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성 준
25년 새해 들어 정월하순경 프랑크푸르트 시내 한식 식당에 초대를 받았다. 몇 년 전 재독 호남 남부향우회 회장을 맡았던 김창선 전임 회장이 주선한 점심 모임이었다. 손종원 전임 회장과 김창선 전임 회장. 그리고 본인과 3인이 모이는 조촐한 점심 약속이었다.
코로나 사태 이후 큰 모임이 뜸해 자주 얼굴을 볼 수 없으나 가끔 서로 조촐한 모임을 가지거나 전화와 문자로 소식을 주고받으며 서로 안부를 묻고 지내는 사이였다.
해가 바뀌고 풍문에 손 전 회장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듣고 김 전 회장이 서로 얼굴이나 보자고 주선한 자리였다.
요즈음 한국 식당보다 중식당 뷔페가 화두에 자주 오르내렸다. 각종 음료수를 무한 리필이 가능하고 음식 종류도 다양해 그곳을 자주 이용 한다는 소문이 있어 나도 두어 차례 가 본 경험이 있었다.
이날 모임도 그 곳을 은근히 원했는데 웬걸 주차하기 힘든 시내 중심가가 아닌가? 김 전 회장도 모임 장소를 그곳으로 할까 했는데 손 전 회장이 그 한식집을 원해 부득불 그 곳 한식집으로 정했다 한다. 병원 출입이 잦은 손 전 회장 입맛에 그 식당에서 제공하는 된장찌개 맛이 식성에 맞았다 한다.
대중교통 이용 정기 승차권을 사놓고 별로 사용 못하고 있던 차 이번 기회에 사용하기로 했다. 버스와 S반을 번갈아 바꿔 타고 약속 시간에 겨우 도착했더니 손 전 회장은 우리 먼저 도착하여 교포신문을 뒤적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작년 10월에 만난 이후 처음인데 육중한 모습은 그대로였다. 대학병원 출입이 잦고 심장 판막증으로 대 수술을 받았다는데도 환자라는 모습은 전혀 느낄 수 없이 건강해 보였다.
악수하기 위해 내미는 투박한 손바닥 온기와 완력은 여전했다. 가끔 갖는 모임마다 빈손으로 오지 않고 작은 선물을 챙겨 오는 손 전 회장은 이번에는 남도 명물인 감태 김을 가져왔다.
나도 마침 짧은 기간이지만 1주일 갑자기 한국을 다녀오는 길에 이곳에서 구하기 힘든 젓갈 민물새우로 담은 토화젓과 밴댕이 젓갈을 조금 가져와 작은 병에 담아 선물했다. 이제까지 받아만 먹었는데 나도 한차례 답례를 할 수 있어 마음 뿌듯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점심 밥상을 앞에 놓고 그동안 쌓인 정담에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다른 날 같으면 맥주잔이 오고 가고 했으나 오늘은 소주 한 병으로 대신했다.
손 전 회장이나 김 전 회장의 주량으로 소주 한 병은 간에 기별도 안가겠지만 정초 인만큼 소주 한 병으로 예를 갖추자고 했다.
술을 별로 못하는 나도 오늘만은 운전대를 잡을 일도 없고 하여 소주 한 잔에 만족했다.
손 전 회장은 며칠 후 다시 심장 재수술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관상 동맥 한군데에 문제가 생겨 호흡에 지장이 있어 수술 후 한국에 갈 예정이라 했다.
경기도 양평에 정원 주택을 마련 봄가을 그곳에서 부부가 지내기로 자식들이 마련키로 했는데. 다음 모임은 가능한 거기서 만났으면 했다. 포천 이동 막걸리에 매콤한 해물 파전을 안주 삼아 거하게 한 잔하며 여운까지 남겼다. 그 후 짧은 모임을 가진 후 자리에서 일어 선 우리를 한사코 S반 반호프까지 자기 차로 데려다 준다고 하는 것을 겨우 거절하고 손수 주차한 차를 몰고 복잡한 시내를 빠져 나가는 뒷모습을 끝까지 바라보고 우리는 발길을 돌렸다.
불과 2시간 남짓 손 전 회장과 생전에 마지막 갖은 모임이었고 점심 식사를 하면서 주고받으며 소주 한 병을 나눠 마신 그 순간이 눈앞에 선하고 그가 남긴 말들이 귓가에 생생하니 맴돌고 있는데 이제 그의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다니….
그리고 그 날 이후 2월 5일 대학병원에 입원하기 전에 나한테 온 전화를 받지 못하고 한 시간 지난 후 전화를 했으나 불통이었다. 마지막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에 핸드폰을 무음으로 해 놓아 기회를 놓친 것이 정말 후회막급이다.
이제는 그 믿음직한 얼굴과 육중한 평소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현실에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 할 수가 없었다.
불과 한 달여 전에 서로 만나 소주잔을 비우며 정답게 나눈 그 시간을 회상하면서 한편의 시를 가시는 길에 띄워 보낸다.
을사년 새해
정월 대보름이 하루가 지난 날
중천에 뜬 밝은 달빛과 함께
홀연히 천상(天上)을 향해
다시는 건너올 수 없는
저 강을 건너가신 님이시여…
아직도 못 다한 이야기가 가슴에 절절히 남아있는데
언제 어느 곳에서 다시 만나
따뜻한 손 마주 잡고 정담을 나누리.
천상을 향해 가시는 길 굽이굽이
편히 살펴 가시어 영면하소서…
1402호 9면, 2025년 3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