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동포사회에 열정을 불태운 삶‘
에센. 재독한인 총연합회 자문위원, 글뤽아우프총연합회 감사,재 독일대한체육회 감사 등으로 활동한 고 서광구 안드레아스 장례식이 5월8일 오전 10시부터 에센 소재 Buiting Bestattungshaus에서 진행되었다.
고인의 가족과 쾰른 한인회, 쾰른 교구성당 ,에센루르지역 교구 신도들이 함께한 가운데 진행된 장례미사는 홍봉철 라파엘 신부님의 집전으로 성가 ‘주여 임하소서‘를 시작으로 조규순 신도의 말씀 전례, 화답송, 복음 환호성에 이어 홍봉철 신부님의 강론으로 계속되었다.

홍 신부는 강론을 통해 “사람은 평소 죽음에 관해 생각하며 살아가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죽는다는 것을 누구나 생각하게 되며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가며,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죽음을 넘어선 분이 예수님이다. 예수님을 바라보기 때문에 죽음이 끝이 아님을 알게 되며 은총을 깨달으며 삶을 새롭게 살 수 있다. 언젠가 죽음이 반드시 오기 때문에 삶을 새롭게 정리하거나 뒤돌아보는 순간이 오게 된다. 삶이 끝이 아니라 삶이 가치 있고 보람 있었다는 것을 하나님 앞에 알게 될 것이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라는 시에 나타나있듯이 우리 인생 역시 소풍과 같다. 하지만 삶에 대한 애착만 있다 보니 삶이 소풍이라는 것을 잊게 된다. 매 순간 나눔으로, 용서로 살아가야 한다.
죽는 순간까지 현재와 많이 달라지지 않는다. 즉 이 순간에도 어떤 생각으로 사느냐는 것이 중요하다. 죽을 때까지 생각이 그대로 하늘로 가기 때문에 이것을 깨닫고 살아가면 좋겠다.
마지막 종착역까지 가는 여정에서 가져갈 것은 얼마나 내가 사랑했느냐가 남는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들도 서로 사랑하라‘예수님 말씀처럼 우리에게 남긴 유일한 유산으로서 기쁨, 희망, 위로가 되는 것은 “얼마나 사랑 했느냐” 이다.
고인과 남겨진 좋은 추억과 사랑을 기억하며 서로 위로하며 살아 갈 것“을 주문하며 강론을 마쳤다.
성찬 예식과 유족의 고별식에 이어 고인의 아들 서종현의 고별사가 있었다.
고인의 아들은 아버지의 독특한 성격으로 어려움은 있었지만 사람을 단순히 선과 악으로 판단 할 수 없으며 때로는 그림자가 실체보다 더 크게 남을 수 있음을 밝히며 위로하는 자리보다는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작별을 하는 자리가 되기를 소원했다.
어려운 부분은 그대로 받아드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작별하기를 바라며 고인의 안식을 기원했다.
이어 나남철 한인회장의 고별사가 있은 뒤, 마침 성가로 장례예식을 마친 참석자들은 장례식장 뒤에 마련된 장지로 이동해 고인의 마지막을 지켜봤다.
1960년대 파독광산근로자로 독일 땅을 밟은 고인은 광산근무 중 발가락을 잃는 큰 사고를 당하면서도 한국에 있는 7형제의 삶을 책임졌고, 성실함과 근면함으로 광산 생활을 마치고, 레버쿠젠 바이엘 제약회사에서 일하며 자신의 삶을 꾸려왔다.
이후 연금자가 된 이후에는 동포사회에서 여러 가지 직책을 맡아 동포사회 발전을 위해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으며 활발히 활동을 펼쳐왔고, 신앙생활도 꾸준히 하며 카톨릭 쾰른 교구와 에센루르지역 교구에서도 열정적인 신앙생활을 이어왔다.
고인은 지난 2월 28일 어깨 골절상을 입은 후 입원과 퇴원을 거듭한 끝에 지난 4월15일 소천했으며 유족으로 부인 서순희(마리아)와 아들 서종현이 있다.
나남철기자 essennnc@gmx.de
1459호 12면, 2026년 5월 15일
추모사
Glückauf!
오전 8시면 남편의 핸드폰을 통해 어김없이 전해오던 서광구 어르신의 안부인사가 오늘따라 더욱 그리워집니다.
저희 집 가까이에 사시지만, 이 전화 한 통의 의미는 그 날의 건강을 확인하는 안부 인사이자, 생사를 확인하는 아주 소중한 의미가 담겨있었습니다.
2024년 6월 어느 날,갑자기 집을 떠나 저희 집을 찾아오신 후 저희들과 쭉 함께한 시간들은 생의 마지막을 마무리하는 시간이자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삶을 여는 출발점이기도 했습니다.
늘 씩씩하게 시내를 오가며 삶을 이어가던 중 갑자기 걸려온 한 통의 전화는 저희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어깨뼈 골절이라는 치명상을 입고 병원을 오가며 수술을 거듭한 후 끝내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시지 못했습니다.
베이지색 바바리를 정갈하게 입으시고 집 앞 전차정류장에서 서계시던 모습, 가끔 해결하지 못한 서류를 들고 저희 집을 찾아오시던 일, 그리고 가장 선명하게 가슴속에 남아있는 기억은 해 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구은 거위고기를 함께 먹으며 한 해를 마무리 하던 모습과 새해를 맞아 떡국을 함께 나누고, 생일에는 미역국을 잡수시며 건강 주심에 감사하시던 모습이 마치 어제 일처럼 눈앞에 선합니다.
언제나 식사를 맛있게 하시며 행복해 하시던 모습, 마지막으로 3월4일 한인회 총회에 아프신 몸을 이끄시고 한인회원들을 격려하시며, 맛있게 육개장을 드시던 모습이 생의 마지막 모습이 될 줄 아무도 몰랐습니다.
2주 동안 중환자실에서 생사를 오가며 삶과 처절하게 싸워오시면서도, “Glückauf” 남편이 소리치면 떠지지 않는 눈을 간신히 뜨시며, 저희들을 바라보시던 그 반가운 눈길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지하에서 발가락까지 잃으시면서 까지 7형제 삶을 책임지시며, 자신의 삶에 충실하셨고, 노년에는 동포단체 발전을 위해 늘 바른 말과 후원을 아끼시지 않으셨던 고 안드레아스 서광구님.
주일이면 성당에 나가 누구보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성실히 하셨던 분이셨기에 고 서광구 안드레아스님의 빈 자리는 동포사회와 성당에 더욱 그리움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이제는 다시 부르지 못할 Glückauf!
이젠 고통 없는 그곳에서 모든 것 내려놓으시고 평강을 누리십시오.
나남철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