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측의 카셀소녀상 관련 움직임은 제막식(7월 8일)이 열리기 전부터 시작되었다.
7월 7일 국내 언론을 통해 카셀대학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 관련 보도가 나간 바로 다음 날인 7월 8일 오전, 우리는 드레스덴 박물관 측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지난해 봄 드레스덴시 주립박물관의 <언어상실-큰 소리의 침묵>전 „Sprachlosigkeit–Das laute Verstummen“에서 일본군 위안부 운동을 독일사회에 소개하고 소녀상을 전시했던 바로 그 드레스덴민속박물관이었다.
일본 대사관에서 박물관 측에 전화해 카셀대학에 설치될 소녀상이 드레스덴박물관에 있던 그 소녀상인지 확인해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박물관 관계자는 “소녀상은 코리아협의회가 주도하는 것인데 그쪽에 물어보지 왜 우리한테 물어보냐”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는 것이다. 다행히 카셀에 소녀상을 건립하기까지 더 이상의 방해는 없었고 제막식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제 버릇 개 못 준다 했던가. 제막식이 열린 후 불과 3일 뒤, 프랑크푸르트 일본 총영사가 카셀대학 측과 만났다는 소식을 접했다. 일본 영사는 대학 총장과의 면담을 갖고 캠퍼스에 설립된 소녀상에 우려를 표했다. 이 소식을 전해준 카셀대학 총학생회장 토비아스에 따르면, 일본 영사와 카셀대학총장, 부총장은 소녀상 문제로 긴 시간 면담을 가졌고, 일본 영사는 “소녀상 설치는 반일 감정을 조장하여 카셀 지역의 평화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이유를 내세워 소녀상 철거를 요청했다.
소녀상이 설립된 신축공원 부지는 총학생회 측이 관리하는 공공 부지로, 소녀상 설립을 주도한 총학생회 측은 사전에 소녀상 설립에 대한 대학 측의 허가를 받아 놓은 상황이었다. 일본 영사는 대학의 행정과 학생회의 자치로 성사된 소녀상 건립에 또다시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려 한 것이다. 대학 총장은 일본 영사의 우려를 총학생회장에게 메일로 전달하는 것에 그쳤다. 하지만 현재 대학 행정부 쪽에서 철거 요구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어 아직 위태로운 상황이다.
일본 측의 항의성 문의 전화를 받았던 드레스덴 박물관은 소녀상 전시와 관련해 이미 일본 측의 거센 압박을 받은 경험이 있다. 지난해의 소녀상 전시는 독일 공공박물관에 설치된 첫 사례이자 유럽 내 공공박물관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첫 사례이기도 했다.
4월 15일로 예정된 제막식과 기자회견 하루 전 날부터 주독일 일본대사관 문화담당 공사의 소녀상 철거 요청 서한을 시작으로 일본 측의 지독한 괴롭힘이 시작됐다. 매일 수백 통씩 소녀상 철거 요구 이메일이 쏟아졌고 사무실 전화통에도 불이 날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소녀상은 기획전 기간이 끝난 이후에도 1년간 박물관 정원에 계속 전시하기로 계약을 맺었었다. 그러나 기획전이 끝나자마자 결국 소녀상은 박물관 창고로 옮겨지고 말았다.
2016년 수원시와 프라이부르크시가 공동으로 프라이부르크에 소녀상 설치를 추진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일본 정부는 집요한 방해 공작을 펼쳤다. 당시 프라이부르크시 소녀상 건립 실무를 맡았던 김영균 사무처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가 주독일대사와 프랑크푸르트 총영사 등을 통해 외교적 관례를 벗어나는 언동과 협박을 하였으며 프라이부르크의 자매도시인 일본 마쓰야마시를 통해 평화비가 세워질 경우 27년 동안 지속해 왔던 교류를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압박을 가해 2주 만에 손을 들었다고 한다.
2016년 11월 독일로 운송되어 왔다가 다음해 3월 8일, 레겐스부르크 부근의 대규모 사유 공원에 세워져 빛을 볼 때까지 그 소녀상은 결국 창고 신세를 져야 했다. 사유 공원에 세워진 뒤에도 계속된 일본 측의 압박에 소녀상의 의미를 설명한 비문은 결국 철거되고 말았다.
소녀상을 제작한 김운성 작가가 시사저널 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밝힌 비문 철거의 배경은 우리를 당황스럽게 한다. “뮌헨의 일본 총영사가 공원 소유자를 4차례나 직접 방문해서 ‘제발 소녀상을 철거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공원 소유자가 이를 거절하자 ‘그럼 비문 문구만이라도 치워달라’고 했다. 그래서 공원 소유자가 한국대사관에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는데 한국대사관 측은 ‘상관없다’고 대답했고, 결국 소녀상의 의미를 설명한 비석이 철거됐다“는 것이다.
이렇듯 베를린 미테구의 소녀상 등 비교적 잘 알려진 사례 외에도 일본 정부는 소녀상 설치나 전시가 있을 때마다 매번 끈질기게 방해해왔다. 베를린 소녀상의 경우 지역 구의회의 진보 정당 소속 의원들은 소녀상 관련 결의안을 세 차례나 의결할 만큼 소녀상 영구 설치에 대해 적극적이지만, 정작 미테구 구청장이나 독일정부 관계자들은 소녀상 사안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거나, 일본 측의 주장을 비판 없이 수용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본 측의 비상식적 행보에 대한 명확한 입장 정리가 요구되는 대목이다.
한편, 소녀상 전시 및 설치를 적합한 절차에 따라 진행한 미테구의 담당 공무원들이나 드레스덴박물관 관계자들은 여전히 일본 극우들의 악성 메일 공격에 매일 시달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현재 예상 밖의 큰 곤욕을 치르고 있는 공무원들과 캠퍼스 내 소녀상 영구 설치 후 압력이 들어오고 있는 카셀대학, 그리고 카셀시에 대한 지지와 응원의 메시지가 절실한 시점이다. (코리아협의회 편집부)
1276호 17면, 2022년 7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