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분관장, 함부르크총영사를 역임하여 독일동포들에게도 친숙한 손선홍 전대사가 2월 말 『30개 도시로 읽는 독일사』를 출간하였다.
독일 역사의 시작은 ‘토이토부르크숲 전투’부터라고 할 수 있다. 서기 9년, 로마 제국이 공격해 들어오자 게르만족 지도자 중 한 사람인 헤르만은 토이토부르크숲으로 로마군을 유인했다. 지리에 어두웠던 로마군은 매복해 있던 게르만 전사들에게 기습 공격을 당했고 전멸하다시피 했다. 이때의 승리로 독일은 로마의 지배를 피할 수 있었다.
현재 데트몰트시 인근에는 토이토부르크숲 전투의 영웅인 헤르만 동상이 세워져 있다. 검을 높이 치켜들고 있는 높이 26.57미터의 이 동상을 보고 있으면 용맹한 독일인의 기상이 짜릿하게 느껴진다.
이처럼 도시와 도시에 남겨진 건축물, 유물, 이야기를 보면 그 나라의 역사와 정신을 알 수 있다. 『30개 도시로 읽는 독일사』는 ‘작은 로마’라고 불리는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트리어부터 독일의 영원한 수도 베를린까지 30개의 도시를 통해 2000여 년이 넘는 독일의 역사를 알아본다. 마치 여행하듯 이 책을 따라 도시 골목골목을 걷다 보면 자연스레 역사적 지식을 체득할 수 있다.
가령 독일은 음악의 나라로 유명하기도 하다.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바흐부터 헨델, 멘델스존, 베토벤, 바그너, 슈만 등 빛나는 음악가들이 유독 많다. 왜 그럴까? 그들이 살았던 도시를 둘러보자. 독일에는 선제후나 제후들이 많았다. 그래서 궁전과 교회가 즐비했다.
선제후나 제후들의 즉위식, 생일, 다른 나라 제후의 방문 등 주요 행사가 있으면 음악도 필요했다. 그래서 궁에서 악단을 만들어 음악에 재능 있는 이들을 고용했다. 바흐, 베토벤, 헨델, 멘델스존 등은 전부 젊은 시절 궁정 악단에서 활동했다. 또한 모든 도시에 교회가 있는 만큼 교회 음악이 발전했다. 그래서 독일에 설립된 지 800년 넘은 세계적 소년 합창단만 해도 네 개나 된다.

이렇게 30개의 도시를 돌아보고 그곳을 거닐다 보면 어떻게 세계적 사상가, 문학가, 음악가가 태어나고 성장할 수 있었는지 알게 된다. 우리는 그들의 시작점부터 묻힌 곳까지 그 여정을 따라가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언뜻언뜻 그들의 생각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듯 이 책은 독일의 다양한 인물과 도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전달하여 복잡한 독일사를 자연스럽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독일 최초의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이 된 대성당이 있다. 바로 아헨시의 상징이자 카를 대제가 잠들어 있는 대성당 ‘아헨 대성당’이다. 이 대성당에는 성모 마리아의 성유물 상자가 있는데, 상자에는 마리아의 옷, 예수의 배내옷, 예수가 허리에 두른 천이 있다.
또 ‘작은 로마’라고 불리는 트리어시의 ‘트리어 대성당’에는 예수가 십자가를 메고 언덕을 오를 때 입었던 옷을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왜 예수의 옷이 독일에 있을까?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이자 신앙심이 강했던 헬레나가 325년에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기독교인이 독일로 성지순례를 오고 있다.
또한 독일은 2005년에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가까운 곳에 ‘유럽 내 살해된 유대인을 위한 추모비’를 세웠다. 축구장 두 개 넓이에 콘크리트로 만든 2711개의 추모비가 있다. 지하 추모관에서는 살해된 유대인 600만 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고 있다.
이처럼 독일에는 특별한 역사적 건축물과 상징물 및 기념물, 유물이 많다. 찬란한 역사는 더 소중하게 간직하고 반성해야 하는 아픈 과거는 뼈아프게 새겨넣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들의 생가도 박물관으로 운영하는 등 잘 보존하고 있다. 특별한 동상도 많고 ‘발할라’라는 명예의 전당을 세워 극소수의 독일인을 위한 기념관을 만들기도 했다. 정부와 국민이 함께 역사를 써 내려가는 듯하다. 그리고 과거를 반성하는 일에는 정치인들이 앞장선다.
빌리 브란트 총리는 바르샤바 유대인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었고,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찾아 사죄했다. 헬무트 슈미트와 헬무트 콜도 총리 재임 시 아우슈비츠를 찾아 헌화했다.
독일이 경제적으로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 융성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이렇게 역사를 소중히 하고 언제나 과거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꿈꿨기 때문이 아닐까? 이 책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를 선출했던 선제후 도시부터 주요 왕국의 도시들, 루터와 종교 개혁 관련 도시들, 베토벤의 고향, 괴테의 도시, 전범 재판의 도시, 베를린 장벽을 붕괴시킨 평화 혁명의 도시 등을 다룬다. 우리는 이곳들을 하나하나 돌아보며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역사를 배우는 동시에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갖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30개 도시로 읽는 독일사』는 기원전 17년에 세워진 ‘작은 로마의 도시 트리어’를 시작으로 프로이센 왕국, 독일 제국에 이어 오늘날 수도인 베를린까지 30개 도시를 통해 2000년 독일사를 담아낸 책이다.
카를 대제의 도시 아헨, 독일-프랑스 관계의 증인 자르뷔르켄, 종교개혁의 전환점을 이룬 보름스, 로마제국의 군사기지 쾰른, 본, 레겐스부르크, 자유의 도시 함부르크, 30년 전쟁을 끝낸 베스트팔렌 조약이 체결된 뮌스터, 바이마르 헌법과 바이마르 공화국의 도시 바이마르, 포츠담 회담의 도시 포츠담, 프로이센 이후 독일 중심 도시 베를린 등 30개 도시를 다루고 있다.
국내외 문헌을 토대로 2019년, 2023년, 2024년 3차례에 걸쳐 30개 도시 모두를 답사하며 좀 더 생생한 역사와 귀중한 사진을 담았다.
저자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2000년 역사를 풀어간다.
저자 소개
충남 당진에서 출생했다. 1980년 외교부에 들어간 후 1982년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수학하며 독일과 본격적인 인연을 맺었다. 이후 주독일 대사관(본, 베를린, 함부르크), 주오스트리아, 주베트남, 주스위스 대사관에서 근무했다. 독일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Friedrich Ebert Stiftung’에 파견 근무하며 독일 통일 문제도 연구했다. 주본 총영사에 이어 주독일 대사관 공사와 주함부르크 총영사를 역임했다.
정년 퇴임 후에는 충남 대학교 평화 안보 대학원 특임 교수와 외교부 국립 외교원 명예 교수를 지냈다. 제20대 국회 국회의원 연구 단체 평가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현재는 ‘독일 정치·문화 연구소’를 운영하며 독일 통일과 한반도 통일 문제, 그리고 독일 역사와 문화 관련 강연을 하고 글도 쓰고 있다.
저서로는 『독일 독일인』(1989)을 시작으로 『분단과 통일의 독일 현대사』(2005), 『독일 통일 한국 통일』(2016), 『독일 통일 총서: 외교 분야 I, II』(2016), 『도시로 떠난 독일 역사 문화 산책』(2020) 등 6권이 있다. 공저로는 『카이스트, 통일을 말하다』(2018)와 『공공외교의 이해』(2020) 등 5권이 있다.
1401호 23면, 2025년 3월 7일