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정(베를린)
2026년 4월 18일 베를린 그루네발트의 아름다운 “오드펠로우(Odd Fellow)” 갤러리에서 열린 “수현, 이민자” 작가의 서화 개인전을 다녀왔다. 이 전시회는 4월 18일부터 6월 19일까지 두 달간 열릴 예정이다.
1945년생이신 이민자 작가의 독일에서의 삶은 1966년 파독간호사로부터 시작하였다. 이미 한국에서 경북대 간호대학을 졸업한 그는 2년 간의 간호사 생활 가운데 의과대학 준비를 통해 1969년부터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의학 공부를 시작하였다. 26년간 성공적인 이빈인후과 전문의로 활약하다가 은퇴와 함께 시작한 것이 바로 서예와 서화라고 한다.
보통 사람들은 하나의 직업으로서 자기를 표현하기도 벅찰 때가 많다. 그러나 이민자 작가는 의료인으로서의 삶을 뒤로한 채 은퇴 후 동양화가로서의 삶 또한 훌륭한 족적을 남기고 있다. 그녀가 한국문화원에서 “병오스님”으로부터 사사받은 서예활동은 한글 궁체, 한문 전문, 금문, 예서에 이르기까지 서예의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녀의 서화 작품 중 “행복(Glück)“은 한글과 함께 독일어 고어서체(고딕체, 르네상스체, 슈바베허체) 까지도 품고 있다.
이러한 끊임없는 호기심과 열정으로 서예작품에 몰입한 결과, 대한민국 서예대전 초대작가로 활약하였을 뿐 아니라 세계 서예 전북비엔날레 초대작가, 대한민국 서예대전 서울지회 초대작가 등 고국에서도 눈부신 활동을 지속해 왔다. 지금은 독일 베를린 서예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다수의 단체전과 13번의 개인전을 이어오고 있다.
이민자 작가의 13번째 전시회인 이번 전시회에 직접 얼굴을 드러낸 작품은 약 50여개 정도였다.
이 날 또다른 느낌으로 관람자들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디지털 스크린이었다. 디지털 스크린에서는 작가의 작품 중 전시회에 전시되지 못한 125개의 작품이 스크린을 통해 소개되었다. 스크린 속에 나타난 그림의 색감은 현장의 느낌과는 조금 다른 드라마틱한 느낌을 주면서, 큰 스크린의 감동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그리고 작가의 대표작들을 중심으로 제작된 달력과 기념품들은 큰 작품들을 소장할 수 없는 분들을 위한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었다.

특히 이민자 작가의 화조도를 이용한 기념품들을 보면서 베를린시민들이 사랑하는 “공작새섬“을 동양화적인 느낌을 풀어놓은 듯했다. 작가의 서예 작품과 산수화에서는 다채로움과 동양의 미를 느껴지는 것같아 매우 인상깊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작가의 작품세계 중 독특한 느낌을 받은 것은 단연 화조도였다. 화풍은 동양화 화풍이나 소재와 색감이 주는 느낌은 서양화느낌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서양이 결합된 느낌이 있어 서양화에 익숙한 외국인들이 매우 좋아할 것같은 느낌이 나는 작품들이었다. 그래서 이민자 작가께 여쭈어 봤더니 프랑스에서 온 손님이 화조도를 다양하게 구매해 갔다는 이야기를 소개해 주셨다.
개인적으로 느낀 그 느낌 그대로 이민자 작가께서 60년 세월을 독일에 사셨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베어나오는 문화의 교차현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꽃다운 20대에 떠나온 고국의 고향이 더욱 그리워질 때마다 그림을 통해 고향을 만난다는 말씀을 들으며 그 화조도의 새들이 더욱 애잔하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회를 보면서 이민자 작가의 살아오신 삶의 궤적을 짐작케 하는 새로운 울림을 받았다. 그것은 전시회를 찾아준 분들이 너무나 많았고 그 인연들이 모두 이민자 작가와의 깊은 교분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기에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전시회를 기획한 둘째 아들인 “필립 글뢰써(Philipp Glässer)씨도 자신의 어머니가 꾸려오신 한인사회의 깊은 네트워킹을 보면서 놀라움과 자랑스러움을 느낀다고 전했다.
사람을 끌어모으는 것은 돈, 권력, 아니면 매력이다. 나는 이 전시회를 통해 80이 넘은 노령의 화가가 뿜어내는 엄청난 매력을 보았다. 그것은 이민자 작가가 자손들에게 보여주는 무형의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머니의 작품전시회를 위해 팔을 걷어 붙힌 아들의 결심에서 그 화답으로써의 “존경“을 보았다.
그 자리를 빛내주신 분들은 족히 150명이 넘어 보였다. 꽃다발을 들고 한달음에 와주신 교포1세대 분들과 많은 독일분들을 보면서 사람꽃밭을 풍성하게 가꾸신 이민자 작가의 삶이 어느 때보다 빛나고 있었다. 다채롭게 꾸며진 한국무용 공연과 한국 음식을 통해 즐거운 교분의 시간을 가지게 되어 이 또한 감사한 시간이었다.
1456호 11면, 2026년 4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