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9일 재외동포 문학상 전수식에 다녀와서

효린 강정희 (재독 수필가, 시인, 소설가 시조시인)

금요일 늦은 오후에 전화벨이 울렸다. “강정희 님이세요? 저는 대사관 본관에 근무하는 XX입니다. 재외동포 문학상 전수식을 12월 9일 수요일 오후 3.00시에 하고자 하는데 시간이 되시는지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마침 특별한 일이 잡히지 않은 날이어서 그리하기로 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모두의 발목을 잡은 코로나로 올해를 넘기지 않고 전수식이 이루어지려나? 하는 궁금증도 없지 않았던 참이었다.

오랜만에 공식 석상에 다녀올 생각을 하니 분칠한다고 빛날 나이는 지났지만, 갑자기 발보다 빠른 마음이 부산을 떤다. 미장원에 다녀온 지도 꽤 오래되어 머리를 풀기는 너무 길고 묶기는 짧은 게 어중간해서 신경이 쓰였던 참이었는데 이튿날 아침 일찍이 미장원에 들러 커트를 하고 머리를 손질하며 얼굴에 팩을 하면서 그날 입고 갈 의상에도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사람은 생긴 모습 그대로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지만, 어찌 그리 안이하고 쉬운가.

12월 9일 날은 딱 우리 날인 듯 겨울 날씨답지 않게 구름 띠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에 햇살이 눈에 부셨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남편과 함께 집을 나서 드디어 BONN GODESBERGER ALLEE에 도착한 순간 가슴이 뭉클한 펄럭이는 태극기를 가리키며 남편에게 여보 저기야! 저기! 소리를 쳤다.

30분 전에 도착한 우리는 여직원의 안내를 받아 대기실에서 아름다운 빛깔로 세계 속으로 펼쳐가는 대한민국의 홍보 자료와 얼개가 짜인 정보 자료를 들추며 시간을 보내다가 3시가 조금 안 되어 이두영 총영사님, 이우철 공사님과 인사를 나누며 접견실에 안내되어 여러 직원이 모인 가운데 전수식을 했다. 총영사님께서 상패와 2020년 수상 작품을 담아 제작한 ‘재외동포 문학의 창’이라는 책을 전달하셨고 성의 있게 준비하신 격려 가득한 축사도 해 주셨다.

걷잡을 수 없는 들불처럼 수그러지지 않고 세상의 질서를 온통 뒤바꿔놓은 코로나 때문에 비록 마스크를 착용하고 표정과 마음을 감춘 분위기에서 네온처럼 화려한 행사는 아니었지만, 모든 분이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축하해 주셔서 좋은 행사로 자리매김한 눈물 나게 흐뭇한 뜻깊은 순간이었다. 뿌리 내린 푸른 꿈의 영혼의 즙을 자아내는 창작의 보람과 기쁨을 확실히 맛보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다.

전수식을 마치고 모처럼 이두영 총영사님, 이우철 공사님과 담소하는 시간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감동은 꾸미는 게 아니라고 본관의 분위기는 아주 오래전에 방문했던 때와는 완전히 다른 마치 친정에 다니러 온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선사한 올바른 아름다움이 함께했다. 오늘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자동찻길이 흥얼흥얼 즐거웠다. 집에 도착하니 행사 때 찍은 사진들이 벌써 이메일로 보내져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은 분위기 좋은 곳에서 저녁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여의치 않은 시류인 만큼 PIZZA PAZZA에서 즐겨 먹는 단골 피자를 시켜 우리에겐 김치 없는 진수성찬은 없다고 김치와 함께 맛나게 저녁을 먹었다.

모래시계처럼 빠져나가는 기억 속에 많은 일이 생기고 가라앉는 하루하루를 잘 견디는 법을 배우고 사는 팬데믹 세상에서 2020년 재외동포 문학상 전수식은 내게 길이길이 추억으로 남으리라! 이두영 총영사님을 비롯하여 자리를 펴주시고 신경 써 주시며 함께해 주신 본관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어서 빨리 소망 중에 기뻐하며 혼란 중에 인내하면서 이 비통한 코로나 흑역사에서 이겨내어 그지없이 고고한 향기를 내며 입김이 가까운 거리에서 디아스포라들이 하나로 모이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2020년 재외동포 문학상 ˂우리 아버지˃ 전수식

말갛게 여린 햇살 은구슬 둥근 마음

향기로 생기 바른 출발이 좋은 하루

서럽게 보고 싶은 부모님 큰절을 드립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예쁘게 단장하는

아빠가 내게 주신 영예로운 그 자리

뒷짐 진 아빠 모습이 눈시울에 흔들리네.

가슴이 잉큼잉큼* 상패를 안습니다.

멈춰진 수레바퀴 끊임없이 굴리며

영혼의 즙을 짜낸 시간 바로 이 보람이야!

무거워진 웃음이 여울져 출렁이는

눈물 나게 흐뭇한 뿌리 내린 푸른 꿈

보람과 즐거움으로 덧칠하는 밑그림

셀 수 없는 무수한 그리움 방울방울

속 깊은 삶의 얘기 날개 달아 펼치며

더 높이 더 오래도록 고스란히 자아내리

* 잉큼잉큼: 가슴이 가볍게 빨리 자꾸 뛰는 모양.

1199호 12면, 2020년 12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