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문화사업단의 문화이야기

문화를 바라보는 여러 가지 시각(2)

급속한 세계화의 전개와 정보통신·교통의 발달과 함께 세계가 하나로 되면서, 생활양식의 동질화, 가치의 표준화가 지구규모로 진행되고 있다. 반면, 20세기 말 동구사회주의권이 붕괴되고 냉전구조가 사라지면서 세계 곳곳에서는 민족주의, 종교적 원리주의가 분출하여 전 세계 여러 곳에서 사회를 분열과 항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있다. 이처럼 세계의 통합과 탈중심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이러한 시대적 현상을 진단하고 대변하는 개념어로서 문화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문화사업단은 문화의 일반으로부터 문화를 해석하는 다양한 시각들을 조망해본다.

문화의 개념적 특성

문화 개념의 변화 추이에는 현대 서양사상사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으며,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다양한 문화의 정의와 개념들은 바로 현대 사상의 특성을 대변한다. 물론 시대마다 새로이 부각되는 현상들을 이해하기 위해 새로운 언어와 이론화 작업이 있어 왔으며, 이것은 역사의 진행에 보조를 맞추어야 하는 이성의 과업이기도 하다.

고전적 개념: 근대적 가치로서의 문화, 그리고 문명

문화는 ‘정신의 함양·세련’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개념의 근저에는 진보, 발전이라는 근대의 보편적 가치가 깔려 있다. 문화를 뜻하는 영어의 culture는 어원적으로는 동식물의 사육·경작을 의미하는 라틴어 cultura에서 유래되었다. ‘사육·경작’은 ‘키운다’는 말인 즉, 사람 손을 거쳐 더 좋은 것 완전한 것으로 발전해 가는 과정을 뜻한다.

윌리엄즈(Williams,1983)에 따르면, 이 말이 은유적 뜻으로서 인간 정신의 함양, 세련 등을 의미하게 된 것은 18세기 후반~19세기초 산업혁명 이래의 일이다. 문화는 세련된 교양이라는 의미에서 엘리트주의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한편 라틴어 civis에서 나온 ‘문명’civilization은 야만인이나 대중 같은 낮은 상태와 구별되는 특정 자질들을 지닌 집단의 상태를 가리키는 용어로서, 고대 그리스나 로마가 그런 집단에 해당한다. 이처럼 유럽의 주요 언어체계에서 문명과 문화는 높은 지적 달성도나 인간정신의 세련성을 가리키는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서술적, 총체적 개념

문화의 총체적 개념은 영국의 인류학자 타일러의 문화 정의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문화를 한 사회내의 집단이 공유하는 생활양식의 총체로서, “지식, 신앙, 법률, 예술, 정치, 경제, 기타의 지식 등 개인이 어떤 사회의 일원으로서 습득한 능력과 습성의 복합적 전체‘라고 정의하였다.

타일러는 이런 문화요소들을 비교하여 역사적 발전단계에 따라 지구상의 문화를 서열화하였다. 그의 시각은, 낭만적 이상, 즉 민족이나 민족의 내부집단들 또는 서로 다른 시기의 사람들은 각각 특징적 문화를 가지며, 각각 다른 문화는 문명의 진화과정의 한 단계를 보여 주는 것이라는 관점과 유사하다.

문화를 생활양식의 총체로 보는 관점은, 진화론에 반대하는 F. Boas의 초기 미국인류학(역사적 특수주의)이나, 기능주의, 문화생태론 등에서도 유지되었다. Stocking은 보아스가 어느 때부터 저작 중에서 문화라는 말을 셀 수 있는 명사로서 사용한 데에 주목하였다. 그때까지 영어세계에서 culture는 셀 수 없는 명사로서, a culture나 cultures라는 말은 없었다.

이것은 보아스의 인종결정론 비판, 즉 지구상의 여러 인간집단 간의 차이를 인종이 아니라 문화라는 용어로 말하려는 의도와 관계된다. 차이는 생물학적 인종의 차이가 아니라, 역사적 그리고 국지적으로 각각 형성된 문화의 차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미국 인류학자들은 그 후 생활양식의 총체로서의 문화의 실체를 확정하고 개념을 정의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였다. 그렇지만 문화는 다의적이며 엄밀한 정의를 공유하기 어려운 개념이기에, 문화의 실체를 특정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실제의 문화연구에서 행해진 것은, 일반적인 생활양식의 차이를 문화 차이라 부르고, 그 표식에 의해 사회집단을 구분하는 것이었다.

상징적 개념

문화는 ‘특정사회 인간이 만들어 낸 의미의 체계’로서 상징이라는 수단에 의해 표현된다는 개념이다. 예컨대, 한국인의의 인사를 들어보자. 허리를 굽힌다는 신체적 동작(상징)은 의미의 체계(문화)에 의해 매개되어, 비로소 ‘인사’라는 유의미한 행위로서 경험된다. 바꾸어 말하자면, 신체적 동작이 ‘한국문화’에 매개되어 ‘인사’라는 한국에서는 유의미한 행위로 변환된다.

이러한 문화개념은 C. Geertz, L. White 등이 주도하여 발전시켰다. 기어츠는 1973년에 나온 그의 대표작 『문화의 해석』에서 “‘모든 생활구성요소의 복합적 총체’라는 타일러의 문화개념이 더 엄밀하게 특정된, 나아가 이론적으로 보다 강력한 개념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인간은 스스로 짠 의미의 그물에 갇힌 동물이라는 베버의 말을 빌려, 문화란 그 의미작용의 거미줄이라는 ‘기호론적인 문화개념’을 제창하였다.

기어츠의 상징적 문화개념은 문화를 기본적으로 ‘자연’과 대립시킴으로서 성립하였다. 인간은 생물로서 자연적 속성을 바탕으로 하지만, 동시에 다른 생물과는 달리 문화적 속성을 갖는 독특한 존재이다. 문화는 인류 고유의 특질이며, 인간 이외에 문화를 가진 존재는 없다. 인간은 문화를 통하여 자연에 대응할 뿐만 아니라, 공동체 생활을 영위한다. 여기서 문화는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약속의 체계로 간주된다.

이 약속은 인간의 본성과 관계없이 각 사회에서 자의적으로 정해진 것이다. 따라서 각 사회마다 다른 무수히 많은 약속의 체계가 있으며, 나름의 특색 있는 문화를 형성하게 된다.

이처럼 인간의 사회생활은 무수한 약속으로 지탱되지만, 그 약속의 대부분은 행위자에 의해 자각되지 않은 상징화된 암묵의 약속이다. 습관화하여 무의식적으로 지켜지는 사회적 약속의 바다에 함께 젖어있기에 인간은 자신의 사회공동체에서 안심하고 매일 살 수 있으며, 여기에 무엇이 일어나는가, 어떻게 행동해야 좋은가 일일이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1283호 23면, 2022년 9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