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이해하자(45)

독일의 법제도(3): 법률, 위임입법

법률

독일의 전통적인 법률관념은 법률의 개념을 형식적 법률개념과 실질적 법률개념으로 구분하고, “형식적 의미의 법률”이란 그 내용을 막론하고 의회에서 제정한 법형식을 말하고, “실질적 의미의 법률”이란 그 제정주체를 불문하고 그 내용의 여하 즉 일정한 내용을 가진 법규범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양자는 경우에 따라서 일치할 때도 있으며 또한 경우에 따라서 일치하지 않을 때도 있다. 예컨대 예산안의 의결, 조약의 비준, 선전과 강화의 결단과 같은 것은 그것이 비록 법률의 형식을 띤다고 할지라도 그 내용이 법규가 아니므로 실질적 의미의 법률은 아니다.

그러나 행정부에서 발하는 법규명령이나 자치단체의 조례 등은 그것이 입법권이외의 기관에서 제정된 법형식이라는 의미에서 형식적 의미의 법률은 아니나, 법규범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질적 의미의 법률로 간주되는 것이다.

다만 실질적 의미의 법률개념에서는 그 법률의 실질로 간주되는 내용이 무엇인가를 둘러싸고 견해가 대립되고 있다. 첫째는, 실질적 법률이란 법규(Rechtssatz)를 그 내용으로 한 법규범이라는 견해이다.

여기에서 법규란 사회적 제한을 목적으로 하는, 즉 인격적 주체의 자유로운 영역을 제한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는 법규범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러한 목적을 내용으로 하지 않는 것은 실질적 의미의 법률이 아니라 형식적 의미의 법률을 의미한다. 둘째, 자유와 재산을 그 내용으로 하는 것이 실질적 의미의 법률이라는 견해이다.

즉, 일반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개별적으로 개인의 재산을 제한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법규범이 실질적 의미의 법률이라는 것이다. 셋째, 추상적․일반적 법규정을 그 내용으로 하는 것을 실질적 의미의 법률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즉, 일반성과 추상성을 실질적 의미의 법률의 징표로 보고 이 징표에 의하여 입법과 기타의 국가작용을 구별한다.

그러나 독일의 경우에는 그 역사적 발전과정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입법과 행정의 양 기관의 분화가 19세기 전반 경에 행하여졌지만, 당시의 독일에서는 민주세력이 미약하였으므로, 입법기관의 권한은 극히 한정적으로 “자유와 재산”에 관한 사항만을 군주의 손으로부터 빼앗아 입법기관의 소관업무로 하는데 성공한 것에 지나지 아니하였다. 당시 이와 같이 입법기관의 사항, 즉 “자유와 재산”에 관한 것이 “법규”라고 불리워졌던 것이며, 이러한 “법규”를 정립할 수 있는 권한은 입법기관에 속하게 된 것이다.

즉, 국민의 자유 및 재산에 대한 직접적인 침해를 정하는 규정을 법규라고 하였으며, 이후 자유와 재산 외에 생명이나 명예, 가족법상의 지위 그리고 노동력이 중요한 법적 재산으로 등장하게 되었고, 근대입헌국가는 이들 법적 재산을 법률의 근거 없이는 이들에 대한 침해를 허용하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 위임입법

독일에서의 위임이라는 의미는 일반적으로 Delegation, Ermächtigung, Übertragung 등의 용어로 사용된다. 공법에 있어서 Delegation이라는 개념은 “국가 또는 자치단체의 권한의 소유자, 국가․자치단체 자체 또는 국가․자치단체의 기관의 일부가 그 권능의 일부 또는 전부를 다른 주체에게 위양하는 법행위”를 의미한다.

입법부의 영역에 있어서 그러한 권한의 이전은 종래 법정립의 권한을 가지지 않았던 주체가 자기의 이름으로 법을 정립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경우 위임자는 수임자를 위하여 자기의 권한을 포기할 수 있으며(echte Delegation), 권한의 이전에 즈음하여 이 권한을 스스로 집행하는 것을 유보할 수도 있다(unechte Delegation). Ermächtigung의 개념은 “어떤 국가기관이 자기의 이름으로 다른 주체의 권한질서에 속하는 조치를 행할 수 있는 권능의 위양”이라고 이해한다. 따라서 이 용어는 위의 echte, unechte Delegation을 포함하는 의미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양자는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며, 현행 기본법 제80조는 Ermächtigung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unechte Delegation을 의미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독일에서의 위임입법은 -정확하게는 법규명령(Rechtsverordnung)-은 실질적 법규로서 의회에서 정립되는 형식적 법률의 수권을 받아 제정되며 수범자인 일반국민 뿐 아니라 법관도 이에 구속되는 일반적 구속력을 가진다. 독일에서 위임입법 제정권은 행정부에 의하여 수행되며, 그러한 의미에서 위임입법권은 의회입법권에 파생되어 성립되는 이차적․파생적인 권한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것은 바이마르 공화국체제와 제3제국의 역사적 경험을 통하여 무제한적인 위임입법이 의회주의와 법치주의의 붕괴를 초래하게 되었음을 인식하게 되면서, 의회야말로 법치국가의 관계에서 행정 및 사법작용의 척도를 정립하고, 그와 동시에 포괄적 권리보호의 실질적 전제조건을 창출하는 곳으로서 국가행정의 영역에서 위임입법의 정립에는 법률적 기초가 있어야 한다는 행정의 법률적합성의 원칙을 수립하게 된 것에서 비롯한다.

따라서 행정은 법률에 위반되는 어떠한 처분도 하여서는 아니되며(법률우위의 원칙), 나아가 행정은 법률에 의하여 수권되는 경우에만 활동하여야 한다(법률유보의 원칙)는 원칙을 확립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입법권이 의회에 속한다고 하여 의회가 법규범에 관한 모든 결정을 직접 행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일반적 구속력있는 법규범의 형성을 명백히 단순화하고 촉진시키는 명령제정권의 의의를 인정하여, 행정부에 의한 법정립권의 필요성을 널리 인정하고 있다.


교포신문사는 독자들의 독일이해를 돕기 위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환경, 교육 등에 관해 ‘독일을 이해하자’라는 연재란을 신설하였습니다. 독자들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1217호 29면, 2021년 5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