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문화사업단의 문화이야기 /84

유럽 문명의 기원 그리스신화 (1)

유럽 문화를 관통하고 있는 두 가지 줄기 헬레니즘과 유대이즘, 즉 고대 그리스 신화는 성경과 함께 서양의 문화를 읽어내는 코드이자 일반인들에게 서양문화의 모태를 설명해 주고 있는 교과서라 할 수가 있다.
이렇듯 서양문화의 원류인 그리스 신화는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 상상의 세계로, 시공을 초월하는 삶의 보편적 진리와 인간의 희로애락을 촘촘하게 엮어나간 대서사시이다. 이는 유럽인의 정신적 바탕을 이루는 서양 문화의 원천으로 문학과 미술, 연극 등 수많은 예술작품의 창작 소재로 사용되었고, 오늘날에도 그리스 신화의 이해는 유럽 역사와 문화 이해에의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사업단에서는 ‘유럽문명의 기원 그리스신화’ 를 통해 그리스신화의 탄생 배경, 올림푸스 12신의 등장, 그리고 서양문화 속에 스며든 그리스신화의 그림자를 살펴보도록 한다.

신화란 무엇인가?
우리는 ‘신화’라고 하면 거짓말, 꾸며낸 이야기, 혹은 폭넓게 신뢰를 얻고 있는 허구의 이야기를 연상한다. 그러나 신화가 단지 이야기를 모아놓은 것, 거짓말을 모아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그것이 끊임없이 우리를 매혹시키고 있는가? 수천 년이 지나도록 신화가 생명을 유지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바로 ‘신화’가 어떤 한 가지 의미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이며, 다양한 단계와 수준에서 작용하는 여러 가지 견해이기 때문이다.
신화는 일들이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설명하려는 최초의 서툰 시도이다. 또한 신화는 일들이 ‘왜’ 일어나는가를 설명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따라서 신화는 종교와 철학의 본체이라고도 할 수 있을뿐만 아니라, 기록된 역사 이전에 일어났음직한 일들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역사 이전의 역이기도 하다.
신화는 가장 초기 형태의 문학(대개가 구전 문학)이다. 신화는 고대 사람들에게 그들이 누구이며 온당한 삶의 방식은 어떤 것인가를 이야기해주었다. 신화는 도덕성과 통치 방식과 민족 정체성의 토대였으며, 이 점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신화는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들 사이에 늘 변함없이 존재해 왔다. 그리고 특히 그리스 신화는 종교로서 또는 신학으로서 그 의미는 소멸되었지만 문학과 예술부문에 있어서 유럽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고 앞으로도 그 지위를 유지할 것이다.

왜 신화인가?
극한의 근대(modern)적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인간의 진실한 면모가 필요하다. 인간으로서의 감정을 잃어버린 채 기계처럼 일상 속에 매몰된 인간들에게 <인간이란 어떠한 존재인가>라는 새로운 의문을 던져주는 작업은 소중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현대 사회에서 잊혀지기 쉬운 인간의 소중함을 일깨울 수 있는 ‘인간되기 작업’의 하나이다.
근대적 사고방식으로 완성된 현대 사회는 그 엄청난 생산성을 바탕으로 물질적 풍요로움을 완성해나갔지만, 그 와중에 인간적 가치의 상실을 경험했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것을 경험하기도 전에, 자본주의 시스템의 사이클 속에서 너도 나도 모두 톱니바퀴에 끼인 찰리 채플린이 되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신화를 통한 인간에 대한 근원적 질문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찾게 해줄 것이다.
인간적 특징을 지난 그리스 신들, 이들의 이야기가 단지 소외된 이들을 치유하여 일상의 괴로움을 잊게 만드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을 넘어, 인간에게 주어진 유일한 가치가 환금성이나 생산성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일을 경험하게 해준다. 그리고 내가 그 안에서 생산성만으로 판단되는 쓸모없는 존재라는 오해를 완전히 씻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 신화를 읽고, 그리스 신화는 살아남아 오늘날에도 우리주위를 맴돌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신화의 탄생
그리스 신화의 발전은 그들의 국가적 특성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무척 많은 숫자의 섬과 반도로 이루어 진 그리스 지역에는 고대 시대 무수히 많은 국가들이 들어서 있었다. 해당 국가들은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혹은 육로를 통해 맞닿아 있었기에 지리적 여건상 바다로 진출할 수밖에 없었던 그리스인은 일찍부터 무역과 여행기술을 발전시켰다. 그들은 지중해 주변의 기항지들에 들르면서 이웃문명들과 접했으며 단지 기념품만이 아니라 외래문화와 종교를 그리스로 가져오게 된다.
당시 그리스는, 지중해, 에게 해, 이오니아 해로 불쑥 뻗어 나와 있는 산과 바위투성이의 북부 본토와 남부 펠로폰네소스 반도, 주변해역에 점점이 널려있는 수많은 섬, 그리고 소아시아(오늘의 터기)서해안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렇듯 ‘외국의 영향’이 그리스로 흘러 들어와 신화는 점점 다양해지고, 타 지역 신들의 이야기는 이미 그리스 본토에 자리 잡고 있던 이야기와 합쳐지게 된다.
이렇듯 통일성 없이 다양하기만 했던 그리스신화는 ‘헤시오도스(Hesiodos)’와 ‘호메로스(Homeros)’라는 두 인물이 등장하며 체계를 갖추고 문학성을 얻게 되어 오늘날의 그리스신화로 자리 잡게 된다.
‘헤시오도스’는 『신들의 계보』라는 책을 통해, 신들의 계보를 정리했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체계화했다. ‘호메로스’의 경우에는 『오디세이아』, 『일리아스』 등을 통해 보다 그리스 신화의 문학성을 높였으며, 그리스 인들의 생활관과 신화의 모습이 조화를 이루도록 작품 속에 그려 놓았다. 이 두 문호의 탄생으로 그리스 신화는 급진적인 발전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스시대의 대역사가이자 역사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헤로도토스(Herodotos)가 “헤시오도스와 호메로스가 우리 그리스인들에게 신을 만들어 주었다.”고 할 정도로 그리스 신화에 이 둘의 업적은 가히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1259호 23면, 2022년 3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