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왕립 학회의 설립 (Die Gruendung der Royal Society)

정원교의 귀띔 – 천 년을 가라 한들 멀다 했으랴

Dipl.-Ing. WONKYO INSTITUTE

왕립 학회 정식 명칭은 “The President, Council and Felows of the Royal Society of London for Improving Natural Knowledge“ 이다. 우리나라 말로는 “자연과학 진흥을 위한 런던 왕립 학회” 정도가 되며 이를 다시 줄여서 통칭 “왕립학회” 또는 “런던 왕립 학회”라고 부르고 있다. 이는 학회이면서 영국 국비로 운영되고 있는 과학 아카데미이다.

런던에 본부를 둔 왕립 학회는 당대에는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자들을 회원으로 두고 있었다. 이 학회는 영국 정부가 아닌 영국 왕실에서 공인한 학회이기 때문에 영국 본토뿐만 아니라 영연방 소속 국가에서 뛰어난 업적을 낸 국민이라면 회원 자격을 받을 수 있었다.

설립 목적이라면 과학 분야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뛰어난 과학자들을 지원하고, 정책, 교육, 국제 및 글로벌 협력을 촉진하는 등의 역할 수행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왕실 회원의 면모를 보면, 런던의 켄싱턴 궁전(Kensington Palace) 과 세인트 폴(St.Paul) 대성당을 설계한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 (Christopher Wren)도 멤버중의 한 명이었다.

이이작 뉴턴(Isaac Newton)은 1703년부터 1727년 사망할 때까지 24년 동안 학회에서 가장 유명한 회장중의 한 명으로 연임되어 왔었다.

하지만 장기집권은 항상 부정을 동반하기 마련인 듯, 그가 왕실 확회에 회장으로 재임하고 있을 때 독일의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 Gotfried Leipnitz) 간의 미적분 발명을 놓고 누가 먼저 발명했는가의 다툼이 있었다. 서로가 미적분 해법은 자기가 먼저라고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분은 함수의 순간적인 변화율 즉 기울기를 구하는 것이고, 적분은 미분된 함수의 역연산으로, 면적이나 누적량을 구하는 공식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미분은 기울기를 구하는 공식이고 적분은 면적을 구하는 공식이다.

뉴턴은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류인력을 알아낸 과학자로서 역학적인 관점에서 미분을 연구해 갔다. 역학은 속도나 가속도를 알아야 하는데 뉴턴은 물체가 운동하는 상태를 순간적인 정지상태로 연구해갔다. 따라서 뉴턴은 운동하는 물체를 어떤 궤도를 그리는 “점”이라고 생각하고 그 운동을 순간적으로 멈추게 함으로서 그 때의 속도나 가속도를 구했다.

반면에 독일 수학자 라이프니츠는 뉴턴과는 달리 기하학적 관점에서 곡선의 접선 또는 극대, 극소를 연구하는 수단으로 미분법을 연구해 갔다.

뉴턴이 미분법을 발견한 것은 1665-1666 사이의 일이다. 라이프니츠는 뉴턴보다 조금 일찍 미벅분 공식을 발명했다. 하지만 틀림이 없는지를 확인하고 반복해서 많은 문제들을 다루어 보느라고 1674년에 가서야 영국 왕실 학회에 미적분법을 보고했다.

그러자 학회로 부터 같은 미적분 공식이 이미 뉴턴에 의해 발견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뉴턴은 그의 왕실 학회 회장이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공정한 위원회, Fair Committee”라는 단체를 임명한 후 위원회의 이름으로 미적분 발명은 뉴턴이라고 발표케 하니 처음으로 미적분을 발명한 곳프릿 라이프니츠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미적분 공식에서는 라이프니츠의 풀이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위안을 가져야 하겠다.

이후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 (William Herchel) 과 핼리 혜성 (Halley Kometen)을 발견한 에드먼드 핼리 (Edmund Halley), 찰스 다윈, 에드워드 제너 (천연두 백신 발명), 스티분 호킹, 일런 머스크, 정치 활동 외에도 과학자로도 활동한 미국의 정치가 벤자민 플랭클린 (Benjamin Franklin)도 회원이었다.

