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연재] 해로 – 108회: “더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2024년 봉사자 워크숍

‘한가위’라고도 불리는 ‘추석(秋夕)’은 우리나라 최대의 전통 명절이다. ‘한가위’라는 이름은 ‘크다’라는 뜻의 ‘한’과 ‘가운데’를 뜻하는 ‘가위’라는 옛말이 합쳐진 말로, 가을의 한가운데 있는 큰 날이라는 의미인데, 중국식 표현으로 ‘중추절’이라고도 했었다. 추석인 음력 8월 15일에는 일 년 중 가장 크고 밝은 보름달을 볼 수 있어 전통적으로 큰 명절로 여겼다.

추석은 한 해 가운데 가장 풍요롭고 넉넉한 명절이다. 추석 때가 되면 넓은 들판에 오곡이 무르익어 황금빛으로 물들고, 그동안 땀 흘려 가꾼 농작물과 과일들을 추수하여 각종 먹거리로 풍성해진다. 추석날에는 햅쌀로 빚은 송편과 햇과일로 음식을 장만해서 풍성한 추수를 감사하는 차례를 지냈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이웃과 나누어 먹으며 정을 나누고, 강강술래와 줄다리기 등과 같은 민속놀이를 통해 다음 해의 풍년을 기원하며 공동체 의식을 다지기도 했다.

살림이 넉넉한 우리 조상들은 추석이 가까워지면 동네 산에 올라가 굴뚝에 연기가 나지 않는 집이 있는지 보았다. 명절을 맞아 끼니도 잇지 못하는 이웃이 있는지 살피며 몰래 쌀가마니를 두고 갔다고 한다. 이처럼 추석은 풍요로운 가운데서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 소외된 사람들을 배려하고 먹을 것을 나누는 넉넉한 우리의 마음이 담긴 명절이다.

명절은 우리들의 삶 가운데 많은 유익을 준다. 부모님과 떨어져 살면서 자주 찾아뵙지 못하지만, 명절에는 길이 멀고 막히지만 온 식구들이 오는 것만으로도 부모님에게는 커다란 효도가 된다. 흩어져 살던 형제자매들이 한 상에 둘러앉아 그동안 있었던 일을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가족 사랑을 확인하는 것도 축복이다. 또한 명절을 계기로 그동안 소식을 전하지 못했던 사람들과 감사한 사람들을 찾아보거나 안부를 물으며 인사를 나누고, 그로 인해 서로의 관계가 아름답게 이어지니 명절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명절이 되면 우리 어르신들은 더욱 쓸쓸하고 외로운 분들이 많다. 혼자 사시거나 몸도 아프고 찾아주는 사람이 없을 때 더욱 그렇다. 해로에서는 그동안 명절이 되면 고향을 떠나 명절을 잊고 사시는 아프고 소외된 어르신들에게 명절을 느낄 수 있는 음식들을 조금씩 나누며 위로하고 응원하였다. 이런 봉사를 통해 어르신들의 사정을 더 잘 알아가게 되었고 더 가깝게 다가가 도움을 드릴 수 있었다.

독일에 거주하고 계신 파독 1세대 어르신들이 고령화되어 가면서 몸이 아파서 요양 보호 등급과 장애 등급을 받으시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런 어려운 교포들을 직접적으로 도울 수 있는 단체가 없는 상황에서, 베를린에서는 (사)해로가 고군분투하며 어르신들을 섬기고 있지만 역부족이어서 다 감당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사단법인 재독한인간호협회(회장 박영희)는 2013년부터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KOFIH)”의 재정지원을 받아 “독일 파독근로자 보건의료지원사업”을 실시해 왔다. 재독한인간호협회는 전국의 지부마다 봉사자를 선임하여, 독일에 거주하고 있는 파독근로자 중에 건강이 취약한 분들에게 필요한 돌봄을 제공하면서 명절에는 식생활에 도움이 되는 생필품을 제공하는 봉사를 하고 있다.

생필품 지원사업은 지역에서 섬기는 봉사자들이 발로 뛰며 섬긴 덕분에 지난 12년간 어려움 없이 지속할 수 있었다. 현재 독일 전역의 봉사자는 35명으로 대부분 파독 근로자들로 그동안 교민들을 위해 봉사를 많이 해오신 분들이어서 봉사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크신 분들이다. 이분들이 돌보는 대상자는 총 255명인데, 돌보는 대상자가 돌아가시면 가족같이 함께 마음 아파하며 슬퍼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들이다.

각종 모임이나 교육에 사용하는 현수막도 매번 종이를 붙여 날짜를 수정하여 사용하면서 지원받은 재정을 조금도 낭비하지 않고 어르신들을 한 분이라도 더 도와드리려고 애쓰는 모습을 행사 여러 부분에서 볼 수 있었다. 이런 봉사를 12년 동안 지속할 수 있도록 독일에 거주하는 파독 근로자들을 잊지 않고 꾸준히 재정지원을 해주고 있는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KOFIH)”과 말없이 섬기는 봉사자들의 헌신에 감사드린다.

지난 8월 23~25일에는 이와 같은 섬김을 앞장서서 하고 계신 봉사자들의 워크숍이 Cochem에서 있었다. 전체 봉사자 35명 가운데 25명이 참석했는데, 해로의 봉지은 대표와 필자가 강사로 함께 참여했다.

요즘 노령의 파독 1세대 어르신들에게 많이 나타나고 있는 “치매”에 대한 이해와 돌봄 방법, 치매 예방 체조, 노령기에 미리 준비해야 하는 필수 서류들에 대한 강의, 환자와의 의사소통 방법과 영적 돌봄에 대한 강의가 계속되었다. 모두 실제 봉사에 필요한 강의였기에 모든 분이 집중하여 경청하였고 매우 구체적인 질문도 많이 하셨다.

미리 준비해서 가져온 음식으로 함께 식사하며 친교를 나누는 시간도 매우 유익했다. 지부마다의 활동 상황을 나누며 얻게 된 정보를 통해 더 나은 봉사를 하게 되는 자리가 되었다. 담당자를 정하지 않아도 식사 준비와 마무리도 일사천리로 깔끔하게 진행되어서 봉사가 몸에 밴 분들임을 알 수 있었다.

이번 추석에도 아프고 힘든 분들에게 잘 준비된 생필품이 전달되고 있다. 받으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하루하루의 생활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기”를 기도한다.

“주께서 한 해를 이렇게 축복하므로 가는 곳마다 모든 것이 풍성합니다. 골짜기는 곡식으로 뒤덮여 있으니 그들이 다 기뻐서 외치며 노래합니다.”(시 65:11,13)

박희명 선교사 (호스피스 Seelsorger)

1378호 17면, 2024년 9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