고 붙이고 칠하고, 구식 식탁보로 지저분한 곳을 덮고,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옛날 물품들을 구해 소품으로 진열했다. 온종일 이어지는 작업에 하루가 끝날 때면 모두 먼지투성이에 녹초가 되곤 했다.

“이 선생, 아까 춤춘 사람, 우리 집에 청소 도와주러 오는 분이 아니오? 저렇게 춤을 잘 추는 무용가였소? 나는 깜짝 놀랐소.”

요양등급을 받고 몸이 불편하신 와중에도 전시장을 찾아주신 80대 어르신이 내게 말을 건넨다.

아빠 손 잡고 온 5살 된 꼬마가 전시실 한쪽에 소품으로 진열된 다이얼 전화기를 가리키며 내게 물었다.

“이 전화기가 아직도 돼요? 어떻게 써요?”

다이얼을 돌리는 요령을 보여주자 수화기를 들고 귀에 대고 다이얼을 돌리며 흉내를 낸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엄마, 여기 연우예요.”

귀여운 아이의 모습에 준비하는 과정에서 쌓인 피로가 눈 녹듯이 사라진다. 녹녹하지 않은 준비과정이었지만 아직 공개된 적이 없는 개인 소장 기록들을 찾아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사진전은 11월 13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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