특히 나루이 드 브로이 공작이라는 프랑스인도 왕실 회원이었는데 1929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자연과학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은 왕립 학회는 1660년 11월 28일에 찰스 2세 (Chales II)에 의해 왕립 학회를 왕명으로 공인한 유서 깊은 학회이지만 창립자는 존 윌킨스(John Wilkins), 로버트 보일(Robert Boile) 그리고 윌리엄 패티(William Patty) 이다.

찰스 2세도 왕실 협회의 회원이 되었으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과학 아카데미이다.

창립 멤버들은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모토를 정했다. 라틴어로“Nullius in verba“ 라고 모토를 정했는데 이는 “누구의 말도 따르지 않는다 (Take nobodys word for it)”는 뜻이다. 이 라틴어 모토는 왕립 학회 문장에도 크게 새겨져 있다.

이 모토는 왕립 학회 회원들이 다른 사람의 말에 휩쓸리지 말고 자신만의 실험을 통해 스스로 지식을 얻도록 독려하기 위한 뜻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즉 “옆에서 누가 뭐라고 떠들어대던 신경쓰지 말고 네 똥고집대로 하라”는 말이라 할 수 있다.

회원간의 이견으로 회장이 물러나는 경우도 있었다. 한 예로 피뢰침 발명이다. 1749년 벤자민 프랭클린이 뾰족한 모양의 피뢰침을 발명했고, 벤자민 윌슨은 끝이 뭉툭한 피뢰침을 발명했다.

어떤 것을 사용할 지 결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논쟁을 하는 동안 프랭클린의 발명품을 반대하던 회원들은 프랭클린의 피뢰침을 지지한 회원들을 미국의 첩자라고 비난하며 옳고 그름의 논리에서 정치적 싸움으로 번지게 되자 결국 왕실 협회 회장으로 있던 존 프린글 (John Pringle)이 사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왕립 학회는 오늘날까지 런던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현재 약 1700명의 회원을 가지고 있다.

회원 자격은 해당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룬 자연 과학자, 과학자, 공학자들이라면 자격을 갖게 된다.

여성은 공식적으로는 1945년부터 왕립 회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한 가지 예외도 있었다.바로 빅토리아 여왕으로 1837부터 1901 까지 왕립 학회의 회원으로 있었다. 빅토리아 여왕이 과학분야에 큰 업적을 세웠기에 왕립 학회 회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상징적 의미로 회원 자격이 주어졌을 것이다.

여성을 왕립 학회 회원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2년 후인 1947년 메리 카트라이트 (Mery Lucy Cartwright) 가 수학자로서 회원들의 선출로 입회한 첫 여성이 되었으며 이사회에서 봉사한 최초의 여성이되기도 했다.

그녀의 업적은 “혼돈 이론”이다. “혼돈 아론”은 “카오스 이론 (Chaos theory)”이라고도 하는데 무질서하게 보이는 혼돈 상태에서도 논리적인 법칙이 존재한다는 이론으로 혼돈계를 연구하는 수학 분야이다. 영구히 정지하거나 영구히 팽창하고 주기 운동과 준주기 운동으로 나타나는 행태이다.

왕실 협회 정회원이 되면 모든 명함에 공식적으로 FRS(Feloow of the Royal Society)가 붙는다. 더 나아가서 왕실 협회 회장으로 선출되면 PRS(President of the Royal Society) 로 변해 명함을 빛낸다.

영국이나 연방 국가의 과학자들이 노벨상이나 대영제국의 훈장을 받을 정도의 업적을 냈다면 대부분이 FRS 회원이다.

영국에서 FRS 가 명함을 빛내 주었다면 독일에서도 독일에서는“독일 엔지니어 협회 (Verein Deutscher Ingenieur)” 정회원이 되면 VDI 라는 타이틀이 명함을 빛나게 해 준 때도 있었다.

1456호 22면, 2026년 4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