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생활지원단과 사단법인 해로가 함께하는 건강 지원 정보
상담을 하다 보면 어르신들로부터 이런 말을 종종 듣습니다. “내가 아프면 우리 딸이 알아서 해줄 거예요.” “남편이 있으니까 따로 준비할 필요는 없지 않나요?” 가족이 서로를 돌보며 살아왔다면 자연스러운 생각입니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성인이 된 자녀나 배우자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법률적 결정을 대신할 수 있는 권한이 자동으로 생기지는 않습니다.
갑작스러운 사고나 뇌졸중, 치매, 중증질환 등으로 스스로 중요한 일을 처리하기 어려워졌을 때 누가 의료, 관공서, 주거, 재산에 관한 일을 대신할 것인지는 미리 준비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자녀도 자동적인 법적 대리인은 아닙니다
부모가 갑자기 의사결정을 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을 때 자녀가 병원에서 중요한 치료결정을 하거나 은행과 관공서 업무를 대신하려 해도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모의 계약을 체결·해지하거나 의료적 결정을 포괄적으로 대신할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상황을 대비하는 대표적인 방법이 Vorsorgevollmacht입니다. 본인이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 때 신뢰하는 사람에게 건강, 주거, 관공서 업무, 재산관리 등 필요한 영역의 대리권을 미리 부여하는 것입니다. 은행 업무의 경우에는 금융기관이 별도의 Bankvollmacht를 요구할 수 있으므로 확인이 필요합니다.
배우자에게는 §1358 BGB에 따른 Ehegattennotvertretungsrecht가 있습니다. 배우자가 질병이나 의식불명 등으로 건강에 관한 의사결정을 할 수 없을 때 일정 범위에서 다른 배우자가 대신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그러나 최대 6개월이라는 제한이 있고, 재산관리나 은행업무까지 포괄하는 일반적인 대리권은 아닙니다.
세 가지 서류는 역할이 다릅니다
노후의 준비에서 자주 언급되는 세 가지 문서는 목적이 서로 다릅니다. Vorsorgevollmacht는 ‘누가 나를 대신할 것인가’를 정하는 문서입니다. Patientenverfügung은 ‘특정 의료상황에서 나는 어떤 치료를 원하거나 원하지 않는가’를 미리 밝히는 문서입니다. Betreuungsverfügung은 장래에 법원의 rechtliche Betreuung이 필요해질 경우 누구를 Betreuer로 선임하기 원하는지 또는 원하지 않는지 자신의 뜻을 남겨두는 것입니다.
Rechtliche Betreuung의 원칙과 현장의 한계
충분한 Vollmacht가 없는 상태에서 질병이나 장애로 자신의 법률적 업무를 스스로 처리하기 어려워지면 Betreuungsgericht가 필요성을 심사하여 rechtlicher Betreuer를 선임할 수 있습니다. 2023년 개정 Betreuungsrecht가 강조하는 중요한 원칙은 당사자의 자기결정권(Selbstbestimmung)입니다.
Betreuung은 단순히 다른 사람이 당사자를 대신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제도가 아닙니다. 당사자의 의사와 희망을 존중하고, 가능한 한 스스로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기본 원칙입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법의 원칙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독일어가 익숙하지 않은 고령 이민자는 언어 표현의 어려움이나 청력 저하, 낯선 환경에서의 긴장 때문에 자신의 의사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실제 인지기능 저하와 구분되지 않고 오해될 위험도 많습니다.
또한 Betreuer가 당사자의 언어와 문화, 가족관계, 종교적 가치와 삶의 배경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법적으로는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어도 당사자가 체감하는 돌봄과 의사결정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고령 이민자의 Betreuung에서는 법률적 업무를 대신 처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가능한 한 통역과 문화적 중재를 활용하고, 가족이나 신뢰관계가 있는 사람의 설명을 함께 들으며, 그 사람의 평소 생활방식과 가치관을 이해하려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누구에게 Vollmacht를 맡길 것인가
Vorsorgevollmacht에서 중요한 것은 서류의 형식만이 아니라 누구에게 어떤 권한을 맡길 것인가입니다. 반드시 자녀일 필요는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기준은 신뢰입니다. 동시에 그 사람이 실제로 병원이나 관공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지, 재정적인 일을 믿고 맡길 수 있는지, 나의 가치관과 치료에 대한 생각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지도 고려해야 합니다.
부동산이나 복잡한 재산관계가 있거나 여러 사람에게 권한을 나누어 맡기려는 경우에는 변호사나 Notar의 전문적인 상담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서류보다 중요한 것은 ‘내 뜻’을 남기는 것입니다
Vorsorgevollmacht와 Patientenverfügung을 작성했다고 해서 준비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어떤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중병에 걸렸을 때 어떤 치료를 원하고, 무엇은 원하지 않는가?”“내가 판단하기 어려워졌을 때 누구를 가장 신뢰하는가?”
이러한 이야기를 가족이나 대리인과 미리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작성한 서류는 필요할 때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Vorsorgevollmacht, Betreuungsverfügung, Patientenverfügung에 관한 정보는 Bundesnotarkammer의 Zentrales Vorsorgeregister에 등록할 수 있습니다. Vorsorgevollmacht가 항상 공증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동산 거래 등 특정 법률행위에서는 공적 인증이나 공증이 필요할 수 있으므로 개별적인 확인이 필요합니다.
5) 아직 내가 결정할 수 있을 때
Vorsorgevollmacht와 Patientenverfügung을 이야기하면 많은 분들이 죽음이나 아주 먼 미래를 먼저 떠올립니다. 그러나 이러한 준비의 본질은 죽음을 대비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갑작스러운 사고나 질병으로 내가 일시적으로 또는 장기간 스스로 결정하기 어려워졌을 때에도 누가 나를 대신하고, 나의 뜻을 어떻게 지켜줄 것인지 미리 정해두는 것입니다.
이는 나 자신을 위한 준비인 동시에, 어느 날 갑자기 어려운 결정을 대신해야 할 가족의 부담을 줄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교포신문생활지원단에서는 사단법인 ‘해로’와 함께 동포 1세대에 절실히 필요로 하는 건강, 수발(Pflege)에 관한 다양한 정보와 더불어 전화 상담을 실시한다. 이를 통해 노령기에 필요한 요양등급, 장애 등급 신청, 사전의료 의향서(Patientenverfügung), 예방적대리권(Vorsorgevollmacht)작성 등 보다 실질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려 한다.
1472호 24면, 2026년 8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