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독일의 향토영화와 다큐멘터리영화(1)
향토영화(Heimatfilm)

향토영화(Heimatfilm)는 우리들에게는 생소한 영화 장르이나 독일에서는 이미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일반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영화장르이다.

이달 문화세상에서는 첫 번째 순서로 향토영화를 소개하고, 이어 독일 다큐멘터리영화 전반과 다큐멘타리 감독으로 잘알려진 재독감독 조성형 감독의 작품세계를 독자들에게 소개하도록 한다.


향토영화(Heimatfilm)

“모든 예술은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명제는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일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미술과 음악, 문학 등에서 종종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들을 접하게 되고, 이에 작가의 메시지, 현실과 작품과의 관련성 등을 찾아보려는 힘든 시도를 해본 경험들이 적잖이 갖고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이러한 어려움이 의외로 적어진다.

제작 자체가 다수의 관객을 대상으로 하고, 배우들의 대사와 표정, 영화관이라는 특별한 공간에서 장시간에 걸친 집중 등으로 비교적 감독의 의도와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 등이 선명히 부각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독일의 향토영화는 아마도 이러한 일반적인 영화의 특징을 가장 잘 들어내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지친 독일인들에게 위안을 준 향토영화

1940년대 후반 독일의 국토와 독일인들의 마음은 황무지와 다름없이 피폐하고 고통에 지쳐있었다. 국토는 모두 파괴되다시피 했고, 패전에 오는 집단적인 열패감, 거기에 전범국이자 반인류적인 범죄국의 국민이라는 낙인으로 독일인들은 견디기 어려운 자괴감에 괴로워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에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향토영화가 일반인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게 된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주검, 파괴된 도시 건물, 만연된 궁핍 등은 독일인들에게 돌아볼 때마다 마음 푸근한 자신들의 고향 농촌, 그곳에서의 우정, 사랑, 가족애 등을 주제로 한 향토영화는 독일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였다.

온통 푸른 초원과 흰 눈이 뒤덮인 산악, 붉고 노란 꽃들로 장식된 이 향토영화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유치하고 진부하게 보일지 몰라도, 1950년에 개봉된 향토영화 “ Schwarzwaldmaedel” 이나 1951년 상영된 “Gruen ist die Heide”는 매일 수천의 관객이 주변 영화관을 찾아 수주일간 당시 상영되는 영화 중 최고의 관객동원을 기록할 정도로 일반인들의 사랑을 받았고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었다.

195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독일의 향토영화는 그 내용도 진부하고 천편일률적이기만 하다.

작품 속에서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의 구분이 명확하고, 도시의 삶에 지친 주인공이 고향에 돌아와 마음의 안식과 가족애를 재발견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결말, 때로는 진실로 사랑하는 연인을 고향에서 발견하고 그와 함께 도시로 돌아가 함께 희망찬 생활을 시작한다는 너무도 진부한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이렇듯 ‘권선징악’, ‘Happy ending’의 틀을 벗어나지도 않고, 그 결말을 쉽게 추론할 수 있을 정도로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그저 그런 영화일수도 있었으나, 당시 독일인들은 이러한 향토영화에 열렬히 환호하였다.

단순하고 심지어 비현실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는 이러한 향토영화는 현실의 고통과 피곤으로부터 지친 전후 독일인들의 피난처였다. 현실상황에 지친 독일인들은 자신들의 현실 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보다는 그들에게 위안을 주고 잠시나마 현실을 떠나 모두가 한번쯤은 꿈꾸었던 전원생활을 향토영화를 통해 마음의 위안을 찾았던 것이다.

새로운 방형을 모색하는 향토영화

향토영화의 대표작으로는 ‘Zugvögel (1947)’, ‘Menschen in Gottes Hand (1949)’, ‘Am Brunnen vor dem Tore (1952)’, ‘Der Förster vom Silberwald / Echo der Berge (1954)’, ‘Die Mädels vom Immenhof (1955)’, ‘Der Pfarrer von St. Michael (1957)’, ‘Die Landärztin (1958)’, ‘Und ewig singen die Wälder (1959)’ 등을 꼽을 수가 있다.

작품 제목에서부터 유추해 볼 수 있듯이, 농촌의 주요 인사라 할 수 있는 의사, 사제(목사 또는 신부), 시장, 삼림감독원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그 고장의 갈등을 풀어나가는 전개방식을 쓰고 있다.

50년대의 향토영화의 대부분은, 유산상속 다툼이나, 신분차이나 가문간의 적대 관계로 인한 이루어 질수 없는 사랑 등의 갈등이 이러한 주인공의 활약으로 극적인 반전을 이루어 결국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는 평범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그러나 1960년대에 들어서면 점차 이러한 향토영화는 일반인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게 되고, 196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간신히 그 명맥만을 유지하는 정도로 일반인들로부터 멀어졌다.

독일의 향토영화는 1970년대를 지나 1980년대에 들어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인식 즉 환경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고조됨에 따라 농촌에 대한 새로운 조망이 예술 각 분양에서 일어나게 되고, 영화부분에서도 향토영화가 다시금 주목 받기 시작하였다.

새롭게 등장한 1980년대의 향토영화는 작품의 배경은 역시 농촌이나 산악지역, 지방 소도시들을 주 무대로 하고 있으나, 내용면에서 많은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2차 대전 후 ‘지속적인 발전’ 이라는 틀 안에서 성장만이 강조된 30여년의 세월이 흐른 1980년대는 이른바 ‘발전된 세계’의 어두운 그림자가 점점 짙어져갔다.

‘세계화 (Globaliserung)’라는 이름하에 각 지방들은 점차 고유의 특징을 잃어가게 되었으며, 점증되는 환경 파괴와 자연 재해 그리고 원자력발전소의 위험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사람들은 원자력발전소가 인류를 구원하는 대안이 아니라 인류의 종말을 고하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존재라 자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으로 독일의 향토 영화는 다시금 새롭게 독일인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었으며, 특히 TV의 연재물로 각광 받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Landarzt’와 ‘Schwarzwaldklinik’ 이다.

한편 Edgar Reitz 감독은 코블레츠 인근의 Hunsrueck 이라는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고향(Heimat)’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세 차례 제작하여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1984년에는 ‘Heimat – Eine deutsche Chronik’, 1994년에는 ‘Die zweite Heimat – Chronik einer Jugend’, 2004년에는 ‘Heimat 3 – Chronik einer Zeitenwende’라는 대 제목으로 발표되었다. 각 제목하에 10여편에 가까운 소제목의 영화가 제작되었는데

Reitz 감독의 기록 영화는 ‘고향’ 총 30부작으로 52시간 8분의 분량을 담고 있다.

1187호 23면, 2020년 9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